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무거운

그렇고 그런 이야기

by O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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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던 8월 전기세가 나왔다. 34,000원 수준. 7월 초부터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 에어컨을 사정없이 돌린 점을 감안하면 적은 금액이다. 게다가 랩탑도 거의 켜놓다시피 했으니 기대만큼 전기세가 나오진 않은 셈. 탈원전에 환경문제니 뭐니 해서 에너지 소비 절감이 화두로 떠오르는 요즘이지만 전기세를 보고 나니 '조금 더 써도 좋을 걸 그랬나' 싶다. 괜스레 에어컨을 껐다 켜거나 밤에 잠을 설친 점 등을 생각하면 에어컨을 켜고 지내는 게 여러 가지로 이득이었을 것 같다.


이번 달 전기 사용량은 지역 평균에 살짝 못 미치고 전년 동월 대비 30 kwh가량 더 썼는데, 기록적인 폭염을 고려하면 선방한 축이다. 사실 자취를 시작한 이후 겨울 난방비를 생각하며 전기세가 비싸다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인터넷에서 누진세 관련 뉴스와 댓글을 접하고 나니 지레 걱정을 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심지어 우리 집 에어컨은 연식이 아주 오랜 제품이라 시간당 소비전력이 400w 정도다. '많이 나올 리 없지' 하면서도 펑펑 쓰지는 못한 소심함이 고지서에 반영됐다.




매뉴팩트 '플랫화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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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로 밥벌이하는 일은 쉽지 않다. 디테일로 들어가면 조금 더 갈래가 다양한 이야기를 하게 되지만 직업적인 면에서 보면 그러하다. 가령 몸 담았던 언론계만 보더라도 그렇다. 한국엔 기자들조차 정확히 알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매체가 있다고 하는데, 몇몇 경제지나 방송사, 종편, 일간지를 제외하면 급여가 '박하다'는 범주에 속한다. 한 번씩 뉴스로 나오는 직장인 소득 평균 구간 같은 조사를 보면, 중위소득의 하류나 중위 소득 구간의 아래 구간에 위치하는 게 기자들의 밥벌이 현실이다.


시간이 지나도 공급이 줄어드는 법 없이 나눠먹을 '파이'만 자꾸만 줄어든다. 언론사의 주요 수입원인 광고수익만 해도 종편 출범 이후 이전보다 훨씬 따내기 어려워졌다. 기업이나 기관의 광고 집행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매체가 늘어나면 결국 제로섬 게임이 될 수밖에 없다. 고정 독자층이 있는 지상파나 몇몇 케이블 방송사는 광고 수익이 끊길 염려가 적다 하더라도 지면을 내세워 광고를 유치하는 일간지 이하 전 언론사는 그야말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광고 효과보다 위기 대처용 투자 명목으로 광고를 언론사들에 뿌렸던 기업 등은 언론사의 힘이 약해질수록 투자 동력을 잃어간다. 굳이 해당 언론사발 기사를 막을 이유가 없어지는 탓이다.


그럼에도 이쪽 일에 뛰어드는 이들의 상당수는 일의 가치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직군보다 수요가 적어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전선에 뛰어드는 것이다. 실제로 언론학에서는 보도의 사회적 가치에 대해 가르치기도 한다. 때문에 인지도에 비해 급여가 높지 않은 언론사들이 많고, 이런 경우 급여가 높아질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높지 않다. 이런 현실을 감내하는 기자들은 일에서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 '보람'이나 '희망'이 그 대상이었다. 조금 더 인간 냄새가 나는 조직과 일들, 사회를 어제보다 살짝이라도 나은 방향이 되게 하는 밑거름 정도의 일을 할 수 있으면 족했다.


이상이라거나 현실감 없는 이야기란 걸 이제는 안다. 무엇이든 붙들 것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의미부여가 소명의식을 지탱하는 중요한 나사로 작동했다. 그런 생각이 들던 무렵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어젯밤 지난 사진을 정리하다가 그 시절 기록들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부장과의 카톡 화면 캡처라든가 대화록 등이다. 오랜만에 구시대 유물을 살펴보니 옛 생각이 났는데 지금 생각하면 참 터무니없이 굴었다 싶다. 이를 테면 상사가 카톡으로 "개새끼야"라고 말하거나, 전화로 "아이, 씨발놈아"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그대로 참아낸 상황.


왜 그랬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저런 말을 들을 환경은 인생에서 좀처럼 마주하기 어렵다. 군대는 특수한 경우니 제외하자. 심지어 어떤 상황은 불가피했고, 어떤 경우는 내 잘못도 아니었다. 저런 조직에서의 해명은 또 '하극상'의 영역에 편입된다. 우습지 않은가. 이런 문화다 보니 위에서 잘못을 지적하면 잘못한 게 되어버리는 상황이 반복적으로 연출된다. 생각해보라. 오전에 00부 장관을 만나 "아, 기자님~ 안녕하세요?" 소리를 듣고 오후에 부장에게 "개새끼야"를 듣는다. 내가 뭐 하고 있나 싶어 진다.


