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는 존재는 어디까지가 나인가. 육체로 둘러싸인 이 경계 안에만 머무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접속하는 모든 기술과 관계, 언어의 집합까지도 나의 일부일까. 나는 종종 ‘나’를 하나의 인터페이스처럼 느낀다. 타인과 사회, 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한 창이자 필터. 내가 이 세계에 존재하기 위해 통과해야만 하는 매개체다.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접속한다. 메시지를 보내고, 피드를 읽고, 일정을 조율하고, 글을 올린다. 그리고 그 모든 행동은 ‘나’를 보여주기 위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이루어진다. 말투, 이모티콘, 텍스트, 사진, 선택된 이미지들. 그 어떤 것도 본질적인 ‘나’는 아니지만, 그 모든 것을 조합한 것이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나’가 된다.
인터페이스는 편리하다. 복잡한 내면을 단순한 기호로 압축해 전달해준다. 그러나 동시에 인터페이스는 나를 분할한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느끼는지보다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고통도, 외로움도, 말끔하게 디자인된 피드에 담길 수 없다면 의미를 상실한다. 존재는 점점 더 표면화되고, 깊이보다는 반응 속도가 중요해진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하나의 인터페이스를 만든다. 진짜의 나와는 조금 다를 수밖에 없는, 그러나 최대한 진실에 닿으려는 문장의 조합. 이 글은 나를 보여주기 위한 창이지만, 동시에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장벽이기도 하다. 너무 많이 드러내면 위험하고, 너무 감추면 아무 의미도 없다. 그래서 나는 항상 적정선을 찾는다. 말할 수 있는 만큼만 말하고, 보여줄 수 있는 만큼만 보여준다.
인터페이스를 가진 존재는 언제나 왜곡된다. 하지만 그 왜곡을 통해서만 나는 타인에게 닿을 수 있다. 고립되지 않기 위해, 나는 나를 조금씩 변형시켜야 한다. 때로는 너무 얇아져서 나조차 나를 통과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창을 닦고, 다시 글을 쓴다.
존재의 인터페이스는 단지 소통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지워지지 않기 위해 만든 하나의 형식이다. 나는 지금도, 이 문장을 통해 누군가에게 접속하고 있다. 온전하진 않아도, 조금은 진실된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