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장력

"화가 났단 말이죠."

by OIM
보러 가야 하는데...


요 근래 브런치에 글 쓸 때마다 스벅에 나오는 것 같다. 그러니까 일요일 저녁 즈음, 스벅 연희 DT점 와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글을 쓰는 패턴이 생긴 듯한데. 이맘때 월요일에 대한 두려움이 현실화되면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지는 탓일까. 한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아, 내가 이러고 있구나 하는 자각이 생겼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스벅이다. 아메리카노에 헤이즐넛 시럽 추가해놓고 자리에 앉았다. 단체 주문이 앞서 들어간 탓에 내 커피는 17번째에 걸려있다. 커피가 나올 동안 간단히 다이어리를 썼다. 당장 월요일에 해야 할 것들이라든가, 장기적으로 기억해야 할 것들을 적었다. 더불어 지출내역도 기록했는데 마음이 쓰리다.


그보다 집에서 나오려고 머리를 감았다. 샤워하고 나오려고 했는데 따뜻한 물이 안 나왔다. 보일러를 틀었더니 온수가 안 나오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바닥은 뜨끈한데 도통 물 온도는 올라갈 줄 몰랐다. 샤워하려고 속옷만 입고 30분 정도 기다렸더니 온수보다 기침이 먼저 나왔다. '이엣-취' 몇 번 뱉고 나서야 희망을 접었다.


찬물에 세수했다. 하루 종일 누워서 뒹굴었더니 개기름이 잔뜩 끼었다. 덕분에 몇 번이고 씻어낸다고 찬물을 끼얹었다. 찬데, 너무 찼다. 마치 '너에겐 단 한 줌의 온기도 줄 수 없다'는 각오로 누군가 온수를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았다. 한여름 밀양 얼음골에 놀러 가면 느낄 수 있는 한기 서린 냉수가 얼굴을 강타했다.


나는 이 물로 거듭 얼굴을 씻어내야 하는 일이 꽤나 고통스럽다고 생각했다. 머리를 감기 전까진 말이다. 도무지 소식 없는 온수를 찬물로 대신했다. 찬물로 씻을 수 있는 마지노선은 그래도 머리까지 일 것이라 그때까지 생각했다. 한 몇 초 괜찮았다. 무감각이 고통으로 변하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아팠다.


지하수를 머리에 퍼붓는 느낌이었다. '뇌가 시리네?'처럼 가벼운 생각을 할 수 있는 단계를 살짝 넘어서자 달토끼가 내 머리를 절구 삼아 절굿공이를 찍어대는 환상에 시달렸다. '나이 먹고는 못 할 짓'이라는 말의 용처가 어디인지 알게 됐다. 그 상태로 샴푸질을 해댔다. 나가긴 나가야 하니까.


어렵게 나온 만큼 유의미한 일기를 쓰고 싶었는데 시작하고 나니 별 말 없다. 쓰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되는 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리 실망할 것도 없나 싶다. '부르르' 스벅 앱이 울린다. 밀려있는 주문 중에서도 끄트머리에 위치한 내 커피가 픽업대에서 기다린단다. 한 사발 가득한 탕약을 거두러 1층으로 내려간다.






이번 주말은 별다른 약속 없이, 일 없이 쉬었다. 몸 상태가 별로였다. 치명적인 고통이 주중에 시작됐는데, 진원지는 허리 같았다. 목요일쯤이었을까. 퇴근시간이 다 돼 허리가 너무 아팠다. 저릿한 통증이 몸을 움직이면 허리부터 시작돼왔다. '무리했구나' 그날 밤 자리에 누울 때까진 그렇게 여겼다.


금요일 아침에 일어났는데 여전히 허리가 아팠다. '어라?' 했다. 이런 고통은 꽤 오랜만이라 놀라움보다 경계가 앞섰다. 수습기자 생활 도중 허리가 너무 아파 입으로 '헉헉' 소리를 내며 걸어 다녔던 적이 있다. 그땐 하필 경찰서 수습을 돌 때라 잠도 3~4시간 자던 때였다. 기시감이 머릿속을 때렸다.


랩탑이 든 백팩과 카메라 장비들을 메는데 허리가 욱신했다. 몸을 숙이는 게 형언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허리를 곧추 세운 채 가방과 장비를 들고 회사를 나왔다. 이따금 '헉헉'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더불어 입김이 눈 앞에 가시화 하자 나는 좀 더 아픈 게 아닐까 걱정하게 됐다.


가능하면 이동 중에 가방을 내려놨다.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는 것만으로도 허리에 통증이 더해졌다. 지하철에서 너무 아파 노약자석에 앉을까도 고민했다. 그 상태로 오후까지 버텼다. 그날은 하필 시외 일정까지 더해져 인천까지 다녀왔는데, 무슨 정신으로 버텼는지 지금도 의아하다.


