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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IM Sep 22. 2018

세탁기로 지내는 기우제

귀향길 단잠을 위해 새벽에 끄적이다

신촌, 2018.


1.

그래. 글은 역시 새벽에 쓰는 거라며 오전 3시에 운을 띄웠다. 멜론으로 듣던 노래도 어느새 플레이리스트 중반에 접어들었다. 처음에 듣던 '호텔 캘리포니아'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비욘세의 '크레이지 인 러브'가 흘러나온다. 재즈 같은 걸 노동요로 틀어놓고 싶었지만 어제 이미 한참 들었던 터다. '멜론'을 이용하면서 부쩍 음악을 듣는 일이 늘었다. '듣는다'는 행위보단 '틀어둔다'는 표현이 적확하다. 유료로 무언가를 쓰는 데 대한 의무감 같은 걸까. 다음 곡은 아델의 '솜 원 라이크 유'다. 비욘세의 노래가 끝나길 기다리며 2번으로 넘어간다.



2.

커피를 마셨다. 심야에 카페인을 섭취하는 건 자지 않겠다는 무언의 시위 같은 거다. 그런 이유로 비교적 쌩쌩한 눈을 말똥거리며 책상 앞에 앉았다. 글 쓰려고 마신 건 아니지만 여러 정황이 맞아떨어졌다. 이따 오후에 고향 가는 차에서 숙면이 필요하다. 초저녁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시 곯아떨어졌다. 묘한 갈증에 커피를 택했다. 브런치에도 이래저래 쓸 거리가 생겼다. 그래서 자지 않는 일이 오늘은 용인된다. 스스로를 설득하지 않아도 딱히 합리화 할 필요 없는 날이랄까.



3.

엊그제 잠을 설친 탓에 초저녁에 잠들고 말았다. 한두 시간쯤 지났을까. 빨래를 돌리다 잠들어서 그런지 불현듯 잠에서 깼다. 세탁기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세탁물을 탈탈 털어 빨래대에 널었다. 베란다에 쌀쌀한 공기가 감돌았다. '으...' 자다 깬 사람이 느끼는 한기에 얕은 신음을 뱉은 뒤 빨랫감을 차례로 널었다. 궂은 날씨에 미뤄뒀던 빨랫감이 쌓여 내용물이 상당했다. 놀고 있는 옷걸이를 총동원했다. 그래도 남은 옷가지는 걸 수 있는 곳에 죄다 걸었다. 최근 구입한 천연 섬유유연제 향이 곳곳에 널린 옷을 통해 방안에 퍼졌다. 자몽향이다. 향기가 강해지자 찌릉내인지 향기인지 구분이 모호했다. '냄새 괜찮을까' 따위를 잠시 생각하다 소파에 몸을 기댔다. 한차례 노동을 마친 자의 피로가 소파에 그대로 스몄다. 어쩐지 고단했다.



4.

베란다에 서서 남은 빨래가 없나 세탁기 안을 확인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신음소리다. 쥐어짜는 듯한 소리가 동네를 울렸다. 무슨 야동인가 싶었다. 너무나 적나라해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밤 10시 반, 지속되는 소리, 골목에 멈춰서 소리의 진원지를 찾는 어느 아주머니까지. '아, 그거구나' 실감했다. 네이트 판에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주변에서 일어나자 웃겼다. 덜컥 야한 생각이 들기보다 '이거 뭐야' 했다. 우리 빌라도 아닌데 창 밖을 타고 소리가 흐를 정도면 창문을 덜 닫았나 싶었다. 그럼에도 이토록 신랄한 본능이라니 흡사 자연이다. 나는 베란다에서 작업을 마무리하며 보고야 말았다. 소리가 잦아들고 타이밍 좋게 불이 켜지던 어느 창가. 그네들의 사랑은 축하하고 싶다만 다소 민망한 건 어쩔 수 없다.



5.

고요를 찾은 동네는 잠자리에 들었다. 화물차나 뒤늦게 집으로 향하는 주민들의 소리만이 간혹 귓전을 때린다. 침묵을 벗 삼아 펜을 꺼내 들었다. 끄적끄적 다이어리를 잉크로 채운다. 지출계획서 같은, 대체로 다이어리에 쓰는 내용은 '계획'이 절반을 넘는다. 이사를 결심했다. 물망에 올린 후보지는 당산. 전세로 집을 옮겨 고정비를 줄일 셈이다. 오늘 보고 왔던 면접에 합격하며 얼떨결에 다시 회사에 다니게 된 탓이다. 어쩐 일인지 새 직장을 잡을 때마다 이전 직장에 비해 한 단계씩 급여나 처우 수준이 하향되고 있어 수입 대비 지출 비율을 재조정해야 한다. 연희동을 떠나는 건 그런 이유를 포함한다. 계약 만료도 얼추 다가오고 있지만 서도.



6.

(입사하게 될 회사의 조건에 따르면) 이전 직장보다 급여가 꽤 떨어졌다. 노동강도나 안정성 같은 장점이 이를 상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직장은 타인의 후기를 읽더라도 결국 겪어봐야 안다. 그때그때 상황이 다르고 개개인에게 적용되는 장단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숱한 경험으로 깨달은 구직 팁 중 하나다. 고로 입사에 당장 기뻐하기보다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마음을 갈무리했다. 큰 감정 동요 없이 머릿속으로 일을 일단락 하자 전보다 조금은 자랐나 싶다. 어쨌든 이런 조건 아래 전셋집을 구하면 이전 직장을 다닐 때보다 고정비가 다소 절약된다. 약소한 금액이지만 일단은 그렇다. 계획대로 된다면 말이다.



