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소리가.
기사를 쓰든 뭘 쓰든 역시 카페에서 쓰는 게 쫄깃하고 좋다. 일하는 느낌도 들고 시간에 쫓기는 감도 있어 아무래도 빨리 쓰게 되거든. 오늘은 근 1년 만에 현장에 나왔다가 밥 겸 카페 왔다. 몇 분짜리 기자회견이지만 이게 어디야. 나오는 길 칼바람에 '내근하고 싶다'를 두어 번 뇌까린 것만 빼면 현장 취재는 늘 옳다. 몇 년 전 활동하던 시민단체 대표들도 그대로고, 타사 동기도 보고 참 감회가 새로워. 잠시나마 추억에 젖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1. 가끔 가다 군중에게 사람의 모습을 읽을 때가 있다. 오늘 오전 출근길이 그랬다. 지하철을 타고 오는데 유난히 붐볐다. 미처 안전지대로 빠지기도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 상태로 몇 정거장 지나자 열차가 기우뚱 거릴 정도로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옆 사람이 밀리면 그 옆 사람이 밀리고, 차례로 사람의 하중을 옆 사람에게 전가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했다. 출입구 근처에선 비명소리와 함께 "왜 그러세요"라는 아우성, "밀지 마세요", "다음에 타세요", "좀 탑시다" 등 별별 소리가 다 들렸다. 그 와중에 귓가에 박히던 "내릴게요"는 다급함을 넘어 절박했다. 워낙 사람이 많으니 내리려는 사람이 길을 열지 못했고, 그 찰나에 타려는 사람들이 밀려드니 안팎으로 아비규환이다. 입구 근처 사람들은 아프다고 소리치는데 그래도 타겠다고 몸통 박치기를 시도하는 어르신들과 그 전 역에서 같은 방식으로 탑승한 어르신들의 "어이구어이구" 소리는 묘하게 어울렸다. 불과 20~30분 지하철을 탔을까 싶은데 그 사이에 본 사람들의 모습은 조금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무질서 상태라든가 무정부 상태에서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니 왠지 만화스러워서 말이지.
2. 현장에서 타사 동기를 만났는데 어디 다니냐고 자꾸 물었다. 동기들에게 내가 현장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하겠다며 반가워했다. 그건 그것대로 나도 반가웠지만 내가 현장에서 다시 취재하고 살 줄 누가 알았겠는가. 동기는 꽤나 찌든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이 날씨에 현장을 누비는 기자들이 그렇지 뭐 하고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종종 보자고 인사를 나누고 동기는 먼저 빠졌는데, 생각해보니 사진기자들은 필요한 장면을 찍으면 다음 현장으로 이동해야 하는 빡빡함이 있었다. 어차피 가기 전 마감도 해야 할 테고 말이다. 워낙 오랜만에 나가서 그런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워딩을 적는데 아이폰 메모장이 버벅거려서 워딩 속도를 못 따라갔다. 문장 후반부를 치는데 아이폰 화면으론 문장 중반에서 자판이 움직이고 있다. 가뜩이나 따라잡기 힘든 워딩 속도가 이래선 자꾸만 펑크 난다. 아이폰을 안 쓰든지 해야지 하고 돌아오는 길, 친구는 배터리 문제라며 3만 4천 원 주고 바꾸라는데. 기기 하자를 내 돈 주고 바꿀 생각을 하니 괜히 팀 쿡이 짜증스럽다. 그래서 짜증을 가라앉히고자 카페에서 티라미스 케이크를 밥 대신 주문하고...
3. 현장 나간다고 장갑과 핫팩을 사무실 사람들한테 받아 나왔는데 배려가 어색하다. 통신에서 일할 땐 바닥에 앉아서 랩탑으로 기사 치고, 밥 먹으면서 워딩 정리하던 식이라 기자회견 정도는 사실 무난한 취재에 속하는데...
