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마케팅으로 많이 쓰는 제목 투를 따라 해 보았다.
1.
최근 요리하는 일이 늘었어. 조림이나 볶음 종류야. 그중에서도 감자조림과 어묵볶음 등을 즐겨하지. 해 먹으면 지출이 준다는 말을 신봉하게 됐거든. ... 사실 신봉까진 아니고 '그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난다고 보면 되겠어. 알다시피 그런 상황이 지속되니까 말이야. 계획과 다른 상황, 예상치 못한 전개, 새로운 계획 등 조금 당황했어.
2.
다시 돌아와, 요는 요리가 늘었다는 말이야. 플랜 B까지 세워뒀던 계획에서 정확하게 플랜 B까지 어긋나며 '어라?' 했어. 뭐든 계획한 일이 예전 같진 않겠지. 어쨌든 그런 이유로 반찬을 종종하게 됐어. 그러면서 요리가 '는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나는 본격적으로 찬을 해 먹기 전까진 이 말을 '요리한 음식 맛이 좋아진다'는 정도로 이해했어. 그게 아니더라고.
3.
계속해서 음식을 하다 보면 조리 시간이 줄어. 처음 감자조림을 할 때만 해도 한 시간이 훨씬 넘게 걸렸던 것 같아. 양념을 졸이는 시간까지 포함해서 말야. 전분 빼는 데만 15분을 잡아먹으니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 그럼에도 요리 하나를 끝내고 보면 꽤 시간을 쓴 것 같거든. 그래서 처음으로 요리한 감자를 한 입 베어 물면서 '맛있다'는 생각과 함께 '이 정도로 시간이 걸려서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함께 굴러다녔어. 싱크대 높이 탓에 허리도 살짝 아팠거든.
4.
지금은 준비 시간이 많이 줄었어. 조리 시간이야 어쩔 수 없으니 그렇다 해도 과정은 갈수록 숙련되더라고. 능숙해진달까. 감자를 씻고, 껍질을 까. 깍둑썰기로 자른 뒤 당근도 비슷하게 손질해줘. 양파도 마찬가지. 매콤하게 먹을 땐 청양고추도 어슷 썰기로 다듬어 놓고 대파도 준비하지. 다진 마늘이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만들어. 굳이 다져야 할까 싶긴 하지만 통마늘론 시도 안 해봤어. 나는 '손이 큰' 탓에 한 번 조리에 실패하면 꽤 많은 양을 먹어치워야 하거든. 실패한 요리는 생각만으로 벅차. 아직 실패한 적은 없지만 말야. 어쨌든 이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인 조리에 들어가.
5.
조리 시간은 못 줄여. 재료에 따라 익히는데 필요한 시간이 있으니 말야. 나 같은 집구석 요리사는 더욱 그럴 테지. 기름을 두르고 다진 마늘을 기분 좋게 익힌 뒤, 당근과 감자 같은 단단한 것들부터 먼저 넣어줘. 어느 정도 익었다 싶으면 양파를 넣고 다시 볶아줘. 양파가 완전 흐물거리기 전 양념장을 만들고 투하해주지. 물 일정량과 함께 말야. 양념장은 워낙 기호를 타기에 인터넷에 찾아보면 개개인의 레시피가 있어. 배율이랄까. 이 모든 과정에 계속해서 냄비에 든 음식을 저어줘야 해. 어렵지 않지만 손이 많이 가. '음식은 정성'이란 말을 조리하다 보면 알게 돼. 단순히 안다기 보단 와 닿는달까.
6.
그런 의미에서 훗날 세상에 초대한 아이에게 요리를 해줬는데 "맛없어"라거나 "다른 거 해줘"라거나 갓 요리한 반찬을 뒤적거리다가 안 먹는 걸 보면 '아니, 이놈 생끼가...'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해. 어릴 때 반찬 투정하는 내게 화내시는 엄마를 보면서 그렇게까지 화낼 건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한 번쯤 해본 적이 있는데 그게 이해가 되는 거지. 매일 같이 끼니를 챙겨주던 엄마 입장에선 그 연속선상에 있던 어느 하루의 반찬 투정이 그렇게 서운할 수 있는 거고. 맥락을 이해하란 말은 비단 글에만 해당하지 않는 것 같아. 그땐 그걸 몰랐고.
