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403 4월 나들이

by OIM
KakaoTalk_20180403_142751360.jpg 오랜만에 찾은 메뉴팩트. 메뉴는 플랫화이트.


1. 지난 일요일에 친구가 놀러 왔다. 친구는 글을 통해 몇 번 밝혔던 고액 연봉자다. 두어 번 이직을 통해 고소득자 반열에 올랐다. 30대 초중반에 월 500만 원 이상 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벤츠를 끌고 왔다. 주행거리가 200km 채 안 되는 새 차다. 친구는 신이 났다. 덩달아 나도 신이 났다. 밥을 먹고 차에 탔다. 차는 매우 조용했다. 새 차 냄새도 스멀스멀 올랐다. 애 같지만 여전히 들떴다. 우리는.


2. 친구가 차에 달린 옵션들을 보여줬다. 선루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지잉' 소리를 내며 선루프가 열렸다. 이내 다시 유리를 닫았다. 그런데 어딘가 허전했다. 선루프 유리만 닫히고 내부 플라스틱 소재는 그대로다. 친구가 손으로 플라스틱 안감을 당겨 닫으며 "이건 수동..."이라고. 자기도 딜러랑 시승할 때 놀랐다는데 나는 그게 너무 아이러니해서 빵 터졌다.


3. 연희동에 도착해 주차장을 찾았다. 때마침 사러가 마트 옆 공영주차장이 비었다. 길거리다. 갓 뽑은 차라 불안했다. 어디 긁히기라도 하면 어쩌나 마음 졸였다. 놀러 온 친구 차라 더 그랬다. 그러다 뒤를 봤는데 포르셰가 있었다. 괜스레 마음이 놓였다. 차를 대고 수제 맥주집으로 향했다.


4. '유쾌한 스시'라는 일식집 맞은편에 '연희탭룸'이라는 수제 맥주집이 있다. '청송 함흥냉면' 근처 골목이라 주민들은 알 테다. 모던한 게 뭔지도 모르지만 약간 모던한 느낌의 술집이다. 대폿집 등을 드나들다 보면 선뜻 들어가기 망설여지는 분위기다. 막상 들어가면 아늑하다. 규모가 크지 않고 테이블도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하기 적당하다. 테이블 수가 많지 않은데, 사람이 많으면 시끄러울 수 있겠다 싶었다. 어쨌든 가격대는 조금 비싼 편이다. 일반적인 맥주를 생각하면 그렇다. 다만 '연희동 시세'를 고려하면 크게 비싼 느낌은 없다. 인터넷에 가게명을 치면 가격이 나오니 보고 가도 좋다.


5. 저녁을 먹고 들어간 우리는 트러플 감자를 안주로 시켰다. 살짝 짭조름한 감자에 치즈가 뿌려져 나왔다. 담긴 그릇에 기름종이를 둘러 적절한 데코를 해줬다. 장소가 풍기는 분위기를 크게 해치지 않는 모양새다. 무슨 이런 것까지 신경 쓰나 싶지만 가끔 그런 곳에서 분위기에 취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욕구를 적당히 충족시켜주는 장소였다. 수제 맥주도 '맥주집' 다운 유리잔에 준다. 아쉽게도 이름이 낯설어 주문한 메뉴 기억이 어렵다. 그래서 가격으로 기억을 더듬어 보면, 친구는 "제일 비싼 것"을 시켰다. 한 잔에 14,000원짜리 수제 맥주인데 확실히 맛이 부드러웠다. 맥주나 커피 등 식음료 맛을 특별히 구분하지 못하는 내가 느낄 정도니 차이는 두드러진다. 나도 '부드러워 보이는' 맥주를 시켰는데 흑맥주가 나왔다. 끝 맛이 써 친구 맥주와 비교됐다. 술을 잘 모른다면 시키기 전에 추천을 받거나 물어보는 것도 좋다. 그 정도로 점원도 친절해 보였다. 둘이 가서 피자 하나와 맥주 한 잔씩 하면 대략 4~5만 원대를 예상하면 된다. 저렴하게 먹으면 3만 원에도 먹고, 비싸게 먹으면 이보다 더 나올 수도 있다. 일반적인 '술값'에 비해 가격은 나가는 편이다. 남자끼리 간 탓에 이번에 사진은 생략했지만 다음에 가면 찍어와야겠다. 헤비드렁커가 아니라면 한 번쯤 가봐도 좋을 곳이다. 연희동 주민으로서 추천해도 좋을 곳.


KakaoTalk_20180403_142754829.jpg 연희동 '유쾌한 스시'. 런치메뉴로 선택할 수 있는 초밥+우동 세트.

6. 다음날 점심으로 '유쾌한 스시'에서 런치 메뉴를 먹었다. 여기 주인은 정말 유쾌하다. 장사 참 잘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런치 세트 중 우리가 먹은 건 초밥 6~8 pcs에 우동이 추가된 메뉴다. 배불리 먹을 게 아니라면 깔끔하게 한 끼 해결할 수 있다. 그저 사장의 손님 응대를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던 기억이다. 예전에 회덮밥을 먹기도 했는데 이곳 메뉴는 대체로 괜찮았다. 이곳도 한 번쯤 가봐도 좋다. 추천.


