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가면

2월 오겠지

by OIM

29일이다. 한 달이 다 갔다. 새해가 오더니 어느새 2월을 앞두고 있다. 한 해의 시작은 그 나름 의미가 있는데,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면 잡히는 게 없다. 기억은 늘 희미하고 이룬 것은 비가시적인 탓일까. 게으름을 변명으로 살포시 덮어본다. 쓰자. 이렇게라도 쓰다 보면 반성이든 추억이든 할 거리가 생길 테다. 그런 마음으로 일기를 쓴다. 2월, 앞두고.



1. '최강 한파' 자리를 다음날에 내어주는 날들이 계속된다. 차도 사람도 추위에 떤다. 차는 사람을 치고, 사람은 미끄러진다. 여러모로 계절을 정면으로 맞고 있다. 나도 그렇다. 며칠 전 일이다. 불길한 느낌에 눈을 떴더니 출근 시간이 임박했다. 보일러를 켜고 욕실에 갔는데 한참을 기다려도 냉수뿐이다. 한시가 급한데 손이 아렸다. 물 온도를 재면서 머리를 들이밀 각을 쟀는데 뼈마디가 아파와 손을 뺐다. "으어" 하고 외마디를 터뜨렸는데 입김이 나왔다. '급할 때 꼭' 같은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별 수 있나. 샤워기를 냅다 머리에 대는데 통각이 사라졌다. 3초일까. 5초일까. 초 단위로 물을 댔다 뗐다 하는데 머리에서 김이 올랐다. 거품을 달고 나온 것만 같던 그날 아침, 연희동 기온은 영하 19도를 찍었다.



2. 아이스크림에 빠졌다. '쿠키오'라고 롯데에서 나온 건데 눅눅한 초콜릿 쿠키 사이에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끼워놓은 모양이다. 동네 슈퍼에서 개당 1,000원에 파는데, 먹기 적당한 가격대에 맛이 어울려 요즘 내 지갑을 거덜내고 있다. 현금 소비가 거의 없는 내 지갑에 남은 지폐는 단돈 3,000원. 어젯밤엔 무슨 '뽐뿌'가 왔는지 허니버터칩까지 들고 왔다. 군것질로 무엇인가 상쇄해보겠다는 심보인지 밤 10시에 슬리퍼를 신고 오들오들 떨면서 양팔에 아이스크림을 안고 왔다. 가끔 내가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를 때가 있는데 어제 같은 경우가 그렇다. 집에 와선 또 맛있게 먹었다만 구입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번쯤 현타가 온다. 특히 너무 많이 사서 들고 오다가 과자나 아이스크림 봉지를 바닥에 떨구면 다시 줍는 과정에 반드시 온다. 왜 나는 군것질을 끊지 못할까.



3. 가지고 있는 양말 가짓수에 따라 그날 신는 신발이 달라진다. 오늘은 발목양말을 신어서 부득이하게 로퍼를 신었다. 한동안 한파로 세탁기를 돌리지 않은 탓이다. 어쨌든 발목으로 냉기를 유통하는 그런 복장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로퍼를 신었더니 발등이 신발에 끼는 느낌이다. 몇 발짝 걸었더니 분명히 부었다. 어릴 적엔 무슨 짓을 해도 붓지 않더니 요즘은 이런 일도 겪는다. 단순히 나이 탓은 아닐 게다. 식습관과 생활 패턴, 스트레스 등 복합적인 요소가 작용했다. 겨우 발등 하나 부은 걸로 이 정도까지 유추하자 왠지 이 느낌이 큰 일의 전조인 것만 같다. 그저 단짠을 반복한 결과라고 하면 조금 슬프지 않나.



4. 지난해 재미로 본 신년운세에서 올해 초 내 운은 최고라 그랬다. 길을 가다가 돈가방을 줍거나 벼락같은 행운이 찾아오길 바라는 건 아닌데 뭔가 심심한 1월이 흘러간 것 같아 갸우뚱하다. 어떤 의미에선 놀고먹으면서도 굶어 죽지 않거나 아픈 곳이나 다친 곳 없이 겨울을 지낸 것이 나름의 운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저변에 깔릴 운 같으면 '나쁘지 않다' 정도로 해설해도 좋지 않았을까. 운세란 게 원래 나쁜 일에 대비해 액을 피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하니 이 정도면 감사히 다음 달을 준비해도 되려나. 아니, 근데 가만 보면 내가 능동적으로 노력을 안 해서 그런가 싶기도?



