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산티아고, 6일째

긴축재정

by OIM

10.7 pamplona~Puente la Reina/Gares

1. 엊그제 만났던 미국인을 길에서 만났다. 인사했다. 그가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그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인사로 이름을 갈음했다. 미안했다. 나도, 그도 서로에게 이 길에서 만나는 수 많은 외국인 중 하나일 텐데.

2. 오늘 구간은 발 미끄러지게 하는 자갈이 많았다. 특히 오르막 자갈이나 잔잔한 돌 길은 힘이 배로 든다. 중반기 이후에 다리가 풀려버리는 불상사가 일어난다.

3. 지나가다가 콜라 파는 곳만 보면 돈주머니 꺼낸다. 콜라 먹을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다 보니 길에서 시원한 콜라 먹는 걸 낙으로 여기게 됐다. 오늘도 길거리 슈퍼마켓과 걷다 보면 구간당 하나씩 나오는 스낵카에서 콜라 사먹었다. 꿀맛.

4. 콜라 종류나 판매점 위치에 따라 가격차가 생기는 건지 여태껏 먹은 콜라 가격이 다양하다. 0.64/1/1.4/1.5/2 유로 등. 모두 다 캔 콜라.

5. 스페인 과일 당도가 동남아 과일 뺨 세 대 후린다는 글을 웹에서 봤다. 비슷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특히 하몽과 과일의 단짠 조합은 극강이라고. 하몽은 어떻게 먹어야할지 몰라 제껴두고 오늘은 과일을 사왔다. 달다. 멜론과 방울토마토다. 멜론은 그냥 달고 방울토마토는 조금 더 담백하게 달다. 놀라운 건 가격. 물 1.5리터와 방울토마토 250g, 멜론 반 통이 2.32유로다. 그러니까 약 3,000원.

6. 점심도 냉동피자와 오렌지 쥬스 1.5리터, 콜라 1리터를 샀는데 3.75유로 나왔다. 5,000원 정도. 마켓에서 장보는 일에 익숙해지면 비용이 상당히 절감될 듯. 물론 이것도 일찍 도착해야 어느 정도 편하게 누릴 수 있다.

7. 무슨 말인고 하니, 내가 걸음 빠른 게 맞다. 오늘 마을(알베르게)엔 3번째로 도착한 듯하다. 씻고, 손빨래 해서 널고 마트 가서 장본 뒤 밥 먹는데 그제야 들어오는 이들이 보인다. 물론 걷는 속도 제각각에 식사를 해결하고 오는 사람도 있다. 그럼에도 일찍 도착해 숙소의 유틸리티를 다소 자유롭게 쓰는 일은 기분 좋다.

8. 그러려고 빨리 걷는 건 아니다. 의식적으로 느리게 걷지 않으면 그냥 빨리 걸어버린다. 스틱까지 익숙해지며 조금 더 속도가 붙었을 뿐.

9. 어쨌거나 어제 '헤밍웨이 가게'에서 거의 25,000원 짜리 코스요리를 먹는 바람에 오늘 조금 졸라맸다. 심지어 오늘 공립알베 가격은 단돈 5유로. 이로써 어제오늘 합해 평균은 맞췄다.

10. 오늘 걷다가 발견했는데, 살 빠진 듯. 한국에서 사온 등산바지가 내려간다. 걷는데 흘러내린다. 다소 타이트 했던 바지도 얼추 핏(?)이 맞는 상태가 돼버렸다. 배낭 가슴끈은 줄을 끝까지 당겨도 밀착이 안된다. 근손실, 이건 좀 문제.

11. 오늘 다른 한국사람이 신라면 끓여먹는 걸 봤다. 어디서 구했지.

12. 아참, 오늘 1시쯤부터 햇볕에 빨래 말렸더니 스페인 와서 처음으로 빨래가 바싹 말랐다. 이조차 기분 좋다.


번외) 오늘도 선두로 달리다(?)가 길 한 번 잘못 들어 한 1킬로미터 갔다가 되돌아왔다. 네비 찍고 가는데, 이 길 맞는데, 자꾸 스페인 사람들이 돌아가라고 말했다. 한 번은 건물 2층에서 할머니 한 분이 내려다 보며 손짓으로 돌아가라고, 오던 길로 가라고. 내가 되돌아가는 척 하다가 네비 보고 몇 번이나 다시 오자 할머니는 좀 더 적극적으로 손짓했다. 그걸 못 본 척 하고 네비 따라 갔다. 근데 또 저 멀리 있는 차고에서 스페인 남성이 다가와 산티아고로 가냐고 묻더니 이 길이 아니란다. 돌아가다가 나오는 로터리에서 우측으로 빠져야 한다고. 내 어깨를 두드리며 방향을 가리킨다. 아니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결국 돌아갔다. 길에 다 표식이 있지만 선두로 걸으면 지침 삼을 사람이 없어 그게 좀 아쉽다.

번외2) 여긴 슈퍼마켓도 브레이크타임이 있다. 2시에 마트 안에 있는데 불을 다 끄길래 무슨 일인가 했다. 5시에 다시 연다고. 그래서 이제 알았다. 대충 오후 2시 전에 타운에 도착해 빨래 등을 마치고 한숨 자면 된다. 회복도 할 겸. 그리고 오후에 나가 브레이크타임 없는 스페인을 즐기면 된다.

번외3) 브라질에서 온 사진작가라는 남자는 카메라와 렌즈를 다 가져다닌다. (어후) 국적을 물어보지 않았던 다른 남성은 가방 옆에 바이올린 가방을 함께 메고 다닌다. 내게 가방 무거워 보인다며 묻길래 10kg라고 했더니 자기 건 18kg이란다. (이 샛ㄲ....)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자신의 일부를 짊어졌나보다.

번외4) 근데 오늘 왜 다들 오후 8시 반부터 누워서 자지? 보통 알베 묻 닫는 10시쯤까지 놀던데 무슨 일? 나도 자려고 시동 걸어야겠다. 내일은 도네이션으로 운영하는 알베다. 아마 내일도 문제 없이 자리 잡을 듯. 오늘까지 걸은 거리는 약 91km. 709km 남았다.

번외5) 김치 익어서 젓가락에 막 찢어지는, 참치 오지게 들어간 김치찌개에 밥 세 공기 말아먹는 꿈 꾸면 좋겠다. 나도 누워야지.


오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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