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혜영 Mar 17. 2024

비밀과 거짓말과 오해 사이

괜찮다는 거짓말

비밀로 하거나 거짓말로 감출 의도는 없었다. 단지 내 이야기를 많이 하면 타인은 관심 없는 주제의 이야기 거나 무거운 주제일 수 있어서 말하지 않는 것일 뿐이었다. 오해를 하는 이들은 진실을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이니 쓸데없이 그들에게 설명하려 해도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때로는 괜한 말이 자랑이나 일삼는 사람으로 비칠까 봐 입을 다물기도 했다. 힘들면 힘들다고 티를 내라고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고 하지만 내색한다고 크게 변할 것도 더 이상 바라며 기대할 것도 없다는 것을 일찍 받아들였을 수 있다. 누군가는 이런 내 태도에 자포자기한 거라 말하고 누군가는 덤덤하다 말한다. 무엇이 나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강하고 단단하고 인내심이 많아서 조용히 내 몫을 감당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새로 옮긴 부서에서의 일상은 주변 지인들에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저 아이가 커서 사람구실 할 수 있을까 했던 아이가 커서 직장생활을 한다니 신기하기도 하고 아프다는데 멀쩡히 다니는 것 같아서 때로는 위태롭고 때로는 걱정되어 이것저것 물어본다. 고마운 질문들이다. 새로운 일을 하게 되고 나서 주변 사람들이 전보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훨씬 에너지가 있어 보인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다행이다 잘 안 하던 화장을 하고 립스틱도 짙게 발라 그렇다고 대답할 때도 있고, 사실 작년 겨울 무렵보다는 몸 컨디션이 나아졌다고 말하기도 한다. 짧게 자른 머리가 잘 어울린다고 한다. 사실 탈모 진단을 받고 잘랐다고 한다. 내 솔직한 대답에 흠칫 놀란 표정을 짓는 그들에게 “내 이유와 상관없이 다들 잘 어울린다 말한다 고맙다”라고 대답하며 실없이 웃어 보인다.


내 일상의 큰 변화라 할 것 같으면 나는 작년부터 커피를 자연스럽게 먹는 사람이 되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커피를 먹지 못했다. 부정맥이 있을 때는 단 한 번도 마시지 않았고, 치료 후에는 몇 번 시도를 했지만 마시고 나면 심장이 빠르게 뛰거나 두통이 와서 기피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커피를 안 마시고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작년에는 내 생에 처음으로 커피를 6만 원 가까이 대량 구매했고 그렇게 구매한 커피를 두 달 만에 다 마셨다.


최근 몇 년 전에 같이 일했던 동료와 커피를 마시지 않던 시절부터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나 카페에 갔다. 자연스럽게 커피를 주문하는 내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란다. 때론 걱정스럽게 물어보는 이들에게 내 정보를 기억하고 배려하는 그 마음에 고마움을 느낀다. 그 걱정하는 눈빛을 보며 안 괜찮다 말하기가 어려워서 나는 거짓말을 한다. “괜찮아 이제 먹을 수 있어 먹어야 심장이 뛰어 살 수 있어” 하며 웃음 짓는다.


2년간 먹어왔던 심장약이 갑자기 부작용이 생겼다. 약이 있어 그나마 증상이 조절되어 좋다고 여겼는데 약에게 배신감이 느껴졌다. 잠시 약을 끊고 버텨내던 시점을 지나서 버티다 다시 안되어 먹기 시작했다. 다행히 부작용은 사라지고 효과는 유지되는 상황이 찾아왔다. 이런 상황도 구구절절 말하기 귀찮을 때면 “좋아 괜찮아”라고 말하고 넘어갈 때가 있다. 때로는 경청하는 이들에게만 상황을 설명한다. 말하면 별것도 아닌 건데 지병은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인터넷 프로 지적꾼들의 글귀가 머리에 맴돌며 주저하게 된다. 지병은 약점이니까 지병은 개인적인 일이니까 사회생활에서 TMI를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현명한 처세술이라 하니까, 쇼펜하우어 어쩌고 카네기 인간관계론 어쩌고 하는 유명인들의 책이 나오면 지혜란 이런 것인가 싶어 입을 닫는다. 오후 반가를 신청하려고 할 때 사실 약을 타러 가야 한다고 말하기가 껄끄러워진다. 거짓말을 하는 기분이 든다. 사실을 알면 나는 괜히 비밀이 많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있으려나 싶다가도 오해하면 오해하라지 내가 알 바인가 생각하며 설명은 삼간다.


약 용량을 늘렸다. 기운이 더 빠져나가는 것은 심장 때문인지 약 때문인지 일이 피곤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예민한 성향이라 말하는 사람들의 해석에 내 소중한 한 표를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 이 상황을 넘어가기 위해서 아니면

버티기 위해서 커피를 보약처럼 들이마신다. 아침, 점심, 오후, 저녁... 하루에 4잔에서 5잔 정도를 마시고 나면 피곤함과 아득함은 일을 해서 지친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하루를 버텨내고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하나 끝났다! 또 하나가 지나갔다며 홀가분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이런 나를 본 지인들이 기뻐한다. 목소리에 더 힘이 생긴 것 같다고 다행이라고 좋아진 것 같아 좋다고 그전에 많이 걱정했다고...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응 좋아 괜찮아”라고 이야기한다. 내 말을 믿는 사람 내가 말하지 못한 말까지 알아채고 믿지 않는 사람 의견은 분분하다. 아마도 이렇게 적어두는 내 글도 읽는 사람에 따라서 해석이 다양하겠지만, 괜찮다. 괜찮다. 이 말이 거짓말일지라도.


매거진의 이전글 그만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