퇴근 후 밥을 먹으려고 반찬통을 냉장고에서 꺼내는데 그 중량이 척추에 그대로 실리는 듯했다. "으억"하고 육성이 터졌다. 깍두기 통을 들고 일어서려다 허리를 채 못 들고 주저앉았다. 나는 생각보다 일상에서 욕을 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허이..시이벌.." 하고 침과 함께 욕이 터져 나왔다.


'너무 놀라면 입이 안 다물어진다'는 표현이 있는데, 놀라서 그런지 아파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입이 계속 벌어졌다. 허리를 못 펴서 엎드린 채 입을 벌리고 있다 보니 침이 질질 흘렀다. 욕을 하다 말고 침을 닦다가 허리에 통증을 느껴 다시 욕이 튀어나오는 기묘한 행동이 반복됐다. 바보 같았다.


이때 내가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119 불러도 될까'. 뭐랄까. 개인이 아프다고 119를 불러 병원으로 데려다 달라거나 어떻게 좀 해달라는 게 사회적으로 적절한 요구인가 궁금했다. 너어어어무 아픈데,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고 당장 위급한 상황에 처한 것도 아니라 공공재를 날 위해 써도 되는지 판단이 안 섰다.


하긴 손에 폰도 없었다. 전화하려면 소파 쪽으로 기어가야 하는데 통증이 의지를 한풀 꺾었다. 아프니까 소파까지의 거리도 멀게만 느껴졌다. 눈 앞에 폰이 있었다면 '119' 번호 정도는 눌렀을지도 모른다. 그 상태로 엎드려 고양이 자세를 두어 번 반복했다. 어제 찾아본 정보를 요긴하게 활용했다.


나는 운동의 효과인지 뭔지 알지 못한다. 다만 그렇게 몇 분 쉬고 나자 간신히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반찬통을 다시 넣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달에 딛는 인류의 그것 같았다. 내 방에서 한 발 옮기는데 그 정도 의지가 필요한지 금요일에 처음 알았다. 뻐킹 허리.






연말에 모 방송사 시상식을 찍으러 갔다가 그쪽 방송에 찍혔다. 그게 엊그제 전파를 탔다. 우리 집엔 티브이가 없어 모르고 있다가 주변에서 연락이 왔다. 티브이에 나온 게 너 같은데, 맞냐는 연락이었다. 처음엔 아닐 거라고 대답하다가 몇몇 사람이 반복되자 "맞는 것 같아요"라고 실토했다. 누군가는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줬다.


나는 늘 찍는 일을 하다 보니 카메라 앞에 서는 일이 드물다. 어색하기도 하다. 내가 찍히는 일은 자리를 잘못 잡아 경쟁사 카메라에 잡히는 일이 대부분이다. 이번 방송은 그런 케이스와도 달랐다. 모 예능프로그램 카메라가 나를 비췄다. 해당 프로그램의 출연자를 찍는 나를, 프로그램에서 찍었다. 어쩔.


지인이 보내준 움짤을 봤는데 역시나 어색했다. 영상에 잡힌다는 건 이런 기분이구나 싶다가도 유명 방송에 나온 게 썩 유쾌하진 않았다. 내가 찍으러 가놓고 찍힌 건 또 탐탁지 않다는 게 아이러니하긴 한데도, 나는 '비연예인' 아닌가 같은 합리화가 마음속에 슬그머니 자리하기도 했다. 아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직장에서 생긴 트러블을 효과적으로 다루는 방법을 아직도 모르겠다. 대게 트러블은 사람 간에 벌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매 순간 다른 조건이 수반된다. 최근 회사에서 해프닝 한 가지를 겪었는데 어쩌다 보니 내가 희생양이 됐다. '말대답'을 했다는 뭐 그런 이유.


나 같은 경우, 근래 받는 일정이(근래뿐 아니지만) 상당히 비효율적이라는 느낌을 계속 받았다. 가령 어제 B업체에 전화해서 확인했으면 오늘 B업체 행사에 참가 가능한지 미리 알 수 있었다. 그걸 행사 당일에 신청 없이 한 번 가보라는 식이다. '왜 미리 안 알아보고?' 같은 의문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또 있다. "C를 찍어야 해요"라고 지시한다. 근데 C란 게 시중에서 보기 힘든 물건/사람이다. 이럴 경우 C를 구해주든가 어디서 찍을 수 있다는 정보를 주든가 일말의 도움을 기대하게 되는데 아무것도 없다. 지시는 보통 "00를 찍어야 해요" 선에서 끝난다. 찍어야 하는 사람 입장에선 '???' 같은 마음이 든다.


