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간 없는 사람들

by 경계 Liminal

나는 자주 ‘시간이 없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할 일이 많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곧, 내가 나의 시간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고백이다. 무엇을 할 것인지, 언제 시작하고 언제 멈출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이 나에게 없다는 감각. 시간은 흘러가지만, 나는 그 흐름 위에 올라타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간다.


시간 없는 사람은 자신만의 리듬을 잃는다. 누군가의 요청에 즉각 반응해야 하고, 일정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대기와 대응 사이에 자율성은 없다. 내가 나의 속도를 가질 수 없는 순간, 나는 나의 존재도 잃는다. 시간은 단지 흐름이 아니라, 존재의 구조다. 시간을 잃는다는 것은 곧, 존재의 중심에서 밀려난다는 뜻이다.


우리는 시간을 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알림, 즉시 응답을 요구하는 메시지들, 기다림 없이 결과를 요구하는 사회. 이 구조 안에서 ‘느림’은 무능력으로 간주되고, ‘멈춤’은 게으름으로 오해된다. 시간 없는 사람은 효율적인 존재로 소비되지만, 동시에 자기 이야기에서 탈락한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여유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나만의 시간, 나만의 언어, 나만의 맥락을 회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시간의 소유를 전제로 한다. 사유는 즉각적으로 생산되지 않는다. 깊은 문장 하나를 위해서는 고요와 단절, 일정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시간 없는 삶은 그 모든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시간을 빼앗긴다는 것은, 기억과 서사도 함께 잃는다는 뜻이다. 내 삶이 나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감각. 남이 준 시간표 안에서 움직이는 동안, 나는 점점 더 흐릿해진다. 나의 욕망은 대기 목록으로 밀려나고, 내면은 실시간 반응 속에 묻힌다.


그래서 나는 다시 시간을 되찾고자 한다. 아주 작은 조각이라도, 타인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운 시간. 글을 쓰는 순간, 나는 겨우 그것을 회복한다. 문장은 시간을 필요로 하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목소리를 찾는다. 글쓰기는 생산이 아니라 회복의 기술이다.


시간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나만의 시간을 지키려 한다. 그것은 거대한 저항이 아니라, 아주 작은 선언이다. 이 문장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나는 더 이상 빼앗긴 존재가 아니다. 나는 지금 나의 시간 안에 있다.

keyword
이전 06화탈락자로 존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