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Zubiri~Pamplona
1. 헤밍웨이가 즐겨 찾았다는 '카페 이루나(cafe Iruna)'에서 오늘의 메뉴를 먹었다. 빵, 시작하는 요리, 메인 요리, 디저트, 물/와인 등으로 구성된 17.5유로짜리 코스 요리다. 낮에 왔다가 워낙 사람이 많아서 주문도 못 하고 기다리다 나갔다. 7시에 다시 연다는 말을 듣고 재차 시도, 성공했다. 한 끼 식사에 17.5유로는 과한 감이 있지만 헤밍웨이의 그곳이라고 하지 않나.
2. 내가 헤밍웨이 책을 읽었던가.
3. 7시, 1분 전에 왔는데 여전히 가게가 붐빈다. 자리가 없어 또 웨이팅. 다행히 직원이 자리를 선정해준다. 만석이라 서있는데 "for dinner?"라고 묻더니 '여기 곧 자리 나면 앉으라'고 사람이 앉아있는 테이블 옆으로 데려간다. 뻘쭘하게 대기하다가 착석.
4. 왜 저녁 먹냐 묻나 했더니 자리한 이들 대부분이 커피나 맥주 따위를 즐기는 중이다. 세팅을 위해서였나 싶고. 혼자 4인석 차지하고 앉아 밥 먹는 게 좀 그랬는데 다른 사람은 커피니까 상관 없어졌다.
5. 얼핏 봐도 실내 손님만 50명은 넘어 보이는 이 가게에 동양인은 나 하나다. 직원들까지 합하면 60~70명 중 나 혼자 동양인이다. 그 중에 (테이블) 혼자 (쓰며) 밥 먹는 유일한 사람이기도...
6. 메뉴는 고를 수 있다. 시작은 버섯이 들어간 리조또로 했다. 치즈그라탕 같은 걸 예상했더니 청국장 냄새가 살짝 나는 안 매운 카레밥 같은 게 나왔다. 그 위에 파마산 치즈 살살. 이게 냄새의 원인인가봉가. 하지만 바다 건넌 뒤 첫 쌀밥이라 숟가락 광 나도록 핥아먹었다. 역시 밥이다.
7. 메인은 포크립이다. '사람은 고기'라는 말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사실 인터넷 뒤졌더니 이게 괜찮았다고 누가... 근데, 와... 바베큐인 줄. 내가 고기 그렇게 말끔히 잘 안 발라먹는데 이건 거의 발골했다. 배 고파서 그렇다고 하기엔 리조또를 다 먹어야 주는 거라서... 오늘 꿀잠 예약이다.
8. 디저트는 샤르소벳? 레몬 샤베트라고 설명된 걸로 했다. 아까 그 글에서 말하길, '초코브라우니+바닐라아이스크림'으로 했더니 마트에서 파는 아이스크림과 브라우니의 그 맛이 났다고. 그래서 모르는 메뉴로 던졌는데 세상에... 이건 또 무슨 종마탱.
9. 아니, 커피도 주는가? 디저트를 갖다주면서 "coffee?"라고 묻는다. 뭐야. 주는 건가. 이걸 적는 동안 커피와 빌이 나왔는데 주는 거 아니었구나. 어쨌든 이것조차 그 유명한 스페인 라테 '카페 콘레체'를 시켰다. 주문할 때 "콘체레"라고 했더니 못 알아듣더라. 직원이 "콘레체?"라며 웃는데 내가 다 머쓱. 커피 맛있다...
10. 할머니, 할아버지, 가족 단위가 많더니 오후 8시를 기점으로 갑자기 힙한 애들이 들어온다. 약간, 차려입은 애들이라거나 가족인데 뭔가 정갈한 분위기의 사람들. 여전히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긴 하지만 이 분위기 전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11. 여긴(스페인?) 전부(대부분) 다 브레이크 타임(오후4시부터 오후 8시까지 등)이 있어서 중간에 밥 때 놓쳐 애먹었다. 허기진데 먹을 곳 없고 막. 그 시간들이 씻은 듯 사라진다. 썸즈업도 이런 썸즈업이 없다.
