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뜬다
는 오버고.
사직서 내고 프랑스 간다. 프랑스 파리에서 바욘으로 이동해 생장으로 들어간다. 이른바 '순례자의 길'로 가는 사전 루트다. 그곳에서 길을 시작한다. '프랑스길'이라 부르는 800km 코스다. 종착지는 산티아고다. 기간은 48일. 40일은 걷고 8일은 여유시간이다. 바욘에 있는 해변이나 돌아올 때 들리는 마드리드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순탄하게 완주한다면 조금 더 여유가 생길지도 모른다. 모든 건 운에 맡긴 채 떠나기로 했다.
출발은 2주 후다. 이제 목요일이니까 2주가 채 안 남았다. 시쳇말로 '다다음주 수요일' 오전 비행기를 탄다. 예전부터 벼르던 일을 막상 실행에 옮기려니 실감은 안 난다. 그냥 '진짜 가나?', '가는 건가?' 정도의 의문이 인다. 길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지금도 여전히 얼떨떨하다. 다음 주에 회사를 그만두면 어느 정도 마음에 불이 닿지 싶다. 여유가 생기면 조금 더 앞날을 자세히 보게 되니까, 현실감도 그때쯤 내게 돌아오지 않을까.
왜 지금인가. 왜 가야 하나. 왜 산티아고인가. 주변에서 묻듯 나도 내게 물었다. 이전처럼 집요하게 묻고 또 추궁하진 않았다. 이번엔 어쩐지 스스로에게 관대했고, 대답할 시간도 충분히 주었다. 그래서인지 전보다 쉽게 결정할 수 있었는데, 항공권과 여권을 신청한 지금도 후회는 없다. 큰돈을 쓰고 나면 한 번씩 들던 '취소할까?' 같은 마음도 여전히 들지 않는다. 신기하게도 마음은 평안하고 잘 한 결정이란 믿음이 어디선가 솟는다. '한 번쯤 가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이루어지기 전의 기분을 글에 담지 못해 아쉽다.
이게 그렇다. 어지간한 관광과 다르게 걷는데 치중한다 해도 기간이 길어 적지 않은 돈을 쓰게 된다. 아깝단 생각이 날 법도 한데 어쩐지 의지가 견고하다. 친구가 물었다. 굳이 그까지 가서 걸을 이유가 있냐고. "가고 싶었다"는 말로 설명을 대신했다. 모든 행위 앞에 '굳이'를 부치면 대답에 한층 애를 먹는다. '굳이'는 그런 용도로 종종 사용되곤 한다. 나는 이 순간을 그 단어에 가려 충분히 만끽하지 못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긴 말 없이 그저 즐기기로 했다. 누군가가 내 기분을 공유하지 못하더라도, 아니 오히려 그래서 내 결정이 오롯이 나를 위한 것임을 역으로 선명히 느낄 수 있다.
주로 왜냐고 묻는 이들을 뒤로하고 이 길을 추천한 친구도 있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을 것 같다"는 내 말에 "지금이 아니면 다음은 없지"라고 그는 답했다. 맞다. 내가 미뤄온 모든 순간들에게 다음이란 건 허상이었다. '신중히', '다음에' 등으로 넘겼던 내 많은 과거의 시시 때때는 결국 고민을 남기고 아스라이 사라져 갔다. 어쩌면 추억이나 실패가 있어야 할 자리에 스치듯 갈등만이 남은 어제들을 돌아보고서 나는 떠나기로 결심했다. 늘 부족했던 내 추진력에 황급히 불을 붙이며 30대를 훌쩍 넘긴 시점에야 한 걸음 나아간다. 내게 이번 여행은 그런 의미가 있다
공중전화(기)에 30원이 남았다. 남긴 마음이 귀하다. 넘긴 수화기도 귀엽다. 그런 시대에 산다.
는 서론이고.
다음 주부터 당장 백수인데 나 조금 들떴다. 사실 매우 들떴다. 까미노, 까미노 하다가 말미에 들어선 망설임을 발권과 함께 날리고 나자 기분이 '하이'다. 넌 정말 내일이 없구나?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건 내게 하는 말일 거다. 넌 정말 오늘만 사는구나?라고도 말한다면 그 또한 내가 들을 말이다. 이 모든 멍에를 안고도 나는 여전히 구름 속에 있다. 이건 좀 문제다.
여권이 만료돼 신청하러 간 구청에서도 수수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려 53,000원인데 말이다. 오전에 찍은 여권 사진은 약 20초 간 딱 셔터 2번 눌리고(누르고) 2만 원을 내야 했다. 사진을 찍고 받는 데까지 약 8분 걸렸다. 사진이 선명히(?) 나와서 두 장도 필요 없을 듯하다며 구청 직원은 한 장만 가져갔는데, 이 말을 듣자 또 기분이 누그러졌다. 별 게 다 기분 좋은 밤이다.
다만 이런 과정과는 별개로 여권 사진을 보곤 충격받았다. 60kg대를 유지하던 어릴 적과 달리 70kg 중반을 달리는 내 모습은 흡사 찐빵 같기도 했고, 중국을 경유한다면 안경을 벗고 찍는 게 좋다는 사진관 아저씨의 말에 마지막 저지선까지 무너져 그야말로 참혹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민낯이 약간 겸연쩍은 모습이라면 흡사 이건은 나의 민낯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래서 점심은 샌드위치 반 개, 저녁은 즉석 볶음밥에 닭가슴살을 먹었다. 샌드위치 반 개의 여파로 폭식할 뻔했으나 사진이 나를 붙잡았다. 그 정도 충격의 여파가 아직도 연희동 한 구석에.
이야기가 샜지만 지금도 준비물 적느라 정신없다. 선행자의 경험담을 보며 리스트업 중이다. 대략적인 물품만 해도 [배낭, 트레킹화, 등산양말, 팔다리 토시, 속옷, 등산스틱, 장갑, 트레이닝복, 숙소용 옷, 슬리퍼, 상비약, 모자, 스포츠 타월, 판초우의, 침낭, 물통, 헤드랜턴, 바람막이, 경량 패딩, 세면도구 등] 다양하다. 세부항목으로 들어가면 품목이 훨씬 늘어난다. 이 모든 걸 점검하는 과정이 하루 이상 필요하다.
카메라는 두 대 들고 갈 예정이다. 디지털카메라와 필름 카메라 한 대씩이다. 리코 GR3와 Rollei35 se를 목에 걸든지 몸에 고정시킬 수 있는 방식으로 가져간다. 작은 수첩과 펜 하나도 가져가려 하는데 이 건은 출발 전까지 옵션으로 남겨둔다. 매일 25km 안팎으로 걸으면서 뭔가를 적거나 적으려는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가능한 비우고 가는 게 좋다는 친구의 말도 펜과 수첩을 미뤄두게 한 요인 중 하나다. 게다가 나는 폰도 있지 않은가. 굳이 수기를 고집할 건 없단 말이지. 물론 그 대신 보조배터리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만 말이다.
당장 주말부터 준비물을 구입한다. 가기 전에 친구들의 얼굴도 보고 또다시 퇴사를 기념해 고기도 먹는 일종의 의식이 마련돼 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50일이나 나가 있는 것도 꽤나 인생에서 드문 일이고, 모든 계획을 스스로 짜서 가는 일 또한 희소한 경험이다. 물론 해외에 나가는 일조차 그러한 경험의 범주에 속하니 이것은 드물고도 희귀하고 희소하며 기이한 범주들의 교집합에 속하는, 이상한 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숱한 사람들이 지난 길 위에서의 추억을 상기하는 걸 보며 이 또한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라 확신을 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