진작 그만뒀어야 할 곳을 나는 한동안 참으며 다녔다. 그 무렵 현장에서 만나는 타사 선배들에게 "열심히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 작은 위로가 비상식적인 환경을 버텨야 하는 이유가 됐나 보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이게 또 아이러니라,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는 왜 부장의 욕받이가 되는가. 보다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하게 되더란 말이다. 이런 부조리를 통과의례쯤으로 여기는 문화도 그렇고 이해 안 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최근 비슷한 문제로 "이 바닥"(언론계)을 떠난다며 모 커뮤니티에 글을 남긴 전직 기자의 변을 보고 추억이 돋아 썼다. 이 기억은 언제쯤 추억이 되려나.


덧)

괴상한 이유를 대며 자기 행동을 합리화하던 부장이 언제부턴가 성당에 다닌다고 했을 때 영화 <밀양>이 떠올랐다. 몹쓸 짓은 엄한 데다 하고 왜...


덧 2) 모 기업에서 콘텐츠 에디터로 일할 때 팀이나 회사 분위기에 내심 감동한 적이 있다. 모두가 상대를 "00 씨"나 "00 차장/이사님" 등으로 부르며 '선'을 넘는 법이 드물었다. 언론사에서 일했던 나는 잠시 그 분위기에 놀라 어벙벙했다. 하긴, 그런 분위기에선 누군가 상대에게 "개새끼야"라고 하는 게 용인될 리도 없겠지.


덧 3) 거대 홍보대행사를 다녔던 친구 말에 따르면 "홍보대행사 직원은 모두가 (고객에게) 약자라서 내부적으로 굉장히 사이가 좋다"고 한다. 대체로 밖에서 갑질을 당하고 돌아오기 때문에 서로를 위로하며 분위기가 좋아질 수밖에 없다고. 심지어 상황에 따라 '갑을병정' 중에서도 '병'이나 '정'이 되는 경우도 태반이라 하니 그런가 싶기도 하다.


덧 4) "으~ 기자들은 진짜..."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또한 며칠 지나지 않은 최근 일이다. 자기 의견을 굽힐 줄 몰라 만남 자체가 유쾌한 경우가 드물다는 내용이었다. 기자란 직군에 종사하는 이들도 천차만별이라 일반화는 어렵다. 다만 직업적으로 몸에 밴 비판적 시각과 고집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일을 몇 번 접하다 보면 그런 반응이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여러 가지 의미로 기자는 현대 사회에서 '선비'와 가장 유사한 직군 같단 생각이 든다.


덧 5) 덧 4에서 언급한 '기자 물'을 빼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다.





B컷, 군산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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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기술을 부리거나 3D 업종에 속하는 고소득 직군에 종사하지 않는 이상 평생 모을 수 있는 재화는 한정적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가령 지금까지처럼 직군 평균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급여를 받아온다고 가정한 뒤 급여 상승분을 예측해 수입을 셈하면, 퇴직 예상 시기까지 벌 수 있는 금액은 서울 시내 집 한 채 값이 채 안 나온다. 물론 지출 등도 어림 잡아 예상한 결과다. 더군다나 맞벌이는 최고의 경우에 해당하고, 출산이나 다른 이유 등으로 외벌이가 시작되면 일상생활에서 훨씬 많은 것들을 신경 쓰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는 출산율에 보탬이 되는 날엔 보다 세심한 생활상이 펼쳐질 테다.


내 짐작이 우리나라 '중위 소득구간'의 직장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가정하면,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사람들이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이해가 된다. '최저임금'이나 '국민연금' 문제가 이른 퇴직 등으로 자영업 전선에 뛰어드는 '제2세대'들과 늦어지는 연금수령 시기와 충분치 않은 수령액으로 퇴직 후 일자리를 찾는 '고령층'의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는 탓이다. 가뜩이나 퍽퍽한 개인의 삶을 국가가 나서서 바짝 말리려고 한다는 저항에 부딪히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말.


현재 공론화된 담론들은 양극화 심화라든가 초고령사회 진입 등으로 언젠가 거론될 문제였다. 단지 그 누가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실존한 탓에 섣불리 접근하기 어려웠다. 가뜩이나 조세저항이 거센 편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 세율을 올리겠다는 말은 지지층을 자기 손으로 깎아내겠다는 다짐 없이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심지어 국민연금은 피할 수도 없는 의무 납세 아닌가. 보장률이나 보장시기,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과 비교하면 저항이 없을 것이란 예측이 어색할 지경.


