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해서 그래”
“걱정하지 마”
“괜찮다고 생각해”
정기검진을 갔다가 초음파 결과를 듣는 날이면 꼭 듣는 말이다. 그럼 난 6개월치 약과 괜찮다는 말을 처방받아온다. 덤으로 결혼하라는 말까지 들으면 진료는 무사히 끝이 난다. 어느 조언도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4월에 병원에 떨어진 약을 타러 갔다. 약이 자판기에서 그냥 툭 나오면 좋겠다고 말하면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병원에 갔다.
이번에는 매번 듣던 이 세 마디를 못 들었다.
의사가 주문처럼 외우며 내게 하던 말, 그리고 내가 메아리처럼 듣는 말을 막상 듣지 않으니 이상했다.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의자에 앉기도 전, 나는 일을 하다 와서 방전이 된 상태로 겨우 말을 들을 기운만 남은 상태인 내 귀에
“수술해야지” 소리가 들렸다.
잠시 멍했지만 바로 뒤 이어서 언제나 변함없이 내가 듣던 말을 이어 들었다.
“결혼하고 수술해야지”
힘들었냐 묻는 말에 힘들다고 하면 “예민해서 그래” , “괜찮다고 생각해”라는 답을 들을 것 같아서 말을 아꼈다.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생각해도 괜찮지가 않았다. 그렇게 무슨 대답도 기대하지 않는 내 모습에 스스로 놀란 채 다음 검사일을 예약하고 병원을 떠났다.
약 처방전을 가지고 지하철 역에 도착했다. 잠시 넋이 나가서 약국에 가는 것을 잊었다. 다시 돌아가 근처 약국에 갔다. 젊은 여자가 심장내과에서 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면 타이레놀 사러 갈 때 나를 대하는 모습과 사뭇 다르다.
무척 친절하고 다정해서 괜히 민망해진다.
“먹기 편하게 이렇게 담아드릴게요 아니면 나눠서 드릴까요? 약병 사이즈는 괜찮으세요?”
고맙지만 내 키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불쌍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라 “감사합니다. 다 좋아요 이대로 주셔도 됩니다.” 하고 서둘러 나온다.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도망친다. 이건 그냥 뽀로로 비타민 같은 것을 사 온 거야 생각한다.
오래 본 사이, 내가 뱃속에 있던 시절까지 아는 사람에게 숨이 차서 걷기 힘들다는 투정을 부린다.
“걸어 다닐 수는 있잖아 감사해야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입을 다문다.
언제 숨이 차냐는 질문에
“빨리 걸으면 숨이 차요 “라고 대답한다.
내 대답에
“살이 쪄서 숨이 찬 거야 “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다이어트 다이어트 다이어트...
왜 키가 큰데 다이어트를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뚱뚱해서?”라고 답한다. 내 대답을 들은 상대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나는 55 사이즈를 입고 있다. 살이 쪄서 숨이 차다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44 사이즈를 입어야 하나 생각한다. 계속 여전히 나는 살이 찐 상태인가 생각한다.
이번에는 말라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내 몸무게의 변화는 살쪘다고 들을 때보다 3kg 차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살쪘다는 말을 들을 때보다 고작 3kg 차이, 나는 마르지 않았다. 나는 살이 쪄있는 것이다. 인지 오류가 온다. 가족 지인 친구 모두 살이 빠졌다 이야기한다.
살이 빠져서 외모가 좋아 보인다 말한다.
혹자는 조심스레 묻는다. “못 본 사이 성형한 거야?”
환자야?라고 묻는 것보다 하지 않은 성형을 한 거냐 묻는 편이 다행이다 싶다.
그래 나는 좋아 괜찮아라고 다시 세뇌해 본다.
새로 만난 동료들에게 지병을 말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하는데 굳이 말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심리적인 것이라면 내 입 밖으로 내뱉을수록 말이 씨가 될 수 있기에 나는 다른 표현을 선택한다.
