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주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해왔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히 침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종종 말할 수 없는 것, 말해도 소용없는 것, 말하는 순간 오히려 오해될 것 같은 것에 대한 감각이다. 말하지 않음은 종종 자기보호였고, 때로는 존재를 지키는 최소한의 전략이었다.
세상은 명확한 언어, 빠른 전달, 적극적인 표현을 요구한다. 말이 없으면 의심을 받고, 설명하지 않으면 의도를 오해받는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같은 속도와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에는 준비가 필요하고, 때로는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서만 겨우 말할 수 있었다. 말은 순간에 사라지지만, 글은 시간을 두고 머물게 된다.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숙고의 시간이 허락되는 매체. 그래서 나는 말하지 않는 자였지만, 글을 쓰는 자가 될 수 있었다.
말하지 않는 자의 글쓰기는, 종종 느리고 서툴다. 감정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고, 고통을 말로 옮기는 일은 다시 상처를 헤집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아서 지워졌던 이야기들이, 글을 통해 조금씩 회복된다.
나는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오해를 받았다. 무례한 줄도 모르고 지나친 말에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 상처를 곧바로 표현하지 못했다. 그 대신, 마음속에서 사건은 천천히 곰삭았고, 문장으로 바뀌었다. 글은 말보다 느렸지만, 더 정확했다.
말하지 않는 자의 글쓰기는 그래서 자기 회복의 서사다. 나는 이 글을 통해서 나 자신에게 말한다. 그것은 타인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는 조용한 시도다. 말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모여 하나의 문장이 되고, 그것은 다시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조각이 된다.
이제 나는 말하지 않는 자의 글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소심함의 결과가 아니라, 깊이를 향한 방식이다. 목소리 없이도 존재할 수 있고, 말없이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글을 통해, 나는 그 무언의 시간을 다시 나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다.
말하지 않는 사람도, 말하고 있다. 다만 그 말이 들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뿐이다. 나는 오늘도 그 느린 시간을 견디며, 조용히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