7.
그래서 그런 말들 하잖아. 혼자 살아보면 집안에서 해주던 모든 것들의 실체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나는 그게 정성이 아닌가 싶어. 자취하면 청소나 빨래부터 시작해서 설거지, 요리, 공과금 등 의식 영역 밖에 둬도 살아가는데 무관했던 것들이 생활의 영역으로 침투한다? 정말 사소해 보이지만 어떤 개인이 이런 것들을 아예 관심 밖에 둔 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봐. 내가 엄마아빠의 뱃속에서 태어났단 이유로 이런 부분을 그들의 의무 정도로 치부했던 날들이 부끄러워져. 자취의 순기능이지.
8.
어쨌든 그런 것들을 깨닫는 중이야. 이미 알던 것들을 되새김하는 중인지도 모르고. 물질만능주의니 배금주의니 하는 시대에 경제적 가치가 비교적 떨어지는 시간들을 어쩌다 보니 되게 효용성 높게 쓰고 있어. 아무 근거 없는 망상에 불과하지만 이런 생뚱맞은 생각의 뿌리나 파편이 스티브 잡스 같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기술과 인문의 결합 같은 게 아닐까 싶어. 이런 시대라도 뭔가 사람 냄새나는 부분이 분명 우리에겐 있을 테고, 그것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부분을 캐치해서 산업과 결합시키면 역으로 '자본'이 되는 거지. 미약한 생각을 이렇게 이어 본다. 역시 기사 말고 소설을 쓰는 게 나았을까?
9.
이 이야기를 오랜만에 스벅에서 쓰고 있어. 이걸 쓰기 위해 내려온 건 아니지만 모처럼 집 밖으로 나왔지. 연대 운동장에서 뛰기도 하고 장 보러 다니고 이래저래 나오긴 했지만 필요 이상의 이유로 외출한 건 오랜만이란 의미야. 그냥 커피만 마시러 나온 건 아니니까 말야. 아마 커피에 조금 더 가치를 뒀으면 앤트러사이트로 갔겠지. 거기가 조금 더 내 입맛에 맞는 것 같아. 아, 맞다. 말인 즉 모처럼 외출하는데 고양이를 만났어. 이번엔 무려 고양이'들'이지.
10.
한동안 곁을 내어주지 않던 녀석들이 어쩐 일인지 이번엔 떼로 몰려왔어. 빌라 입구를 나서 모퉁이를 꺾었는데 한 마리가 보였어. "안녕, 인마" 인사했지. 도망을 안 가더라고. 나도 앉았지. 그랬더니 뒤에서 한 마리가 스윽 다가왔어. 두 마리였던 거지. 사각에서 다가와서 조금 놀랐어. 무심결에 일어섰는데 세상에, 한 마리가 더 있었지 뭐야. 한참 전 집 주변 고양이들에 관해 쓴 적이 있는데 그때 내게 애정표현하다가 별안간 손등을 깨물었던 점박이와, 새끼들 같았어. 반갑더라.
11.
세 마리가 내게 붙었어. 내 주변을 뱅글뱅글 돌더라고. 근데 특이한 건 점박이가 먼저 "냐아옹" 거리면서 다가와 비비기 시작하더라고. 꼬리를 우뚝 세운 채 살포시 걸어오더니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면서 내 다리에 자기 몸을 비볐어. 얘가 이러는 건 무척이나 오랜만이라 "어?" 했더니 눈을 똑바로 쳐다보길래 이 놈이 내 말을 알아듣나 싶기도 했어. 여러 가지 감정이 들더라고. 반갑고 귀여운데 또 물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한 번 물려본 사람이 왜 그 동물을 두려워하는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어. 어렸을 적 기억이라면 더하겠지. 나는 고양이들의 습성을 잘 몰라서 지난번 손등 어택이 워낙 갑작스러웠거든. 비비고 머리로 손에 박치기를 하는 행위가 애정에 기반한 거라고 인터넷에서 봤는데 갑자기 무니까 뜬금없었단 말이지. 놀라움을 동반한 두려움은 거기서 비롯됐지.
12.
