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
살면서 목적의식이 뚜렷할 때가 몇 있는데 그때에 대한 관용도가 유독 높은 편이다. 그러니까 추억 보정을 먹여도 조금 더 잘 먹히거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한결 수월하단 말이다.
이를테면 다 큰 셰퍼드 두 마리와 새끼 한 마리가 소몰이를 하는 행렬 뒤에서, 아저씨와 어디까지 가냐, 다리는 어떠냐, 이건 무슨 트래픽이냐, 그놈 참 영리하네 따위의 대화를 나눈 게 엊그제 일 같다.
소는 뒤따르는 우리를 신경 쓰는 눈치고, 개는 우리를 신경 쓰는 소를 신경 쓰는 눈치며, 우리는 우리를 신경 쓰는 소를 신경 쓰는 개가 우리를 의식할까 무심한 척 걸었다.
난생처음 소몰이를 접하곤 셰퍼드가 원래 소몰이를 위한 견종이었나 궁금해졌고, 이를 주인에게 물어보기 위해 파파고를 꺼냈으나 작동하지 않는 블랙베리를 보며 스마트한 폰은 아니라고 거듭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소도 목초지에 들어가고 셰퍼드도 할 일을 다해 주인을 바라보고 섰는데, 말도 않고 가지도 않는 내가 목초지 입구에서 폰만 잡고 서자 주인 심기가 그대로 표정에 드러나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