5. 나와 "함께 하고 싶다"던 회사에서 연봉을 제시했다. 지금 다니는 곳과 1,000만 원 안쪽으로 차이가 난다. 예상한 대로 지금 다니는 곳보다 낮은 급여를 제시했다. 지금 다니는 곳의 임금이 내 서울생활의 마지노선급이니 이직을 제안한 곳에선 최저선도 맞춰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쪽에선 "적지?"라며 "적은 것 아는데, 1년 후 올려준다"라고 말했다. 기다린 내가 무색해지는 처우다. 최소한 더 주진 못하더라도 적게 주진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마저 이 정도로 적게 주면 설령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진다. 고민의 여지가 없어져서 그 점은 감사하지만 이래저래 품이 들었던 점은 아쉽게 됐다.



6. 헬스장이나 성형외과 홍보 전단을 보다 보면 '비포-애프터' 사진을 종종 본다. 요즘 내 몸이 전단에 나오는 비포 사진 같다. 어제 샤워하려고 옷을 벗고 욕실 거울 앞에 섰는데 옆구리와 배로 불어난 살이 'hi' 하고 인사했다. 몇 번 주물럭대며 낯선 인사를 계속하다가 갑작스레 '뛰면?'이란 생각이 들어 제자리 조깅을 잠시 했더니 온몸을 타고 지방의 출렁거림이 전달돼 왔다. 이토록 거추장스러운 존재를 왜 달고 다녔는지 의문이 들면서 살면서 처음으로 유산소 운동을 필요로 했다. 언젠가 '훕-'하고 숨을 들이마셔도 감당이 되지 않기 전에 자존감을 가꿀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래선 정말.



7. 필로티 구조의 주차장에 세로로 나란히 댈 수 있는 두 자리가 있다. 그중 한 곳에 내가 댄다. 조수석 쪽이 벽과 맞닿는다. 나는 가능한 벽에 차를 붙여댄다. 문콕을 방지하는 한편 상대차에도 공간을 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늘 옆자리에 주차하던 사람이 차를 사선으로 댄다. 차의 엉덩이 부분을 내 차 운전석 뒤쪽에 근접하게 대는 거다. 가뜩이나 좁은 자리에 나란히 대면 그래도 문 열 공간이나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이 나오는데 이상하게 차를 대니 트렁크 쪽으로 지나가기가 힘들다. 처음에는 급해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며칠간 계속되니 의도적인 듯하다. 오후 10시부터 오전 1시 사이에 세탁기를 돌리며 주 활동(?)을 시작하는 윗집과 이 차주는 내게 '적폐'로 찍혔다. 그래 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윗집은 찍어둔 지 오래다. 어제는 12시쯤 탈수기 돌아가는 '쿵쿵쿵쿵쿵쿵' 소리에 주인집에 윗집 사람의 직업을 물어볼까도 했지만 이성이 끊어지기 전까지 '긁어 부스럼'은 없다. 만에 하나라도 야간에만 집에 있는 자영업자일까 싶어...



8. 탈언론계를 꿈꾸는데 기자 출신이 다른 데 가서 기자'직'만큼 대우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기자 중에서도 매체에 따라 좋은 처우로 일하기는 하늘에 별 따기지만 언론계에서 한 발만 벗어나도 기자는 '글 쓰는 노동자'가 된다. 왜 그런 거 있잖나. 자동차 부품을 수출하는 회사에서 홍보팀 직원으로 일한다거나 언론사에서 서버 관리자로 일하는 거. 또는 가구 디자인 회사에서 경영지원팀 직원으로 일하는 식. 회사가 메인스트림으로 삼는 업무 외 직군이 받는 직간접적 홀대를 느끼게 된다. 그 알싸한 공기를 맡아본 사람은 알 수 있다. 단지 보도자료라든가 홍보 자료를 만들 수 있는 기술자가 되어버리면, 기자로 일했던 과거는 오히려 장애물이 된다. 그래서 전문 기술이 필요한데 분야를 정하는 것마저 쉽지 않으니.



9. 일하고 밤에 더 쓸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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