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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Sep 18. 2018

헤프닝; 허우적

'구명조끼' 입어야지


1.

오랜 친구에게 전화 왔다. 드문드문 연 4~5회 정도 연락을 하던 녀석이 전화를 해댄다. 못 받았더니 또 온다. 며칠 뒤 또 전화 왔다. 몇 시간 뒤, 못 받는 상황이었다고 카톡 하니 "지금 해야지"라며 또 전화 걸어왔다.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 또 못 받았다. 급한 일이냐 물으니 안부차 했단다. 안부 전화를 며칠에 걸쳐한 게 이상했지만 캐물을 이유는 없었다.


오늘 다시 전화 왔다. 카톡을 안 하고 굳이 전화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사람마다 익숙한 수단이 다르니 그럴 수 있다. 더군다나 친구와 나는 사고관이 약간 다른데, 가끔 나누는 대화가 맴도는 데서 그런 점을 느낀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오늘 전화를 받아 내가 물었다. "어쩐 일로?" 그러자 이렇게 답한다. "무슨 일이 있어야만 전화 하나~?" 다시 내가 답했다. "아니, 보통은 할 말이 있어야 전화를 하니까..." 그러자 친구가 "보통은 어떤 경운데~?"라고 말했다. "전화를 쓰는 사람들은..."이라고 대화를 잇다가 말을 삼켰다. 내가 하는 말이 상대에게 별 의미가 없단 느낌을 종종 받는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할 말이나 별 일 없지만 며칠에 걸쳐 전화를 해온 이유는 대부분 존재할 터. 앞서 품은 의문을 입증하듯 중간중간 대화가 끊겼다. 수화기 사이로 몇 차례 침묵이 흘렀다. 친구는 끊지 않았다. 남자끼린 오래 통화하는 일이 거의 없는데 오늘은 1시간 넘게 폰을 들어야 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확신이 돼 갈 무렵 친구가 말을 꺼냈다. 도와줄 수 없냔다.


친구는 얼마 전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재무설계 같은 걸 배운다는데 알기 쉽게 말하면 보험 영업이다. 영업의 고단함과 실적난 등을 언급하던 내게 친구는 그런 게 드물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재무설계받으러 오는 사람과 영업으로 유치해야 하는 사람의 비율이 반반 정도라고도 했다. 그래서 나는 "잘 맞으니 다행이다"라고 이야길 했더니 결국 보험 가입 이야기였다.


결론은 거절했다.



2.

이 친구는 아마 한동안 연락하지 않을 게다.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에서 조교로 일할 때 비슷한 경험을 했다. 거의 연락 없이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사람이 급하게 살가운 척한다는 느낌을 인간관계에서 한 번씩 받을 때가 있는데 그때가 그랬다. 친구는 고등학생 때 '짝지'였던 친한 녀석이었는데, 연락이 거의 끊겼다가 다시 닿은 상황이었다. 그게 그렇게 반가울 정도로 일희일비한 사이는 아니었는데 짝지는 유독 말이 많았다.


한참 잦은 빈도로 연락을 해오던 짝지는 속내를 밝혔다. '네트워크 마케팅'이란 걸 같이 하자고 했다. 맞다. 다단계다. 어떻게 빼내 보려는 내 속은 모르고 거부하는 나를 몰상식하고 의리 없는, 친구도 아닌 놈이라고 욕했다. 짝지 친형에게도 연락해봤지만 돌아온 건 소식을 접한 짝지의 일방적인 욕뿐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연락을 끊었는데 문득 이유 없이 전화했다는 친구의 말에서 기시감을 느꼈다. 세상에 이유 없는 행위가 어디 있던가. 어쩐지 중간에 들고 있는 보험 있냐며 흘리는 말이 요점일 것 같더라니.


역시 영업은 힘들다.



3.

주변에 보험회사에 다니는 친구가 있다. 영업 파트는 아니라서 부담이 덜한 친구다. 이 친구가 내가 가입한 상품의 내용을 수정하는데 조언해준 적이 있다. 친구들 사이에서 보험 관련 조언도 해준다. 이 녀석이 말하길 가입 부탁 같은 건 "쿨하게 듣고 넘겨라"란다. 부탁하는 쪽은 영업이 일상이라 그런 데 감정 두면 힘들다고 거절도 미안해하지 말란다. 다만 영업 파트가 아닌 자신도 '영업체험'이란 걸 몇 주 했었는데, 이때 내게 보험을 부탁할까 생각했었단다. 당시 내가 백수라서 다른 친구에게 했었다고.


