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아이스크림과 약자
- 기사를 읽으면 습관적으로 댓글을 본다. 커뮤니티에서도 그렇다. 글을 보고 댓글을 본다. 가끔은 댓글이 궁금해 댓글만 본다. 그렇게 차츰차츰 습관을 만들어가다 보니 인터넷을 하면 피로하다. 액정을 볼 때의 생물학적 피로는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의 분노가 마음에 생채기를 그린다. 어떤 기사들은 비판과 비난을 버무린 댓글이 주를 이루는데 한참을 읽다 보면 기분이 나빠진다. 댓글 내용의 시비를 떠나 감정이 분진처럼 묻어난다. 요즘 기사만 읽거나 본문만 보려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 회식했다. 환영회다. 새로 온 사람이 나밖에 없으니 내 환영회다. 오랜만에 고깃집에 갔다. 1인분이 14,000~20,000원이었다. 비쌌다. 친구들과 온다면 굳이 이런 곳에 올까 싶은 가격이었지만 가게에 사람은 많았다. 강남 한복판이니 합리적인 가격일까. 밥 먹기 전 잠시 생각했다. 고기는 연했다. 또 부드러웠다. 점원이 구워줬고 먹는 방법도 알려줬다. 밑반찬도 좋았다. 역시 가격 덕분일까. 또 생각했다. 맛을 음미하는데 와인이 나왔다. 고기 집에서 포장지에 싸인 와인이 등장하자 어색했다. 인터넷을 통해 돼지고기와 와인 같은 조합을 유럽 어느 지역의 풍미라며 게시해 놓은 것을 본 것도 같다. 와인을 비우자 소주가 뒤를 따랐다. 술은 먹는 사람만 먹었다. 그중에 내가 끼어있는 게 문제였지만 역시 소주는 맛없었다. 소주를 비우자 다음 술 선택권이 주어졌다. 맥주와 소주를 두고 고민했다. 맛은 맥주가 우세하지만 포만감이 소주를 선택하게 했다. 그렇게 먹은 게 고기와 와인과 소주(2ea)와 밥이다. 터질듯한 배를 안고 오후 10시 20분쯤 가게를 나왔다.
- 술을 먹은 날은 꼭 아이스크림을 산다. 혀에 남은 쓴맛을 지우려는 시도다. 어제도 연희동에 도착해 아이스크림을 샀다. 이것저것 샀는데 '와플'이라는 걸 먹기로 했다. 취기가 올라 졸린 가운데 집에 가자마자 옷을 벗으니 한기가 돌았다. 전기장판에 불을 지피고 하반신을 이불에 넣은 채 와플을 먹는데 오르막을 올라온 탓인지 힘겨웠다. 자연스레 몸을 눕히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씩 베어 먹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먹다 만 와플 반쪽이 왼손에 쥐어져 있었다. 아이스크림은 다행히 포장지를 벗기지 않아 그 속에서 슬라임이 되어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과 아깝다는 생각이 거의 동시에 들었는데, '먹고 잘 걸'이라는 생각이 간발의 차로 빨랐던 것 같다.
- 비판하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면 자신에게 관대 해지는 우를 범하기 쉬운 듯하다. 반면 상대적으로 타인의 비판에 엄격해지기도 하는데, 비판 지점이나 비판의 타당성에 대해 따지게 되는 게 그에 해당한다. 가령 A라는 행위에 대해 비판하는 기사를 쓴 자신이 A라는 행위를 저질러버렸을 때 이에 대해 보도하는 타사 기자의 보도행태를 문제 삼는 일 등이다. 그 과정에 자신(의 행위)을 비판하는 기자의 취재윤리나 방법 등을 따지며 적절한 수위였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같은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서로의 일을 잘 파악하고 있고 어떤 어긋남에 대해 쉽게 분노할 수 있는 가능성이 다분하다. 대인춘풍 지기추상을 바라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일이 많아지면 기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을 테고, 자신이 하는 일의 무게를 체감할 기회도 더불어 늘어날 게다.
- 병원부터 언론사, 항공사 등 그놈의 장기자랑으로 안팎이 시끄럽다. 사람들 모아놓고 어떤 목적(친목이든 뭐든 기업에서 하는 일에 명분 없는 일은 없겠지)으로 직원들을 무대 위에 올리는데, 조직은 다 다르면서 올라가는 이들은 하나 같이 말단 직원이다. 이런 '전통'은 통상적으로 윗선의 묵인과 중진의 추진, 말단의 참여로 성사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문제가 불거졌을 때 윗선은 능동적이거나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다고 변명하기 쉽다. 중진은 관례나 관습 따위로 사회 규범에 비빈다. 말단은 가타부타 말하기 어렵다. '전통'이 계속되는 이유다.
문제를 문제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사람은 환경에 따라 특정 사안에 대한 민감도가 다르다. 사안을 저마다의 잣대로 바라보니 힘 있는 자의 뜻대로 끌려가기 쉽다. 나이 지긋한 임원들이 지위를 뽐내며 앉아 '단합의 밤'이나 '임직원의 밤' 따위로 신입사원들의 '재롱'을 보려는 사태는 이런 문화에 기인한다. '관례'니 '관습'이니 하는 폐단을 끊기 위해선 대표의 결단력 혹은 직원들의 반발이 필요하다. 이때 후자는 많은 잡음을 낳는데, 신기하게도 약자들 사이에서 편이 갈린다.
'시스템'은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이다. 조항으로 명시하거나 법으로 금지해두면 "나는 그저 따랐을 뿐"이라거나 "시키는데 어쩌냐"는 말은 나올 필요가 없다. 또 잘못된 줄 알면서 행해놓고 누구의 잘못이 더 큰지 저울질하는 궁색한 짓도 불필요해질뿐더러 시스템 밖 행위에 반발할 때 주변인의 공감을 살 가능성도 훨씬 높아진다. 대체로 이런 시스템을 세우는 데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데 애석하게도 이런 문제를 리더들은 눈여겨보지 않는다. 애초에 누리는 쪽에 선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풍경이기도 하겠다.
- 인스타나 페이스북을 통해 낯선 사람들을 마주할 때가 있다. 친구의 친구라든가 여러 다리를 건너 아는 사람의 경우다. 이들은 종종 내 주변에서 볼 수 없는 캐릭터를 인터넷에 게시하는데, 그 모습이 퍽이나 매력적이다. 가령 공부를 할 만큼 한 사람이 굉장한 퇴폐미를 내뿜는다거나 연구원 또는 학자가 자유분방함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식이다. 즉 사회가 기대하는 스테레오 타입에서 벗어난 연출로 삶을 꾸며가는 모습에서 어떤 용기와 통쾌함을 느낄 수 있어 어쩔 때는 일부러 찾아보기도 한다. 그들의 모습은 한 때 동경했던 캐릭터이자 지금도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과 맞닿아 있다.
- 일하고 금요일 밤을 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