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알베르게의 시간_수녀님과 함께
때때로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이 알베르게의 가격은 하룻밤에 단돈 6유로다. 이때쯤부터 다시 혼자 걷기 시작하며 마음대로 숙소를 정했다. 오전에 비가 오는 바람에 멀리 가지 못하고 마을에 멈췄다. 40km씩 걷다가 이날은 16km에 그쳤다. 그렇게 도착한 곳이 이곳이다. 수녀님들이 운영하며 그래서 저렴하다.
저렴하다. 분명 저렴한데 세세한 옵션들이 있었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수녀님들과 순례자들이 함께 하는 시간이 있다거나 찬송가를 부른다거나 그런 일종의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하지만 참여는 자유라고 해서 15kg짜리 배낭을 입구에 내렸다. 나는 오늘 여기서 묵는다며.
프로그램 시간에 구경을 나왔다. 어디까지나 호기심이었다. 이 시간은 예상과 사뭇 달랐다. 종교적 색채가 예상보다 옅었다. 영어로 하는 채플이 이런 식일까 싶었다. 수녀님들이 기타를 쳤다. 노래를 하고 흥을 돋웠다. 뮤지컬을 보는 듯했다. '뭐 이런 종교가 다 있나' 하면서도 '원래 이런 분위기인가 보다'라며 수긍했다.
행사는 시종일관 즐겁게 진행됐다. 부담도 없었다. 도중에 자리에 다녀오는 사람도 있을 만큼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서로가 서로의 배경을 알아가기 전까지는 대게 그랬다.
한바탕 노래를 부르다가 순례길을 찾은 이유를 공유했다. 수녀님들이 이야기를 유도했다. 100명에게서 100가지 이유가 나왔다. 진짜 그랬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자신을 비우러 이곳을 찾은 내가 새삼 가벼워 보였다. 답이란 건 어차피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란 것을 알면서도 마음속 깊이 숙연해졌다.
순례자 A는 5년 전 가족을 잃었다. 그 기억을 안고 순례길을 찾았다. 순례길이 어떤 성취의 수단은 아니지만 그 배경에 슬픔이 있었다. 순례자 B는 앓았다. 병치레를 하고 나니 새로운 삶이 보였다. 순례길을 찾았고, 묵묵히 걷고 있다. 순례자 C는 종교적 이유다. 신앙에 기대 순례길에 올랐다. 저마다의 사연은 이런 결을 보였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하는 너희가 궁금해서 이곳에 왔다고 답했다. 종교도 없고 마땅한 이유도 없지만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궁금했다고. 그런 너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감사했다고 끝을 맺었다. 조금 궁색한가 하면서도 그게 또 어떠냐며.
이날 행사는 즐겁게 마쳤다. 막바지에 각 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있어 몇몇 국가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노래를 했다. 이 자리에는 일본인이 두 명 함께 했었는데 이들은 수녀님의 권유를 받더니 기미가요를 불렀다.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 또한 내가 만든 허상인가 했다. 나머지 한국인(1명)도 조용히 감상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종교의 모습으로 그 속에 귀의한 사람과 만나는 일은 즐거웠다. "스님..." 하며 직접 말을 붙이지 않더라도 눈이 마주치는 일 자체로 그저 흥겨웠다. 네가 나의 신과 함께 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괜찮다는 메시지를 하루 동안 느꼈다. 그런 포용과 이해가 이 시간의 큰 기쁨이기도 했다.
행사 이후 이곳에서 많은 것을 하지는 않았다. 여느 숙소처럼 침낭 안에서 휴식을 취했고 음악도 들었다. 밥을 먹고 빨래를 했으며 무사히 숙소를 나섰다. 그 일련의 과정은 '평범'의 거죽을 쓰고 있지만 내 속엔 작은 다짐 같은 게 싹트고 말았다. 언젠가 이 이야기를 어디에는 기록해야겠다는 그런 소박한 마음이었다.
여담이지만 내 자리는 2층 침대 중 2층이었다. 누우면 지붕에 난 작은 창으로 하늘이 보였다. 낮에는 그곳으로 구름을 보는 게 그렇게 좋았다. 밤이 되어 자세를 고쳐 누웠더니 침대와 마주한 벽면에 예수님의 초상화 같은 게 걸려있었다. 그것과 1미터 남짓한 거리를 두고 그날 밤 단잠을 청했다. 액자가 말은 안 하는데, 어쩐지 부담스러운 밤이었다.
첫 번째 사진에 줄이 없을 수도 있었는데 그게 좀 아쉽다. 사진 좌측에 보이는 계단 자리가 실은 내 자리였다. 이 장면을 찍어야겠다며 카메라를 가지러 간 사이에 저분이 내 자리를 차지했다. 자리에 주인이 어디 있겠냐만 그 결과 렌즈 앞에 장애물이 생겼다. 다시 생각해도 결국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