7.

가능하면 언론계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이게 근래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어쩌다 보니 언론계에서 익힌 기술은 쓰게 됐고, 언론의 범주 아주 끝자락에 발을 걸친 형국이다. 이 애매함을 긍정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내가 무슨 분야에서 일하든 어차피 기자 일이 아니라면 그게 무슨 큰 의미가 있나 싶으면서도 마음 한 편으론 그렇다.



8.

이런 생각이 마음을 휘저을 때 전 직장 선배에게 연락이 왔다. 나와 꽤 많은 연차 차가 있으면서도 마음을 써주는 고마운 선배 중 한 명이다. 오히려 그래서 나 같은 막내 급들이 선배에겐 '아픈 손가락'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동안 연락을 드리지 못하고 사는데 급급했던 나다. 선배는 '어떻게 지내냐'고 물었다. 언론 일을 하지 않고 있다고 에둘러 답했다. 선배는 '마음 편하냐'고 물었다. 그럴 리가. 답변을 마음속으로 삼키며 "몸은 편하다"고 말했다. 가벼운 근황 이야기를 잇다가 우리는 조만간 회사 근처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너무나 일을 많이 한 나머지, 퇴근 후 가방을 벗다가 앉은 채 그대로 잠들곤 했던 추억을 내게 안겨준 회사 근처에서다. 몇 년만에 다시 그곳을 찾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까. 내심 반가움이 앞설지도.



9.

약속은 약속이다만, 예상치 못한 선배와의 통화로 옛 기억이 되살아나 심란해졌다. 부슬비 내리는 연희동을 뽀작뽀작 걸어 다니다 몽쉘통통과 찰떡파이를 품에 안고 돌아온 이유.



10.

다시 생활전선에 뛰어들며 시선을 다른 곳에 돌렸다. 생계 걱정 같은 건 이제 뜬구름 같은 거니까. 인스타를 뒤적이다 유병재 계정을 발견했다. 찾아들어간 건 아니다. 내가 팔로잉하는 4컷 만화 작가의 그림에 그가 댓글을 달아 알게 됐다. 그는 꽤나 무례한 사람들의 반응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 방식이 오히려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나는 그가 유쾌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건지, 혹은 유쾌한 건지 모른다. 보통은 상처를 짓이기면 진물이 흐르는데 그는 웃음을 흘렸다. 어떤 순간을 긍정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재능/노력 같다.



11.

'재능'이란 말은, 타인의 노력을 눙칠 때 표현하는 게으른 단어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12.

더불어 지인의 지인 인스타도 보게 됐는데 책을 엄청 많이 읽는 분이었다. 사실 누군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매번 책을 쌓아두고 읽는 듯 사진을 올렸다. 출판사 직원이나 에디터가 아닐까 추측해봤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글을 유려하게 쓰거나 글에서 유의미한 사유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아서 좋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섹시함이 묻어난다. 이 사람이 인스타에 남기는 글도 비슷했다. 나도 멈춰있는 독서회로에 기름칠 좀 하면 좋겠다. 삼겹살 구워서 배에도 기름 좀 치고. 고등학생 때 은사가 농담처럼 '머리는 아인슈타인, 몸은 아놀드 슈왈제네거'라고 했었는데 양자가 바뀐 느낌이다.



13.

아니, 근데 분명 어제 오후부터 맑다는 일기예보를 봤는데 이 시간에 장대비 무엇. 빨래 운다..



14.

다시 월급 타기 시작하면 해결할 버킷리스트, 라고 쓰고 '급한 불'이라 읽는다. 하루에도 수차례 충전을 요하는 폰 교체. 이번에야 말로 블랙베리 키2로 갈아탄다. 헬로모바일에 대한 소문이 안 좋던데 정발 통신사가 CJ 뿐이라 할 수 없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차량 점검. 아마 브레이크 패드를 갈거나 뭐라도 해야 할 듯하다. 더불어 엔진오일과 후미등 한쪽도 교체해야 한다. 타이어는 괜찮으려나? 그러고 보니 에어컨 가스도 채워야 한다. 용케도 타고 다녔네 이걸. 공업사에서 나올 견적이 두렵다. 첫 월급 그대로 털리겠는데:(



15.

수염을 기를 수 있게 해 주고 문신도 허용하는 등 근무 환경에 제약이 적은 곳이면 다소 급여가 적어도 '충성, 충성' 하면서 다니고 싶겠다. 예술가를 동경해온 나는 늘 그 언저리에 서고 싶어 안달복달했다. ‘허기’는 시간이 지나며 바래고 깎여나갔지만 여전히 내 속에 유효하다. 예술이란 게 행하는 사람의 외형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설명할 수 없지만 막연한 바람이 조건을 갖추게 된 것이 그런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소망이 세상에 드러난, 레지스탕스 같은 거랄까. 이 각박한 세상 뛰쳐나가 게릴라 같은 건 못 하고, "수염 기르고 싶은데..." 따위를 맥북 앞에서 읊조리는 소심한 저항. ... 깃대라도 하나 세울까 보다.



16.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을 최근 실감했다. 사람의 가치란 걸 그런 데서 느낄 수 있는 거겠지. 조금 더 사람이 소중해지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 뭐 이런 미담으로 마무리하며 아침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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