이런 경향성을 보면 뭔가 있나 싶다. 말 걸기 쉬운, 뭐 그런 상이랄까. 나는 길거리에서 '도를 아십니까' 호객이나 '불우이웃/환경 도네이션' 행사요원에게도 거르는 일 없이 다 잡힌다.


덧) 여담이지만 20대 후반의 나는 호일펌에 수염을 기르고 다녔다. 그러다 건대 앞에서 '도'를 묻는 이들에게 잡힌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외모 콘셉트에 맞게 안경도 벗고 다녔는데, 이들이 내게 중국인이냐고 영어로 물으며 접근해왔다. 아니라고 답하자마자 집안의 화평을 묻기 시작해서 나도 그만 인상을 쓰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4.

보험 친구 부탁을 거절한 뒤 집에서 바퀴벌레를 발견했다. 거의 순차적으로 벌어진 일이라 인과 같아서 찝찝했다. 미안함이 바퀴로 현신한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나는 벌레와 뱀을 '매우' 꺼려한다. 집안에 바퀴벌레가 나왔다는 이유로 이사를 결심하는 친구만큼은 아니지만 잡지 못하면 잠들기 어려울 정도로 얘네를 싫어한다. 그 이유로 이 시간에 깨어있지 않은가.


바퀴는 잡았다. 모기용 에프킬라로 1차 공격 후 휴지를 10장 정도 뽑아 잡은 다음 변기에 흘려보냈다. 이놈들은 상당히 빠르게 움직이는 탓에 1차 공격에 실패하면 놓칠 위험이 컸다. 신중하게 조준한 뒤 에프킬라의 1/5 가량을 쏟아부었다. 보통 에프킬라론 바퀴가 죽지 않기 때문에 액화된 가스로 움직임을 더디게 만들 셈이었는데 가스를 한참 맞더니 뒤집어져서 바둥댔다. 그대로 처리했다.


이 집에 이사 온 뒤 바퀴를 본 건 두 번째다. 17개월에 두 번 본 셈이니 다행인가 싶다가도 어딘가에 바퀴가 숨어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거둘 수 없다. 성체 바퀴가 나타나면 외부에서 흘러들어왔을 확률이 높고, 작은 바퀴가 보이면 집안에 알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말을 어디선가 봤는데 그런 사실 따위 안중에 없다. 다만 언제든 바퀴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이 사람을 불안하게 한다. 조용한 방에서 '다닥다닥' 무엇인가 기어가는 소리를 들어본 사람은 안다. 이 불안의 기원이 어디인지.



5.

기자 일하는 친구가 언론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에 연수 갔다. 언론재단은 현직 기자들을 대상으로 이 같은 지원 사업을 포함해 다양한 행사를 연다. 아마 기협 가입사를 대상으로 하는 것 같은데 그 외 언론사도 해당사항이 있는지 확인은 안 해봤다. 아무튼 기협 가입사 기자 대부분은 수습기자 때 언론재단 연수를 2주 동안 받는다. 나도 이걸 받은 탓에 언론재단에 가면 수습기자연수 000기라고 해서 사진이 걸려있다. 요는 이걸 받고 나면 정보가 언론재단에 등록돼서 행사 안내 문자를 한 번씩 받을 수 있다. 기자를 그만둔 지가 언젠데 아직도 문자가 온다며 툴툴거리다가 친구 소식을 접하고 생각나서 써본다.


덧) 우리 때 언론재단 수습 교육 강사로 온 젊은 기자들은 JTBC 소속이 대부분이었다. 이가혁 기자가 먼저 하고, 며칠 뒤 김필규 기자가 와서 '내가 수습기자들 강의를 해도 될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가혁 기자가 왔다 갔다는 말을 듣고 안심했다'는 내용의 농담을 했었다. 둘은 선후배(김필규>이가혁) 관계다. 이가혁 기자가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고, 김필규 기자가 생각보다 고연차라 또 한 번 놀랐다.



6.

