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톡.
1.
거의 집안 붙박이 생활을 하고 있어. 지출을 막기 위해서지. '쓸 데 없는' 지출이 아냐. 그냥 지출 그 자체를 막는 거야. 예산 압박이 시작 됐거든. 아니, 무엇보다 수입이 없어지면 심적으로 부담이 된다고. 월세에 보험에 통신비 등 생존에 드는 비용 자체가 만만찮단 말이지. 그래서 생활은 잠정 포기하고 생존에 매달린 상황. 물론 외통수는 아니지만 말이야.
2.
최근 압박감이 심해졌어. 추석이 다가오거든. 일을 하지 않아도 생활에 여유가 있다면 크게 문제 될 건 없는데 늘 명절은 골칫거리야. 명절을 골칫거리로 여기게 된 배경 자체가 문제일 수 있지만 지금 처한 상황에선 명절이 더 큰 문제라는 거지. 1년에 두어 번 뵙는 부모님이나 친척들 앞에서 늘 '잘 산다'는 걸 연기해야 하거든. 실제로 나쁘지 않게 살고 있지만 그렇다고 '잘 사나?' 자문해도 당장 '매우 그렇다'는 긍정이 안 되는 이상 그건 연기에 가깝지. 어릴 때부터 명절이 내게 주는 색감은 꽤나 따사로운 편인데 그에 반해 내가 하는 행동은 찝찝한 축이라 미스매칭이 아닌가 싶어.
3.
집에서 시간을 보내니 책이나 인터넷을 뒤지는 것 말곤 딱히 이야깃거리가 없더라고. 그러다 보니 일기를 안 쓴 게 아니라 못 쓴 거라고 봐야겠어. 몇 번 창을 띄웠는데, 그거 있잖아. 할 말 없는 상황에서 되게 뻘쭘하게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거. '무슨 말이라도 할까?' 이런 걸 속으로 뇌까리게 되더라고. 내가 브런치 창 열어놓고 한 생각이 딱 그거야. 달갑지 않았지. 일기에 책임을 부여하면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이건 의무가 아냐.
4.
그런 생활의 연속. 그저 살아가는 데 의의를 둔? 이렇게만 말하면 무기력한 실업자 같아. 무기력한 것도 맞고 실업자도 맞는데 실업자면서 무기력하진 않아. 묘한 뉘앙스 차이가 있는데, 퇴사한 뒤 구직활동에 전념해 본 사람이라면 이 차이를 알지도. 어쨌든 필요에 의해 다시 각을 재고 돈벌이 궁리를 하고 있어. 늘 이맘때쯤 드는 생각을 떨쳐내면서 말이야.
5.
언론에 대한 미련. 이걸 떨쳐내는 거야. 신문방송 전공에 저널리즘 석사. 그 결과 공채라는 걸 뚫고 기자가 되기도 했지만 기대만큼 큰 의미는 없더라. <나의 아저씨> 보면 고두심이 그러거든. 상훈이와 기훈이한테 "야 이 고학력 등신들아!" 내가 이걸 보고 '피식' 했다고. 아, 제삼자가 보면 이게 이렇게 보일 수 있구나. 첫째는 대기업 다니다 잘리고, 셋째는 영화 하다가 결국 엎어진 케이스거든. 내 쪽에서 보면 나는 셋째 케이스 정도 되려나?
6.
그런 의미에서 셋째역을 맡은 송새벽(기훈)의 막바지가 씁쓸했어. 반가운데 씁쓸한 양가감정 있잖아. 마지막회를 보면 기훈이가 다시 펜을 잡아요. 시나리오를 쓰는 듯하거든. 영화를 놓지 않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장면을 보여준단 말이지. 열악한 노동 환경과 불투명한 미래를 담보로 한 그 바닥에 다시 뛰어드는 결심이 어쩐지 무턱대고 좋지만은 않았어. 꿈이랍시고 달려가는 지인들을 보는 주변의 시선이 이럴까?
