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는 끝나지 않는다. 정규직이든, 계약직이든, 프리랜서든,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증명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직장을 구할 때뿐만 아니라, 재직 중에도, 심지어 퇴사 후에도 이력서는 계속해서 갱신된다. 과거의 이력은 충분하지 않고, 현재의 성과는 빠르게 소진된다. 우리는 늘 다음 증거를 준비하며 살아간다.
이력서를 쓴다는 것은, 나를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 형식은 대체로 획일적이다. 무엇을 했는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일했는지를 요약해야 한다. 거기에는 애씀의 맥락도, 감정의 곡선도, 내가 어떤 존재로 살아왔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력서는 말한다. "결과만 보여달라"고.
하지만 나는 때때로 묻고 싶어진다. 그 성과를 내기 위해 무엇을 포기했는지, 어떤 밤을 지새웠는지, 그 선택이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지를 쓰는 이력서가 있다면, 나는 거기에 훨씬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내 실패의 기록도, 사라진 경력도, 끝내 쓰지 못한 사직서도, 나를 구성하는 중요한 서사들인데 그것들은 언제나 삭제의 대상이 된다.
이력서는 나의 일부만을 보여준다. 때로는 내가 감추고 싶은 것을 드러내기도 하고, 때로는 내가 드러내고 싶은 것을 삭제하게 만든다. 그래서 이력서를 쓸 때마다 나는 한 사람의 '전체'가 아니라, 사회가 원하는 '버전'으로 압축된다. 정제되고 다듬어진 이력서가 완성될수록, 어딘가 나 자신이 사라진다는 기분을 떨칠 수 없다.
나는 이력서 바깥의 문장을 쓰고 싶다. 숫자와 연도, 역할의 나열이 아니라, 서사와 사유의 결이 살아 있는 글. 나를 어떤 사람으로 보이게 할지가 아니라, 내가 어떤 삶을 견디고 통과해왔는지를 말하는 글. 그것은 단지 글쓰기의 욕망이 아니다. 내가 나로 존재하기 위한 마지막 방식이다.
끝나지 않는 이력서 속에서 우리는 무한히 증명당한다. 그러나 삶은 이력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섬세하다. 나는 이제, 다른 문장으로 나를 증명하고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누군가의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의 서사로 존재하고 있다. 이 문장은 나의 이력서다. 그리고 이력서는, 이제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