끝이 아니다. "D를 찍어주세요"라는 요구가 있다. 이럴 때 우리는 "D의 어떤 모습이요?"라고 묻는다. 사람만 해도 긍/부정적 이슈에 따라 포착해야 하는 순간이 나뉜다. 단순 사물이면 찍을 수 있는 핵심 가짓수가 훨씬 늘어난다. 이때 우리의 질문에 "D의 다양한 모습이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왜 이러는 걸까' 싶다.


E는 어떨까. "E를 이번 주까지 찍어야 해요" 한데, 이 E를 찍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출입허가라든가 사전조사라든가. 이 지시를 그 주의 중순에 알려준다.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은 채 하라는 식이다. 이후 돌아오는 자세는 '뭐가 문제지?'라는 역발상. 내가 묻고 싶다. 뭐가 문젠지.


F도 있다. "F를 오늘 찍을 수 있을까요?" 묻는다. 평소에 F에 대해 조사하거나 기사를 쓰던 사람은 따로 있다. 그러나 F의 출현 여부를 내게 묻는다. 한두 번이 아니다. 이 비상식적인 질문의 방향이 '지시'인지 '요구'인지 '무엇'인지 알 길 없다. 몇 번이나 '왜 이러지?' 싶다.


G까지 이어진다. "G-1 좀 알아봐 주세요" 내게 요구한다. G-1의 내용과 나의 관계는 이를 테면 다음과 같다. 농사짓는 농부에게 그해 우리나라 강수량 예측치를 묻는 격. 강수량을 알려줘야 농사에 참고할 것 아닌가. 그걸 농부에게 도리어 물어보면 어쩌자는 건지.


이런 방식이 거듭돼 'B는 B하고, C는 C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했더니 "말투가 왜 그러냐"는 지적을 받았다. 심지어 불려 갔다. "제가 한 말의 내용엔 문제없고, 말투가 문제라는 거죠?'라고 그 자리에서 덧붙였으면 옳고 그름을 떠나 사달이 났을 게다. 젊은이들이 가진 폐쇄성을 이날 엿봤다. 기분이 별로였다.


나는 우리나라 조직 문화의 이런 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직급으로 할 수 있는 말의 범위를 제한해놓고 문제가 생겼을 때 권위로 사람을 압박한다. 대체로 이런 조직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당사자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 점을 지적하면 화를 내거나 외면한다. 새삼 내가 선 위치가 어디인지 깨닫는 날이 됐다.


귀머거리 3년, 벙어리 3년, 장님 3년이라는 구어의 생명력은 조직문화에 물든 젊은이들에 의해 요즘도 답습되는 모양이다. 나원참:(






진짜 '빡치면' 뭔가 하는 습성이 있는 내가 아픈 허리를 끌고 커피숍에 나온 배경도 저기 있다. 내가 불려 가서 혼난 것 자체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 과정이나 이유가 썩 납득이 가지 않는 거다. 내가 노력해서 들어간 회사를 나와 여러 곳을 돌다 보니 한 선배 말처럼 '악수'를 뒀구나 싶기도 했다. 한마디로 빡쳤다.


결국 이런 곳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내 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하면서 이직 초에 불을 붙였다. 정확히 말하면 욕망에 불을 댕겼다. 좀 더 탐욕스럽고 게걸스럽게 앞날을 개척해야겠다는 의지를 뇌 속에서 스트레스와 함께 터뜨렸다. 내 의욕은 그날부로 회사 밖에 두고 다닌다. 이중생활이 시작됐다.






막상 퇴근 후 생활에 박차를 가하려고 통장을 살펴보니 이번 달 지출은 왜 이리 많은지, 시작부터 시트콤이다. 마음 놓고 카드를 긁은 후폭풍에 그대로 직면하고 있는데, 시사만화에 한 번씩 등장하던 '퍼가요~'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질 참이다. 마이너스는 면했으나 그다지 플러스도 없는 서글픈 현실.


이후 분노와 지출(상황)을 동력 삼아 시간과 잔고를 단속했더니 이번 주는 비교적 선방했다. 허리 회복에 전념했고(고양이 자세를 수시로 해줬다), 장 한 번 보는 걸로 군것질을 단속했다. 4주나 남았지만 시작은 나쁘지 않다. 그러고 보니 월초엔 딱히 돈 쓸 데 없는 것 같으면서도 잔고는 왜...






'하루 한 장' 매거진 만들어놓고 방치했다. 연초부터 몹쓸 짓을. 밀린 사진 작업하러 간다. '어쨌든 한 장'으로 바꿀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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