7.
나는 계속해서 생각해봤어. 취재하고 기사 쓰고, 사진 찍는 걸 (목표/업으로) 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건 아냐!'라며 쳐내긴 힘들거든. 나는 그렇더라고. 왜, 그렇잖아. 친구나 가족 중에 굉장히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우리 마음은 '친구 또는 가족'의 범주에 여전히 그 사람을 넣어둔다고. 밉상이지만 아예 신경을 끌 수 없는 뭐 그런 설명하기 애매한 관계의 지속이란 거지. 지금 내가 '기자직'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래.
8.
그럼에도 이 길은 아니란 생각이 드는 게 뭐냐면, 신생 언론이나 중소 언론 지원자 통계에 40대나 50대 지원자가 끼어있더라고. '경력기자 모집'이 뜨면 꼭 저 연령대 지원자가 보여. 근데 데스크 급을 뽑는 데가 아니면 경력기자로 저 나이 때는 잘 안 쓰거든. 급여 면에서도 그렇고 특정 분야가 아니면 일선에는 젊은 기자들을 많이 보내지. 기자는 나이가 들면서 관리직에 오르면 영업에 기여하는 측면이 강하다고 해. 고로 기자의 연차란 게 꼭 득이 되는 것만은 아니란 거지.
9.
기자는 숙련공인가. 그런 생각도 해봤어. 한 분야에 오래 종사하면 전문기자가 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어. 일단 기자 일 자체가 수익성이 없거든. 심지어 요즘은 각 분야 전문가의 글을 기고받아 운영하는 큐레이팅 방식 웹사이트도 크게 언론의 범주에 포함되잖아. 그렇게 볼 때 기자의 숙련도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싶어.
10.
말은 이렇게 해놓고 밥벌이를 위해 이쪽 바닥을 기웃거리는 건 함정. 사고와 행동이 일치하면 오죽 좋겠지만 현실이란 게 항상 그렇지는 않잖아? 타겟팅된 두 곳은 다른 분야. 한 곳은 잡지 쪽인데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직종에 넣어놨어. 늘 그렇듯 박봉이지만 사진도 '기술'이란 생각으로 지원했어. 사진을 계속하게 된다면 이 '다음'을 노리는 게 있거든. 다른 곳은 전문지지. 전문지인데 꽤나 안정적인 근무 환경을 가진 곳 같더라고. 게다가 급여가 높지. 이 급여로 또 '다음'을 노리는 게 있어서 두 군데를 물망에 올려놨어. 둘 다 잘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어서 기대는 안 하고 있어. 플랜 B까지는 일단 세워둔 상태. 여러모로 이직 한 번 엎어지니 타격이 크네:(
11.
아참. 요즘 시사보단 연예 뉴스나 연성 기사를 즐겨보는 편인데 어찌나 한결같은지. 배우자 미모나 배우자와의 나이차, 연예인 재력, 몸매 등이 끊임없이 기사화되더라. 그쪽 산업 주요 아이템이라곤 해도 참 인간미 없단 생각에 피로감이 쌓여. 결국 사람들이 가진 욕망을 어떻게 보여주냐는 문젠데 매체도 늘고 경쟁도 심해지면서 단편적인 부분을 부각해 보여주니까 조금 물려버렸어. 이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는 거겠지.
12.
곧 면접인데 늦겠다. 오랜만에 쓰는 일기는 이만.
(28일 13:45, 내용 추가) 사진기자 채용 면접에서 “사진과 글 중 어디에 애착이 더 가요?”라는 질문에 대답을 못했다. 빨리 대답하려고 머리를 굴렸는데 답이 안 나왔다. 영악하지 못해 분하고 솔직하지 못해 안타깝다. “사진에 애착이 더 큰 사람을 뽑으려고 하는 거니까...”라는 말이 이어진 걸 보면 결과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인 걸 어쩌겠나. 나는 욕심이 많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