오늘은 특이했어. 새끼로 추정되는 검정고양이와 줄무늬 고양이가 나한테 다가오려고 하자 점박이가 내 다리에서 냐옹 거리다가 후다닥 뛰쳐나가 다가오려는 애들의 얼굴에 앞발로 펀치를 먹이기 시작했어. '하악질'이라고 하나? 애들이 거리를 좁혀 오니까 그걸 시작하더니 조금 더 거리를 좁히자 애들을 앞발로 때리더라. 근데 나는 하악질 역시 인터넷으로 접해서 "하앜" 하는 소리가 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론 "키야앜"하는 소리에 가까웠어. 점박이가 등을 곧추세우고 캬악 거리다가 쫓아나가 앞발로 두 마리를 견제하는데 장난이 아닌 것 같았어. 순간 '새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주인에게도 하악질을 한다고 하니 새끼라고 못할 건 없겠지 싶었지만 조금 무섭더라.
13.
그 탓에 새끼 두 마리는 내 주변을 맴돌기만 하고 다리에 다가오진 못하고 있었단 말야. 상상해봐. 고양이에 한 번 물린 적이 있는 사람이 자신을 물었던 고양이를 포함해 세 마리에게 둘러싸여 있어. 심지어 자신을 물었던 녀석은 자기 다리에 붙어서 애교를 부리다가 "키야앜!" 거린다고. 그러다 후딱 후딱 거리며 다른 고양이들을 쫓아내곤 다시 돌아와서 몸을 비벼. 심지어 내가 움직이니까 세 마리가 나를 중심으로 원을 만들면서 2~3미터 따라왔어. 고양이 세 마리가 만든 원 안에서 움직인 거지. 이거 꽤나 무섭다?
14.
점박이가 혹시 또 갑자기 물진 않을까 쫄았어. 게다가 하악질까지 하니까 얘가 언제 갑자기 감정이 터져서 옆에 있는 날 물어버리진 않을까 했다고. 아무래도 기분이 나빠져 무언가를 문다면 자기 새끼보단 날 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 와중에 했던 거지. 발목 같은 덴 물리면 꽤 아프겠지? 이러고 있었다. 근데 안 물더라고. 그래서 앉았고, 이야길 좀 했지. "새끼냐?"라거나 "오랜만이네?"라거나 "또 물거냐?"라거나 "먹을 거 없는데"라는 식의 이야길 아주 작게, 아무도 못 듣게 했다고. 고양이들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를 쏠 수 있었다면 아마 고주파로 대화했을 거야. 그 정도로 작게, 우리는 속삭였어.
15.
팽팽한 긴장감 속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나와 점박이를 두고 1미터 정도 옆에 앉아 우릴 바라보는 새끼 두 마리가 있었어. 그 시간은 잠시 동안 이어졌는데 어째선지 젊은 또는 어린 여성들은 지나가면서 모두 고양이에게 인사를 하더라. 손을 내밀거나 말을 거는 식인데, 이때마다 우리의 시간이 흩어졌어. 우리가 앉아있던 시간에 4명이 지나갔는데 4명 다 그러더라. 애들은 낯선 사람이 다가올 때마다 도망갔다가 돌아오곤 했어. 문제는 그것보다, 이렇게까지 지근에서 고양이와 놀고 있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말을 걸면 내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겠어. 누가 앞에서 말을 하면 쳐다보게 되는데 '어... 고양이한테 말을...' 하는 생각과 함께 이내 시선을 피하게 돼. 좀 뻘쭘하더라고 그 상황이.
16.
오늘은 그래. 지금 시간 밤 10시 30분. 올라가다가 한 번 더 고양이를 만나면 조금 더 시간을 보낼 예정이야. 인스타로 비숑들을 구경하고 밖에선 고양이를 만나네. 동물은 참 사람에게 감사한 존재 같다는 생각이 깊어지는 요즘이야. 이와 별개로 다른 이야기도 쓸 게 많았지만 글이 길어져서 이만 줄여야겠어. 사실 스벅 문 닫는 시간이거든. 일기는 짬이 날 때 또. 그게 일기의 매력 아니겠어.
17.
아참, 요즘 들어 짬짬이 쓰는 글에 힘이 많이 빠진 느낌이야. '어깨에 힘 들어갔다'거나 '몸에 힘 좀 빼'라고 할 때의 그 '힘' 말이야. 부담이 없어서 그런가:) 아무튼 오늘도 여러모로 굿밤이다, 가을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