최저임금 문제도 마찬가지다. 유달리 높은 자영업자 비율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을 올리면 '죽는다'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임금노동자가 그만두고 차리는 것이 가게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나돌더라도 그 둘의 입장차는 180도다. 자영업 전선에서 망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라는 통계에 기반할 때, 어떻게든 지출을 줄이고픈 자영업자들에게 최저임금 상승은 멱살을 잡히는 행위와 유사할 테다. 이를 테면 '장사하기 싫냐'는 비아냥을 정부에게 듣는 꼴이랄까.


"서 있는 곳이 다르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웹툰 <송곳>의 대사처럼 생활 자체가 빠듯한 이들에게 정책을 지지해달라고 부탁하는 건 기만 일지 모른다. 진보나 보수, 윤리나 비윤리, 지위고하 등을 따지는 건 여유가 있는 자들에게 한정된 이야기라는 것이다. 군에서 만났던 후임처럼 우리가 논하는 담론들이 '뜬구름'에 그칠 수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후임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왔는데, 그 앞에서 꿈이나 목표 따위를 이야기하던 게 문득 잔인하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 후임이 내가 생각하는 '일반'과 얼마나 동떨어져있는지 그때 깨달았다.


국가 정책이란 게 모두를 포용할 수는 없다. 모두를 타깃으로 할 수는 더더욱 없다. 명암이 있고 장단이 있다. 그 암부와 단점을 어떻게 보완하느냐가 정책의 성공과 실패를 가를 텐데 이번에는 시작 단계부터 꼬였다.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가치에 우선순위를 둔 정부 기조에 따라 협상 과정을 그대로 노출했고, 이른바 '언론플레이' 홍보할 틈도 없이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 올바른 절차에도 불구하고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한 정부는 질책을 받게 된다.


국민연금은 어떤가. 확정되지 않은 정보가 언론에 노출되며 전파를 탄다. '긁어 부스럼'이라고, 가뜩이나 내재된 불만을 수면으로 끌어올린다. (사족이지만 이럴 때 '언론 프렌들리' 기조를 유지한 정부나 기관의 경우 잘못된 정보의 유통을 막기가 조금이나마 수월해진다.) 이때 '착한 놈이 한 나쁜 짓이 더 나쁘다'는 배신감이 밀려올 가능성이 커진다. 정보의 파편으로 뉴스를 보도한 언론사야 대중 없이 '언레기'니 '기레기' 소리를 들어온 반면 정부에는 '네가 감히 어떻게' 같은 감정이 들끓는다. 본격적인 개정 시도조차 하기 전에 국민감정이 이 모양이면 법안 개선은커녕 집권당은 차기 총선이나 대선 등에 상당한 부담을 지게 된다.


결국 개개인의 생활상이 나아지지 않는 형국에 시도하는 모든 생활밀착형 정책들은 거센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국민과의 정책적 스킨십이 갈수록 중요해지는 이유다. 포퓰리즘이니 쇼통이니 비판받아도 결국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지지는 정책을 수립하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 된다. 따라서 정책 시행에 앞서 보다 잦은 홍보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잘못된 정보로 불필요한 반감이 확산되는 것만 막아도 어느 정도 선방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


나는 최저임금 인상(분)이나 국민연금 세율 인상 등이 불가피한 문제라고 본다. 누군가는 불편해지며 상당수가 피해를 보는 듯해도 언젠가 논의해야 할 문제라면, 국민적 불안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부에서 시도해 보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 고독사를 취재하며 고령사회의 문제를 간접적으로 접했던 나로서는 개별 인간의 부 축적 방법보다 공동체 사회의 존립 방안이 더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 문득 하락하는 문 정부 지지율을 살펴보며 생각이 나서.


덧) 정치 성향 테스트에서 좌파 16.7%, 자유주의 13.9% 나왔는데 이 정도면 '공동체주의'에 넣어줘도 되는 생각 아닌가. 어차피 회색분자라 불린 적도 있는 몸:(


KakaoTalk_Photo_2018-08-20-15-11-23.png 성향 테스트 결과표.


덧 2) 거의 빌 클린턴과 흡사한 좌표를 찍었던 내가 했던 테스트는 '여기'(링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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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세대 주택(빌라)에 살다 보면 공동체 문제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보게 된다. 대표적으로 담배 문제가 있다. 날이 선선해지며 여기저기서 담배 피우는 사람이 늘어나는 요즘 어디선가 담배 냄새가 집안으로 올라온다. 3층(실제로 4층)인데 이 정도면 아래쪽은 어떨까 싶은 생각도 잠시. 문제가 반복되면 짜증이 샘솟는다. 웹을 통해 '흡연자들의 요구'나 '변' 같은 글을 어렵지 않게 접하지만 조금 냉정하게 보자면 궤변이다. 막대한 흡연 세로 흡연자 권리 구제에 나서라는 말이 핵심인데, 시스템을 통한 비흡연자의 완벽한 권리 구제(=피해 방지)는 이뤄질 수 없다.