지난 한 달간 세웠던 구직 계획이 완전히 틀어지며 고민하다가 드디어 오늘 다른 분야에 출사표를 던졌다. 다른 분야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의도적으로 다른 분야로 진출해야겠다며 지원서를 뿌린 건 처음이다. 고로 오늘의 행위 중엔 '인간의 한 걸음'과 같이 별 거 아니지만 내 생의 맥락으로 볼 땐 '위대한 도약'쯤 되는 짓이다. 물론 이쪽 일이 잘 풀려야 위대하거나 말거나 하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 테다.



7.

6번마저 어긋나면 생애주기별 계획 수립에 차질이 생긴다. '할 수 있는 일'과 '잘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두고 고민하는 행위에 아무 의미가 없어지며 먹고사니즘이 시대의 화두로 부상할 예정이다.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꽤나 궁지로 내몰리는 중이다. 여기서 '궁지'는 직업 선택에 있어 내가 취할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상태를 말한다. 달가운 상황은 아니라는 거.




앤트러사이트 연희점, 나쓰메 소세키 라테로 갈음.


8.

친구 1이 '독자와의 대화' 같은 걸 앞두고 있다.

친구 2는 조만간 결혼한다.

나는 곧 추석을 맞이한다.


세 가지 사실이 구직활동에 부리던 내 여유를 말살하고 있다.

통장의 공백과 일상의 여유는 반비례하는구나.



9.

최근 겪은 작은 경험 두 가지. 돌발상황을 눈앞에 두고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나 알 수 있었다. 


첫 번째는 달걀프라이에서 비롯된 일이다. 달걀 굽다가 식용유를 쿡탑에 흘렸더니 불이 났다. 중국집 주방에서 타오르는 불길처럼 '화악' 불길이 올랐다. 쿡탑에서 실제 불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중요한 건 불이 붙었을 때 생각보다 재빠른 동작으로 이어지진 않더란 점이다. 물을 뿌려야 하나, 쿡탑을 꺼야 할까, 이대로 있어도 되나 등 판단이 이성적으로 돌아가지 않더라는 말.


두 번째는 도로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이다. 운전하다가 자동차 브레이크에 이상을 느꼈다. 브레이크가 서서히 먹던 전과 달리 멈추기 직전에 갑자기 '꿀렁' 하며 차에 급제동을 건 것처럼 차체가 튀었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고 출발할 때도 비슷한 일이 한 번쯤 일어났는데, 운전하는 내내 불안해졌다. 다행히 어떻게 집까지 무사히 올라오긴 했는데 도로 중간에서 차가 퍼지거나 브레이크가 아예 나가버리는 건 아닌지 식은땀이 났다. 제삼자 일이었다면 '보험사 불렀어야지' 했을 텐데 내 일이 되니 판단이 정확히 서지 않았다.



10.

안 쓰려다가 기억나서 쓴다. 내가 기자 일이 별 거 없다고 느낀 데는 당시 우리 부서장이 큰 몫을 했다. 이 사람 때문에 일을 그만둔 사람이 상당하다는 말도 나돌았다. 나보다 1년 입사를 먼저 했던 선배 한 명도 이 사람으로 인해 그만뒀다. 내가 그만둔 데도 이 사람의 공(?)이 혁혁하다. 그리고 다음 기수로 입사했던 신입기자도 얼마 전 그만둔 듯하다. 지난 4년간 공채를 세 번 했는데 세 기수 모두 퇴사자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4년 간 뽑은 인원 다섯 명 중 현재 남은 사람은 한 명뿐이다. 거짓말을 빈번하게 하고, 그에 따른 과오를 상대에게 돌리며 쌍욕과 인격모독을 서슴지 않던 사람인데 이 사람은 내게 '성당을 다니기 시작했다'고 내가 재직 중이던 그 당시 말했다. 입사 전형만 거의 두 달에 달하며 누군가에겐 평생 닿기 힘든 땅일 수 있는 기자 공채 너머에 버티고 앉아 저런 횡포를 부리며 신입기자들을 핍박하는 양반이 성당이라니, 아이러니하지 않나. 얼마 전 이번 수습기자마저 퇴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씁쓸한 마음에 기록한다.



11.

그나저나 오늘은 사진이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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