“나는 엉금엉금 가야 하니 급하면 나를 버리고 가세요”라고 이야기한다. 4개월 동안 모두 내 느림에 적응한 듯하다. 내가 어쩌다가 잠시 빨리 걸으면
“일 년 치 다 뛰신 거 아니에요?”라는 말을 듣는다.
다음에는 “양반의 도시에서는 뛰지 않아요”라는 말을 할까 혼자 생각해 본다. 이왕이면 뒷짐까지 지고 말이다.
이제 엉금엉금 걷기도 점점 힘에 부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더 나이 들어 운동신경이 퇴화되기 전에 10년 된 운전면허를 장롱에서 꺼냈다. 운전 한번 안 하고 갱신을 한 운전면허를 들고 차를 몰고 나갔다.
걷는 것처럼 엉금엉금 초보운전 스티커를 붙이고 차를 몰고 도로에 나갔다.
누군가 “왕왕왕 초보”라고 붙인 것을 보았다.
한참 웃다가 나도 저런 것을 사서 붙였어야 하나 싶었다가 바로 참았다.
러닝 머신에서 3km 속력으로 걸으면 괜찮다가 조금 욕심을 내어 5km 속력으로 걸으면 숨이 차다가 이내 가슴 어느 한 부분이 아파온다. 온 세상이 빠르고 나만 느리다. 매번 3km 속력의 세상에서 살다가 50km 속력이 된 나를 마주했다. 거북이가 비행기를 탄 수준이다. 장족의 발전이다. 엄마를 보조석에 태우고 운전을 했다. 이만하면 좋은 시간이라고 이만하면 정말 괜찮은 것이라 되뇐다.
엄마가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끝낸 지 일 년이 되었다. 하필 내가 같이 갈 수 없는 날 엄마가 혼자 병원에 가서 검사 결과를 들었다.
내가 전화로 가장 먼저 엄마에게 물어본 말
“괜찮대? 다 괜찮은 거래?”
“검사 결과는 다 괜찮대”라는 대답
나는 안심하면서 동시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검사 결과가 괜찮지 않은 나는 정말 괜찮은 것이 맞을까? 괜찮다고 생각하라는 말은 내가 계속 들을 수 있는 말일까?’
나는 힘들다는 말을 안 하면 괜찮아지는 것인가 생각한다. 바보 같은 생각인걸 알고 있다.
나는 병원에서 돌아와서 또 넋을 놓았다.
학생 때 병원에 다녀온 후 걸어가다 나무에 머리를 들이박은 것처럼, 걸어가다 넘어져 계단에 이마를 부딪혀 다친 때처럼, 이번에는 파쇄기에 옷이 들어가 옷을 갈아버리는 바보짓을 갱신했다.
너덜너덜해진 옷을 보며 “안 다친 것이 천만다행이야 이만하면 괜찮아”라는 말을 했다. 대면으로 전화로 주변인들에게 망가진 옷에 대해 말하며 깔깔대며 떠들었다. 수선집에 가서 옷을 보여주며 어떻게 수선이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억울해도 어쩔 수 없어요 그냥 버리세요”라는 대답을 들었다. 다른 수선집을 갔다. “자기 옷이 이 정도가 되었는데 몸 안 다치고 이만하길 다행이야 운트였다. 어떻게든 최대한 비슷하게 고쳐볼게 “라는 말을 들었다. 뒤 돌아 나오며 활짝 웃고 있는 내가 보였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너덜너덜 흩날리고 있을 내 판막을 어떻게 고치면 좋은 것인지 물었을 때
홀가분하게 버리고 고장 나고 망가진 것을 더는 괴롭히지 말라고 억울해도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라고 답할까? 아니면 얼기 설기 잘 수리해서 몇 년은 멈추지 않고 쓰면 이만큼이라 다행이다 괜찮다 말하며 웃어 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