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별다른 주제 없이 쓸 땐 날짜를 제목으로 다는 게 무난하다. 막간을 이용한 일기.
- 미세먼지를 주제로 한 포럼에 다녀왔다. 기사를 쓴 뒤 관련 정보를 취재 후기로 남길 예정이다. 그전에 간략하게 몇 가지만 기록한다. 1. 미세먼지 관련 허위 정보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2. 국내 대기오염 원인이 되는 미세먼지가 '중국발'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3. 중국발일 확률은 낮다. 4. 국내 요인 분석, 해결책 찾아야 한다. 5.1번 탓에 정책 저항 크다. 6. 의외로 서울은 괜찮다. 7. 지역 간-국가 간 협력 필요하다. 등이다.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 취재 간다고 낮에 지하철을 탔는데 자기 지나간다고 서 있는 사람들을 밀어댔다. 중년 어르신들이다. 손잡이를 잡고 서있으면 뒤로 지나갈 때 자기 몸을 비트는 게 아니라 손으로 서 있는 사람의 등이나 엉덩이 등을 밀면서 지나간다. 그렇게 밀어놓고 뒤나 옆 한 번 돌아보지 않는다. 40분 정도 지하철을 이용하며 7번이나 밀렸더니 조금 화가 났다. 바로 앞에 자리라도 나면 어디선가 육탄전을 시도해온다. 이 정도로 무례할 필요가 있을까.
- 신촌역에서 연희동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뒤늦게 온 여자가 새치기를 했다. 버스가 도착하자 문 앞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틈을 이용해 제일 앞쪽으로 나섰다. 딱히 줄이 없었으니 엄밀히 말하면 '새치기'는 아니지만 먼저 와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는 제일 앞쪽으로 갔다. 결국 자리에 앉는 데 성공하는 그를 보며 '맨날 남 비판 기사 쓰는 기자 하면서 지는 새치기나 하고...' 같은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는 모 경제지 기자다.
- 후배에게 6년 만에 연락을 받았다. 3주 뒤 결혼한단다. 가기도 민망하고 안 가기도 민망하다.
- 비트코인(가상화폐)에 투자했던 친구가 투자금을 회수했다. 2017년 초부터 했다기에 큰 이익을 본 줄 알았는데 겨우 원금을 보존했다고.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비트코인 광풍이 이제는 마치 옛일만 같다. 친구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그런 일이 있었구나 떠올려본다.
- 어릴 때는 종종 온 가족이 모여 앉아 비디오를 봤다. 누나와 함께 아파트 상가에 있는 비디오 대여점에 가서 곽을 보며 영화를 골랐다. 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 고등학생이 되는 누나와의 나이차를 이용해야 비로소 빌릴 수 있는 비디오의 범위가 늘어났다. 당시 청불 영화 같은 것을 애들에게 빌려주는 그런 시대는 아니었다. 그래서 늘 누나와 함께 가는 편이었고 타이타닉도 그런 과정을 거쳐 빌려오게 됐다. 아무것도 모른 채 비디오테이프에 적힌 정보를 보며 러닝타임이 좀 길다? 정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해도 영화가 1시간을 넘기면 긴 편이란 생각이 들었다. 타이타닉은 무려 3시간 넘게 상영하니 이색적인 영화가 분명했다. 집에서 베개를 배에 깔고 엎드려 영화를 봤다. 멍하니 3시간을 흘렸던 기억이 있다. 어린 나이에 케이트윈슬렛의 나체는 조금 충격적이었는데, 그보다 김 서린 유리창이 의미하는 바를 몰라 갸우뚱했었다. 그 나이 때 이해의 범주는 그 정도였던 듯. 이제는 이렇듯 추억으로 떠올릴 수 있는 영화가 됐다. 빛바랜 긍정만을 내 지난날과 함께 담고 있는 그 영화. 신촌메박에서 만나볼까 한다.
- 얼마 전 화제가 됐던 '북한 응원단 화장실 포토뉴스(인권침해)' 건에 대한 연합 측 해명을 봤다.
