읍참마속, 리더는 무엇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리더의 결단은 언제나 손실을 전제로 한다.

by 임작가

리더가 감내해야 할 상실은 단순하지 않다.

그리고 그 상실은, 대부분 아무도 보지 못한 채 지나간다.


Scene #1

형장에 모인 십만 군사의 시선이 단 한 곳, 중앙의 처형대로 쏠렸다. 흙먼지 섞인 바람이 깃발을 때리는 소리 외에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기이한 정적이었다.

포승줄에 묶인 마속의 등 뒤로 집행관의 서슬 퍼런 도끼날이 빛을 반사했다. 병사들의 눈동자에는 의심과 불안이 한꺼번에 서려 있었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저 죄인은 승상 제갈량이 가장 아끼는 제자이자, 촉나라의 미래라 불리던 인재라는 것을. 대열의 후미에서는 설마 정말 베겠냐는 수군거림과 승상은 그렇게 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반으로 나뉘어 충돌하고 있었다. 나중에는 규율은 사람에 따라 휘어지는 것이라는 체념의 기대로 번져가고 있었다.

제갈량이 단상 위에 섰다. 그의 하얀 깃털 부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고 있었다. 속눈썹이 젖은 듯 보였다. 이내 드러난 눈빛에 흔들림은 없었다.

"베어라."

둔탁한 타격음이 허공을 갈랐다. 붉은 피가 메마른 땅 위로 흩뿌려졌다.

그 순간, 온갖 억측이 난무하던 수군거림이 일시에 사라졌다. 들쭉날쭉하던 병사들의 대열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반듯하게 정렬됐다. 느슨하게 이완됐던 군영의 공기가 순식간에 팽팽한 활시위처럼 당겨졌다. 거기에 등이 구부정하다거나 창을 느슨하게 잡고 선 병사는 단 하나도 없었다.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공포, 그리고 그 공포가 만들어낸 거대한 안도감이 동시에 병사들의 얼굴을 스쳤다.

제갈량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물방울이 턱에 가 맺혔다. 제갈량은 그것을 닦아내지 않았다. 마치 물방울이 흘러내린 적이 없다는 듯이. 제자리로 돌아온 제갈량은 붓을 들어 다음 진군 명령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군관들은 허리를 곧게 펴고 창을 고쳐 잡았다. 죽음이, 무너진 질서를 완성한 순간이었다.



Scene #2

해가 저물고 군영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장대 끝에 걸린 마속의 머리는 거친 바람에 휘날렸다. 불과 며칠 전까지 승상과 밤새도록 천하를 논하던 총기 어린 얼굴 그대로였다. 이제 그가 품었던 수만 가지의 계책들은 더 이상 세상을 놀라게 할 수 없었다.

지나가던 늙은 장수 하나가 걸음을 멈추고 그 처참한 광경을 올려다봤다. 시선이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고개를 돌리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탄식 섞인 중얼거림이 바람결에 흘러나왔다.

"천하를 얻으려면 사람을 얻어야 하거늘, 실수 한 번 했다고, 저런 기재를..."

평소에는 들리던 흥얼거림이나 웃음소리가 사라졌다. 병사들은 숨을 죽인 채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그들의 눈에 서린 것은 군법에 대한 경외심이 아니라, ‘나도 마속이 될 수 있다’는 공포였다. 승상의 엄격함이 '정의'일지는 몰라도, 그 '정의'가 나를 향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칼날처럼 느껴졌다.

제갈량의 막사 안, 마속이 즐겨 앉던 자리에는 그가 남긴 병법서와 지도 뭉치가 주인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제갈량은 평소와 같은 자리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으나, 막사를 오가는 참모들의 발걸음은 평소와 같지 않았다. 그들은 승상의 눈을 피해 문서를 올리고 되도록 빨리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실수조차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질서가 잡혔으나, 그것은 진영을 감싸던 따뜻한 온기를 약탈해 갔다.




읍참마속. 울면서 마속을 벴다는 뜻의 비교적 익숙한 삼국지 고사성어다. 보통은 제갈량이 공정한 법 집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끼는 제자를 처형한 사건이라고 알고 있다. 맞는 해석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28년의 조직 생활에서, 나 역시 누군가의 마속이었고, 때로는 눈물을 머금고 칼을 들어야 했던 제갈량이기도 했기에 이 사건이 주는 반향이 가볍지 않다. 읍참마속은 법의 승리가 아니라, 리더가 감내해야 할 상실의 종류를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마속이 평지(현실)를 버리고 산(이론)으로 간 것은 개인의 고집이 아니라, 이미 확인된 성공방식이라는 '오만한 기준'이었다. 그러나 그런 마속을 믿고 중책을 맡긴 사람도, 실패할 경우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는 군령을 세운 사람도, 모두 제갈량이었다.

결국 제갈량은 자신의 가장 날카로운 칼을 스스로 부러뜨렸다. 제갈량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시스템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리더로서 원칙(군령)을 세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덕분에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조직은 활력을 잃었다.


1,800년이 지난 지금도 제갈량과 마속의 사건은 반복된다. 오늘날의 마속 역시 리더의 신뢰를 온몸으로 받는 유능한 직원이다. 그동안 거둔 큰 성과가 그것을 증명한다. 그들은 이미 검증된 과거의 성공 방식(기준)을 고수한다. 시장의 상황이 바뀌고, 주위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며 자기 확신에 빠진다. 그들에게 위험 신호는 경고가 아니라 소음일 뿐이다. 그래서 실패할 경우 받게 될 조직의 처벌조차 가볍게 무시한다. 하지만 그 확신은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실패로 되돌아온다. 기준의 역습이다. 이때 리더는 제갈량과 같은 상황에 처한다.

‘예외를 두고 인재를 구할 것인가, 조직의 질서를 위해 원칙을 지킬 것인가.’


결국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세운 군령이, 전쟁을 이끌어야 할 인재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래서 제갈량의 눈물은 단순하지 않다. 분명 그 눈물엔 아끼던 인재를 잃은 슬픔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갈량이 더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마속이 아니라 그를 믿었던 자신의 판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제갈량이 울면서 마속을 벤 것은, 시스템을 무너뜨린 제자에 대한 상실감 때문인지, 아니면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자각 때문인지는, 오직 그의 뺨을 타고 흘러내린 물방울만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