애초에 비흡연자는 흡연으로 거둬들이는 세금이나 그 용처에 관심이 적다. 흡연자들이야 세금을 낸다며 국가 재정에 공헌하는 듯한 입장을 취하지만, 비흡연자 입장에서는 담배로 거둬들이는 세수가 줄어들어 복지정책이나 사회적 인프라 마련에 변화가 생긴다고 하더라도 '다시 담배를 팔아라'는 요구 따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살면서 한 번도 담배를 접할 일이 없는 나 같은 비흡연자들은 흡연 문제에 조건 없이 피해자로 포지셔닝할 수밖에 없는 탓에 흡연자의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보기 힘들다는 거다. 즉 개인이 불편을 겪는 어떤 사안에 있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또 회피할 수 있는 선택지도 없이 항상 피해를 받는 입장에 처한다면 설득력 따위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된다.


나는 오피스텔에 살 때도, 부산에서 원룸에 살 때도 이 같은 문제를 겪은 적이 있다. 다만 정도의 차이가 있었을 뿐 담배 냄새에서 완전히 해방된 적이 거의 없다. 앞서 밝힌 데로 피해를 받으면 마땅히 대처할 방안이 없다는 게 속된 말로 '빡침 포인트'인데, 화장실이나 베란다를 통해 올라오는 담배 냄새는 때로 신경을 과도하게 긁는다. 가족이나 친구 중 흡연자가 있는 건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낯선 이가 집안으로 담배 냄새를 올리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물론 가족이나 친구는 집에 담배 냄새 안 남긴다만.


덧) 흡연을 시작해 버린 이들은 장소를 찾아가며 흡연을 해야 한다거나 하는 나름의 고충이 있겠으나 비흡연자는 흡연에 무방비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게추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 알 수 있다.


덧 2) 한겨울에는 집에서 흡연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 그 계절이 다가온다.


덧 3) '흡연'은 늘 공동체의 문제로 수렴되고, 피해는 대부분 개인의 문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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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낳은 비대면의 다정함을 봤다. 사람이 위로받는 데 그리 긴 글은 필요치 않다. 디지털의 온기, 뭐 그런. <나의 아저씨>를 볼 때도 그랬지만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는 이는 그 자체로 소중한 것 같다. 물론 긍정적인 영향에 한해서다. 각종 인프라로 인해 연예인과 비 연예인의 경계가 옅어진 요즘 SNS를 통해 다수에게 긍정긍정한 에너지를 전파하는 사람을 보고 있자니 참 재밌는 현상이다 싶다. 사람은 타인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한다고 하던데, 일상의 선도(鮮度)를 높여주는 이들은 욕망과 일상의 교차점을 비교적 선명하게 드러내 인기가 높은 듯. 그냥 SNS 들여다보는 게 재밌다는 이야기.


덧) 인스타그램으로 강아지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본다. 맨날 비숑을 보다 보니 추천 사진/영상에 비숑들만 잔뜩 뜬다. 언제 봐도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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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 남아나는 시간에 책과 미드 같은 걸 보고 있거든. 포털에 '미드 추천'이라든가 '책 추천' 같은 걸 쳐보면 잔뜩 뜬단 말이야. 그런데 최근에 추천 목록을 정리하면서 내린 결론이 있어.


미드 같은 경우 대체로 'HBO' 드라마를 선택하면 큰 실패는 없어. 장르 불문하고 서사가 비교적 탄탄한 것 같아. 첨언하자면 <왕좌의 게임>, <브레이킹 베드>, <나르코스>, <안투라지>, <기묘한 이야기> 등을 재밌게 봤어. 모두가 'HBO'는 아니겠지만 이런 류를 선호한다는 거지.


책은 진짜 광범위하고 취향도 많이 타는데, 신문에 뜨는 신간 소개라든가 도서 리뷰 등을 참고해도 돼. 그래도 좀 더 말랑말랑하게 찾아보고 싶다면 출판사 SNS를 찾아봐. 페북이나 인스타 등에 '이 주의 도서'라든가 '추천도서' 같은 이름으로 업로드하는 게 있을 거야. 물론 자사 책 위주지만 나름 도움이 돼. 그밖에 책 추천하는 인스타그래머도 흥하더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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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가 온다. 나무와 산새와 파도가 숨죽일 폭풍우가 온다. 빗방울이 몰아치고 번개가 내리칠 폭풍우가 온다. 바람이 삼켜버린 도시 너머 너를 머금은 폭풍우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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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참, 내게 "개새끼야"라고 말하는 부장 카톡 보면서 생각났다. 특정인에게서 비롯되는 문제의 원인을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 정도로 치부해버리면 향후 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자신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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