4. 이직 제의를 연봉 문제로 고사했더니 지금 다니는 곳만큼은 연봉을 맞춰준다고 다시 제의 해왔다. 애초에 제의했던 연봉과 차이가 커서 영문을 모르겠다. 사실 갑작스럽게 사람을 잡기 위해 일단 내지른 것일 수 있어 선택이 조심스럽다. 오늘 내로 연락을 다시 주겠다고 얘기해놓은 상태라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쉽지 않다. 잦은 이직도 번거롭지만 무엇보다 이 바닥에 계속 있어야만 하는 게 우려스럽다. 가뜩이나 얼마 전 '쓰레기 같은 피디들을 고발한다'는 내용의 작가가 쓴 글을 읽고 회의가 심해진 터라, '배운 게 도둑질'을 이어나가야만 하는가 싶다. 모 선배 말마따나 기자가 기자로 커리어를 끝낼 수 없는 사회에 살고 있어 가능하면 보다 전문적인 일을 시작하고 싶다만 전문적인 일조차 전문성을 쌓아야 할 테니 여간 곤궁한 게 아니다. 사상 최대 청년 실업률에 취업 뒤 장기 미취업자 수도 최고 수준이라는데 배부른 애송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어느새 쪼꼬미 셋을 슬하에 둔 누나는 형의 외벌이만으로 힘들다 느꼈는지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 여파로 애들은 종일반 신세다. 우체국을 목표로 9급을 준비한다는데 워낙 공부는 1~2등 하던 양반이라 내 걱정이나 하자 주의. 창밖으로 눈은 내리고 음악이 귀를 간지럽히는데 선곡을 누가 했는지 참, 스타벅스 사람 잘 쓰네.
5. 그래도 명색이 기사 쓰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보니 사무실엔 늘 뉴스를 켜두는 편이다. 오늘 취재 나갔다가 돌아오니 방송에 인공지능 로봇이라는 '소피아'가 나와서 박영선 의원과 이야기를 나누더라. 오전에 이미 4차 산업혁명과 관련해 소피아에 대한 뉴스를 읽었던 터라 그나마 최근 접했던 '알파고'라든가 <블레이드 러너> 등을 상상하며 뉴스를 봤는데 웬걸. 사이버 가수 아담의 머리를 벗겨놓은 캐릭터가 스튜디오에서 입만 뻥긋 거리고 있다. 이를 즐겁게 바라보는 박 의원과 스튜디오 사람들을 보니 뭔가 일본 만화에 나오는 만담의 한 장면 같아서 실소가 터졌는데, 취재한 현장 기사를 재빨리 끝내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라 소리 내 웃지 못했다. 소피아는 소프트웨어의 발전과 별개로 하드웨어는 전혀 발전하지 못한 건가 궁금증을 유발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시험용 상품에 고오급 인공피부를 이식하는 것도 수지가 안 맞는 짓인 듯 하지만 '3차'에서 '4차'로 이동하는 과정에 선보인 기술력치곤 시각적으로 참 궁했다. 이 글을 적다가 떠오른 생각인데, 설마 너무 완벽한 인간형 타입을 제작할 수 있게 된 연구진의 빅픽쳐는 아니겠지. 규제라든가 기술 유출, 아니면 휴머니즘 등을 염두한 뭐 그런 거.
눈 속 망상이 이렇게나 자유롭다.