“여성 기자가 찍은 것인데 (설명을 들어보니) 화장실 안에서 응원단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에 담고 있는 시민들이 있었고, 그렇다 보니 ‘시민 스케치’를 한다는 생각에 판단이 흐려졌던 것 같다. 문제가 있는 사진이라 내부에서 삭제했다“
연합뉴스에 평소 하루 1000여 장의 사진이 들어오는 데 평창 동계올림픽이 임박하면서 사진 수가 2.5배 느는 등 데스크 과정에도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고도 보도됐다. 나는 이게 좀 의아하다. 1. 찍은 기자의 성별이 중요한 대목도 아니었을뿐더러 2. 시민들이 찍는 것을 보고 '스케치'를 떠올렸다는 핑계도 궁색하며 3. 어디서 누굴 찍든 현안과 배경 등을 고려해 배경을 적재적소에 노출하는 사진기자 업무상 '화장실'이라는 공간적 특성을 간과했을 가능성도 떨어진다. 4. 설령 말도 안 되는 의도로 사진을 찍었다 하더라도 송고는 데스크의 권한이라 뉴스로 나간 건 데스크 잘못이다. 5. 데스크 과정의 어려움도 이해는 하겠으나 뉴스 소비자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이다.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는 국가 기간 통신사가 특정 행사 기간의 업무량을 예상 못했다는 건 데스크의 무능력을 돌려 말하는 것과 같다. 보조 데스크를 두는 등 보완책도 있다. 고로 명백한 잘못을 일선 기자의 잘못으로 돌리며 회사와 구분 짓는 태도는 마치 '꼬리 자르기' 같았다. 선배후배 하면서도 이럴 때 보면 비겁하다.
*한 가지 의문인 점은, 어떻게 연합에서만 화장실을 찍었나 하는 거다. 경험상 보통 현장에 같이 있는 사진기자들은 비슷한 동선으로 움직인다. 같은 현장에 있던 사람이 다른 사진을 송고하면 타사 기자들 모두가 물 먹는 상황이 오는 탓이다. 그래서 오랜 동료의식과도 같이 다른 사진을 찍을 거면 "선배, 저것도 하나 하시죠" 식으로 해서 같이 하는 편이다. 특히나 통신 3사는 더 그렇다. 연합뉴스 있는 곳에 뉴시스 있고, 뉴시스 있는 곳에 뉴스1 있다. 다른 기자들은 없어도 대체로 이 3사는 늘 같이 있는 편이다. 그런데 연합만 저 사진을 찍은 걸 보면 타사는 데스크에서 막았거나, 연합 데스크에서 따로 찍으라고 지시했거나, 현장에 프레스가 연합밖에 없었든가 정도의 추론을 해볼 수 있다.
- 최근 취재하다가 물 먹은 적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서울시교육청에 학평 관련이고 한 번은 페미니즘 교육 의무화 국민청원 관련 청와대에 질문한 거다. 교육청이야 답하는 담당자 마음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청와대는 조금 이해가 어렵다. 국민청원 관련 민원이나 의문은 국민신문고로 하라고 해놓고 국민신문고에 했더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아래 있는 이메일로 해보란다. 그래서 메일을 보냈는데 답이 없다. 애초에 이럴 거면 소통 창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사서 일을 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 기자 업무 특성상 청와대에 닿을 줄이 없는 게 흠결이라면 흠결인데 그것과 별개로 국민청원 관련 의문을 해소할 수가 없지 않은가. 그래 놓고 내가 메일 보낸 다음날 메일로 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타사 기사로 확인할 수 있었으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 근래 이직 제의했던 곳과 협의가 틀어져 다니던 곳에 다니기로 했다. 그렇게 지내던 도중에 그곳에서 다시 한번 내게 연락을 취할 거란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조건이 맞지 않아 가지 않기로 했던 것을, 어째서 다시 흔든단 말인가.
- 요즘 왜 이렇게 자는 걸까. 그저 추운 날 따뜻한 방 안에서 지낸다는 사실이 행복해 스르륵 잠이 들고 만다. 이렇게 합리화를 하고.
- 데이터 분석 첫걸음으로 R 언어에 대한 책을 빌려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판결문 전문을 프린팅 했다. 뉴욕타임스 기사도 어찌어찌 프린팅 했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 의지가 없다.
- 일단 기사부터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