12. '오늘의 잘했다'로 꼽겠다.
번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한국인들이 보인 행태를 지적하는 기사가 며칠 전 보도됐다. 애석하게도 집 떠난지 5일 됐는데 현장을 종종 목격한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a.런드리실(에 손빨래 세면대)이 있는데 세면장에서 빨래를 한다던가 b.작은 마을을 돌아다니며 꽤나 큰 데시벨을 발산해 현지인들의 시선(눈총)을 받는다던가 c.숙소에서 모여 노는 자리가 시끄러워 외국인이 호스트에게 시끄럽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식이다. 나는 a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외국인이나 b를 본 뒤 나와 눈이 마주친 현지인이나 c(장소)를 가리키며 어깨를 으쓱 하는 외국인을 보면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까?" 물어보면 "딱히..."란다. 나도 딱히 뭘 해야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번외2) Zubiri-Pamplona 구간에서 벌어진 헤프닝. 한창 저 구간을 걷고 있는데 슬리퍼를 신은 여성(외국인)이 손에 등산화 한 켤레를 들고 길목에 서있다. 이게 무슨 경우인가 싶은데 그가 내 신발을 물끄러미 본다. 사연은 이렇다. Pamplona에 머물던 그의 신발을 다른 누군가가 신고 갔다. 심지어 발에도 안 맞는 다른 신발(사이즈 7.5)을 둔 채. (그래서 슬리퍼를 신고 있었던...) 그의 신발 사이즈는 '9'(내 사이즈와 같다), 신발 브랜드는 '머렐'(내 신발도 '머렐'이다)이다. 그래서 물끄러미 쳐다본 거. 근데 누가 신고 갔는지도 모른다고. 이게, 해결이 되는 일인가 싶어 길목을 지키던 그를 한참 뒤돌아 봤는데 진짜 해결이 돼버렸다. 목적지에 도착한 내가 숙소 등록하고 있을 때 그가 등장했다. 신발 잃어버린 숙소가 여기였나보다. 심지어 신발 찾았다고. 신기한데 황당하고, 뭐 이런 일이 있나 싶었던 일화.
번외3) 등산스틱을 잘 쓰면 '사족보행'처럼 걸을 수 있다. 걷기 시작한지 4일째인 오늘 드디어 깨쳤다. 약간 오랑우탄처럼 걸을 수 있게 됐달까. 이게 걸음 속도를 비약적으로 높여주는데, 그래서인지 어제도 선두권, 오늘은 거의 첫 번째(다른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 모르지만)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물론 기본적으로 걸음이 빠른 탓도 있다. 이게 무슨 장점이 있냐면, 숙소 선택 폭이 넓어진다. 저렴한 숙소부터 평점이 나쁜 곳까지 다양한데 일찍 도착하면 저 중에 고를 수 있다. 그 장점을 이틀째 누리는 중. 내일도 아마... 단점은 사족보행st. 하면 그만큼 상체(팔 포함)에 부하가 온다. 오늘 나보다 앞선 마을에서 출발한 외국인을 앞서 지나갈 때 그가 나한테 "니가 zubiri에서 (출발한) 첫 번째 사람일 거"라고 하더라. 비밀이지만, 중간중간 사진 찍거나 보이스톡 같은 거 안 하면 더 빨리 도착한다.
번외4) 현지사람들이 굉장히 호의적이다. 놀라울 정도.
번외5) 슬슬 발바닥 통증이 심해지는 것 같기도? 괜찮으려나.
번외6) 기록용 글/사진을 인스타에 썼는데 글자수 제한+사진(가로세로, 10장) 제한 등에 걸려 여기로 옮긴다. 정리 및 카메라(gr3) 사진은 한국 돌아가서 하기로.
오늘의 사진)
매일 콜라 마실 생각으로 걷는다. 스낵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