6. 엊그제 전화로 의견을 묻는다고 모 노조에 연락한 일이 있다. 매체력이 없는 곳 기자들이 으레 겪는 일 가운데 하나가 매체명을 설명하는 일인데 그 일을 겪고야 말았다. 예전처럼 전화를 하면 "아, 기자님. 안녕하세요~" 같은 살가운 말부터 나오는 게 아니라 "어디시라고요?"라는 말이 수차례 나온다. 그나마 어디 기자라고 말하면 매체는 몰라도 '기자'라는 말에 질문에는 응해주기도 하는데, 매체에 대해 물으면 낼 수 있는 답이 거의 없다. 나조차 여기 와서 회사에 물었다가 "매체 설명이 필요한가요?"라는 대답과 함께 "신생매체라고 하면 된다"는 이야길 들었으니 모르는 사안을 답할 순 없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의견을 구하거나 보도자료 등을 요청할 땐 신분을 밝히는 게 최소한의 예의인데 이마저 지키기 힘든 상황에 처했으니 수를 내긴 내야 할 듯. 엊그제는 전화기에 대고 매체명을 네댓 번 말했는데 끝내 올바르게 알려드리지 못했다. 이름이 영어명인 데다 뉴스 검색도 안 되고, 기존에 없는 영어 단어를 만들어 붙인 이름이니 어지간해선 유선으로 알려줄 재간이 없다. 그렇다고 남의 시간 빼앗으며 의견을 구하는데 "가지의 가, 나이의 나, 다람쥐의 다, 붙여서 '가나다'..." 식으로 소개에 시간을 더 쓸 순 없는 노릇. 이 정도까지 무명의 매체에서 일한 적이 있던가 떠올려 보면 의외로 그리 열악하지 않았덧 곳을 거쳐왔나 추억하게 된다. 이거 마치 일상의 우울을 떨쳐버릴 제세동기 같은 행위일세?
7. 퇴근하고 집에 가면 보상심리가 작용해서 눕거나 먹게 된다.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고 다짐하면 늘 그 순간만 유효하다. 이런 어리석음과 깨달음을 수년째 반복하는 중인데 나아지지 않는다. 단순히 감시하고 욕해줄 누군가를 고용해 돈 주고라도 뜯어고칠 일 같다고 오늘 생각했다. 사회적으로 저명한 사람이나 무엇인가 이룩한 사람들을 보면 아주 사소한 일상의 부분들에서 차이를 보이는데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까지는 습관에 이르도록 반복한 생활이 있었을 게다. 이는 닮고 싶다고 마음먹거나 단순히 따라 하는 정도로 자기 것이 되지 않아 의외로 좋은 습관을 갖는 일은 어렵다는 걸 알게 된다. 꾸준함은 어쩌면 후천적으로 익힐 수 있는 천재의 자질 아닐까 싶기도.
8. 이번 주 발제 기사 뭐 쓰지.
9. 근래 퇴사한 기자들의 소식을 들었는데 개중 동기도 끼어있어 소식을 물었더니 탈언론사 했다고. 박수를 쳐주고 싶은데 실은 이 박수가 나에게 향했으면 하는 바람이 더 크다. 가뜩이나 요즘 회사와 제휴 맺은 통신사 사진이나 기사 등을 쓰면서 전 직장이나 타사 동기들 이름을 보면 기분이 묘하다. 급여도 비슷하고 삶의 질은 훨씬 나아졌는데 1차 생산자에서 소비자(2차 생산자)로 바뀐 게 이렇게 사람 뒤숭숭하게 만들 줄이야.
10. 내가 진짜 여기 쓰면 또 뻥카를 치는 일이 되어버릴까봐 뭔가를 이루면 공개하려 했는데 일단 내지르고 성공했을 때 자랑하자는 심정으로 적어본다. 넓게 보면 언론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으면서도 전문적인 기술직이고, 때로 창의적인 일마저 벌일 수 있는 요즘의 관심사는 빅데이터/데이터 마이닝/딥러닝 등이고, 이를 다룰 수 있을 때 데이터 시각화를 통해 효과적인 뉴스(정보) 전달을 하고 싶다. 이런 목적을 이루려면 우선 분야를 특정해서 상당한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 단순히 빅데이터에 해박한 기자가 아니라 빅데이터에 방점이 찍힌 전문가가 언론사 업무도 보는 식이 되어야 한다. 그 전문성을 어디에 쓰든 결정하는 건 차후 문제고 이를 위해 응용통계라든가 기초가 되는 세부 전공을 '빡세게' 공부해야 한다.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 같은 결심을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실행하는 것이 훨씬 어려울 듯하여 칭찬은 후일로 미루도록 한다. 물론 가시적인 결과를 성취로 받아들일 때쯤엔 자신에게 선물을 주겠다. 이 글을 미래의 내가 성지처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11. 오후 10시.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