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능함이 사형 집행서가 되는 순간: 복심의 역설

의중을 읽는 능력과, 말할 권한은 다르다

by 임작가

어떤 경우, 리더의 의중은 읽어도 안되고, 설사 읽었더라도 발설해서는 안 되는 금기사항이 된다.


Scene #1

한중의 밤공기는 피부를 에일 듯 차고 건조했다. 조조는 1년이 넘도록 유비와 대치하고 있는 이 상황이 못마땅했다. 군막 구석에서 일렁이는 등불의 그림자가 탁자 위 식어버린 국그릇 속으로 길게 드리워졌다. 국물 표면에 얇게 굳은 노란 기름 막 위로 등불의 잔상이 불규칙하게 흔들렸다. 조조의 숟가락 끝이 그릇 바닥을 긁는 소리가 정적 속에 낮게 울려 퍼졌다.

국그릇 속에서 살점이 거의 붙어 있지 않은 닭 갈비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조각이 조조의 주의를 끌었다. 이리저리 돌려가며 생김새를 살폈다. 너무 오래 잡고 있었는지, 젓가락을 잡고 있던 손가락이 엇갈리면서 갈비 조각이 다시 그릇 안으로 툭 떨어졌다. 뼛조각이 국물의 수면을 때리면서 물방울 몇 개를 밖으로 밀어냈다.

조조는 그것을 다시 건져내지 않았다. 그저 손가락을 구부려 일정한 주기로 탁자 위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막사 밖에서 불어오는 마른바람 소리와 뒤섞였다.

그때 하후돈의 발소리가 막사 안으로 들어와 멎었다. 그날 밤의 암호를 물었다. 조조는 그릇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계륵(雞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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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ene #2

진영의 모든 막사로 암호가 전달됐다. 양수는 뭔가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이내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서책과 장신구들이 빳빳한 비단보에 싸서 목재 상자 안으로 차곡차곡 담겼다. 상자의 네 모서리가 자로 잰 듯 정확히 맞춰지며 뚜껑이 닫혔다. 매듭을 조이는 양수의 손놀림은 망설임이 없었고, 비단 천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소리가 막사 안을 채웠다. 굵은 비단 끈이 교차되며 단단한 매듭이 만들어졌다.

주변을 순찰하던 하후돈의 발걸음이 양수의 막사 앞에서 멈췄다. 눈동자가 크게 확장되며, 이유를 물었다. 비단 끈의 매듭을 짓던 양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고개만 돌려서 하후돈의 놀란 눈과 시선을 맞추며 말문을 열었다.

"닭의 갈비는 먹을 것은 없으나 버리기는 아까운 부분입니다. 이곳이 딱 그와 같으니 아마도 승상은 한중을 버리기로 정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리 돌아갈 짐을 싸고 있습니다."

하후돈의 머리가 크게 끄덕여졌다.

다음 날. 아침부터 철군을 준비하는 병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막사를 걷고 병장기를 실어 담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 소음이 조조의 귀에 닿았다. 곧 그 소란의 시작을 찾아 나섰다.

잠시 후, 양수의 막사 앞에 선 조조의 시선에 견고하게 매듭지어진 짐 꾸러미들이 들어왔다. 그 견고한 매듭은, 아직 내뱉지 못한 조조의 명령보다 한 발 앞서 철군을 선포하고 있었다. 조조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았다. 방향을 틀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바닥의 메마른 흙을 짓밟는 가죽 장화 소리가 묵직했다. 그의 눈동자 주변으로 가는 실핏줄이 솟아올랐다.

그날 이후, 양수를 다시 본 사람은 없었다.




리더의 의중(意中). 읽어야 할 숙제인가, 읽어도 덮어야 할 권한인가.


사람의 마음을 읽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때는, ‘꼭 말로 해야 아냐’는 타박을 듣게 되고, 어떤 때는 ‘그걸 말하면 어떡하냐’는 핀잔을 듣게 된다. 몰라도 문제고, 알아도 탈이 난다.

양수는 조조가 ‘계륵’이라는 단어를 암호로 정했다는 말만 듣고도 리더의 의중을 잡아냈다. 놀라운 재능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정도로 리더의 의중을 읽어내는 참모가 있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복심’이다. 리더가 입 밖으로 꺼내기 곤란한 말을, 굳이 대신해서 말해주는 복심이야말로, 조직에서 꼭 필요한 참모 중 하나가 아닐까.


예를 들어, 어떤 조직에 아주 권위 있는 그러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리더가 있다고 치자. 리더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그 공백을 자신의 해석으로 채우려는 이들이 나타난다. 매스컴 앞에서 리더의 복심을 자처하며 확신에 찬 인터뷰를 이어가는 광경은 낯설지 않다. 리더의 의중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그만큼 리더와 가깝다는 증거로 작용한다. 문제는, 그 거리감이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양수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조조가 한중 땅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계륵’이라는 단어를 듣자, 조조가 퇴각을 결정했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미리 철수 준비를 했다. 리더가 제 입으로 철수를 말하기는 곤란했는데 대신 전해주니 좋을 수도 있다. 하지만, 조조는 양수를 용서하지 않았다.


양수의 실수는 '읽은 것'이 아니라 '읽었다고 말한 것'이다. 의중을 읽는 것은 능력의 영역이지만, 그것을 드러내는 순간은 권한의 영역이다.


현대 조직에서도 이런 상황은 반복된다. 회의 전 리더의 표정을 읽고 미리 결론을 흘리는 참모나 아직 발표 전인 구조조정 계획을 귀띔하는 임원이 그렇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의중을 빛의 속도로 읽어내고 우쭐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때, 내 리더의 침묵이 찬사가 아닌 경고였다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더의 의중을 읽는 능력은 참모의 미덕이 될 수 있지만, '언제, 어떻게' 드러낼지를 읽지 못하면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하극상이 된다. 조조가 양수를 죽인 것은 그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리더가 결정을 공표할 권한을 선점했기 때문이다.




그날 조조가 양수를 죽인 것은, 위계를 바로잡기 위한 형벌인지, 아니면 자신의 자리를 침범한 자에 대한 본보기인지는 그날 조조의 눈동자 주변에 솟아오른 실핏줄만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