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탈락자다. 이 말은 나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하고도 정확한 문장이다. 누구도 나를 직접 그렇게 불러주지는 않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입사에 실패하고, 관계에서 밀려나고, 서류심사에서 반복적으로 고배를 마신 나날들. 어느새 나는 경주에서 밀려난 사람처럼 벽 밖에 서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단어를 숨기고 싶지 않다. ‘탈락자’라는 말에는 부끄러움도 있지만, 동시에 명확한 위치감도 있다. 중심이 아니기에 더 명확하게 느껴지는 주변의 감각. 나는 무대 위가 아니라 무대 아래에 있다. 조명이 닿지 않는 자리에 있지만,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는 성공과 진행 중인 무언가로 자신을 증명할 것을 요구한다. “요즘 뭐 하고 지내세요?”라는 질문은 언제나 어떤 소속을 전제한다. 공부 중입니다, 이직 준비 중입니다, 창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오래 머물렀고, 그것이 나를 점점 투명하게 만들었다. 누군가의 안부 속에서조차 지워지는 사람.
탈락자는 일시적인 상태가 아니라 구조적 위치다. 시스템은 언제나 누군가를 제외시키며 작동한다. 어떤 기준에서, 어떤 속도에서, 어떤 조건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이름으로 불린다. ‘안 되는 사람’, ‘부적합한 사람’, ‘문제 있는 사람’. 그 명명은 종종 당사자의 고유성을 말소하고, 하나의 결함으로 요약한다.
그러나 나는 탈락을 결함이 아니라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그것은 내가 처한 현실이며, 동시에 나를 지탱하는 시선이기도 하다. 탈락자는 실패한 존재가 아니라, 기준에 들지 않은 존재다. 그 기준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니다. 때로는 그 기준이 사람을 아프게 만들고, 누군가의 존재를 무효화시킨다.
나는 탈락자로 존재한다. 이 문장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삶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여기의 나를 인정하는 방식이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았더라도, 나는 살아 있다. 말할 수 있고, 쓸 수 있으며, 느낄 수 있다. 탈락자로 존재한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
글쓰기는 그 탈락의 경험을 언어로 옮기는 일이다. 말하지 않으면 지워지는 존재, 인정받지 못하면 사라지는 감각. 그 가장자리에서 나는 문장을 통해 겨우 존재를 붙잡는다. 이 글은 성공을 증명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실패의 자리에 머무르는 감각, 그 자리에서도 끝내 존재하겠다는 고백이다.
나는 탈락자로서 쓰고, 탈락자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문장을 통해,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