7. 친구 차를 '굴린다'고 외곽 도로를 탔다. 갈 곳을 물색하다 찾은 곳은 영종도 휴게소. 그나마 서울 근교에서 달릴 수 있는 도로를 거치는 장소라고 한다. 그런 생각으로 도로를 탔지만 현실은 달랐다. 속도 제한에 구간 단속 등으로 가는 길이 크게 의미가 없어졌다. 휴게소는 자체는 흥미로웠다. 일반적인 고속도로 휴게소보다는 일종의 작은 박물관 같은 느낌이었다. '느리게 가는 우체통'이 있고 피규어 등을 팔기도 했다.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거대한 곰 조형물도 있다. 볼거리가 많지 않지만 '오늘 할 일도 없는데 한 번 가볼까?' 싶으면 이곳을 둘러봐도 좋을 것 같았다.


8. 친구가 상품권을 써야 한다고 해서 신세계 백화점으로 향했다. 그나마 가까운 곳이 인천에 있는 곳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가보는 길에 친구와 나는 길을 더듬어 그곳에 도착했다. 다만 주차를 시도하다가 끊이지 않는 차량 행렬에 덜덜 떨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 속에서 언제 차를 대나 싶었다. 한 10분 기다렸을까. 깔끔하게 포기하고 명동으로 향했다. 인천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동네가 아니었을까, 인천도 인구가 많구나 같은 이야기를 하며 소득 없이 다시 서울로.


9. 친구는 상품권으로 차량용 휴대폰 거치대를 사려고 했다. 명동 신세계 백화점에 마침 그게 없었다. 한참 돌아다니다 애플샵에 있는 걸 발견했다. 사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저 앞에 계산하는 사람이 한참 시간을 잡아먹었다. 맥북을 사는 모양이었는데 과정이 길었다. 우리는 이곳 아니면 물건을 오늘 못 살 것 같아 그냥 기다렸다. 한참 기다리다 마침내 계산대에서 두 번째 자리까지 거리를 좁혔다. 거의 다 왔다 싶었는데 점원이 다가오더니 20분을 기다릴 수 있냐고 묻는다. 우리 바로 앞 손님도 맥북을 사려고 하는데 그 과정이 20분 정도 걸린단다. 친구는 갈등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어딘가 억울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데 손해를 본 듯할 때 가슴이 답답해진다. 하지만 거치대 하나 사려고 40분 넘게 기다리는 건 어쩐지 불합리하다. 우리는 자리를 떴다.


KakaoTalk_20180331_195216929.jpg 한 통에 빵이 6개씩 도합 12개.

10. 1년 넘게 상품권을 묵혀뒀다는 친구는 오늘 쓸 기세다. 내가 삼송빵집에서 빵을 사 간다고 하자 그냥 고르란다. 상품권은 5만 원권만 6장. 최소 5만 원어치의 80% 이상은 써야 한다고 친구는 종류별로 집으란다. 시그니처 메뉴인 통옥수수빵을 비롯해 2개씩 담는데 대략 10개를 담아도 2만 원이 안 된다. 한참 고르다 종류별 개수를 늘려야 할 것 같아 고민했다. 메뉴판을 봤는데 '멀티팩'이라고 빵 12개를 세트로 하는 21,000원짜리 묶음 상품이 있었다. 뭔가 번거로워진 우리는 멀티팩 2개를 구입했다. 빵 상자 두 개씩을 각각 종이가방에 담아 나오는데 굉장한 빵돌이가 된 기분이었다. 빵으로 묵직해진 가방에서 통옥수수빵의 냄새가 솔솔 올라오는데 그때 그 기분이란.


11. 아참. 이날 명동 신세계에서 본 광경 중 메모할 만한 것. 신촌 현대백화점보다 명동 신세계백화점에 초콜릿 종류가 더 많다. 고로 초콜릿 류로 선물을 준비하려는 사람은 신촌보다 명동에서 구입해야 더 폭넓은 선택권을 보장받을 수 있다.


12. 주말 일과와 별개로 또 다른 친구가 여름휴가를 계획했다. 쿠바 하바나로 간단다. 원래 호주로 가기로 했던 걸 급변했다. 예상보다 저렴한 비행기표에 호주행 표를 취소하면서까지 쿠바행을 결단했다. 수수료도 무려 20만 원 넘게 물었다. 이런 결단력이 부러웠다. 무엇인가 결정에 앞서 확신과 추진력을 겸비하면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까 말까 한 순간에 나아가는 것을 결정하는 건 의외로 어려운 일이 아니던가. 많은 순간 나는 멈췄다. 그래서 do it은 참 부러운 기질이 아닌가 싶다. 그나저나 하바나라니. 살아생전 한 번은 꼭 가볼 테다.


13. 얼마 전 검찰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시 공백 7시간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기사로 먼저 접한 뒤 검찰 조사 발표 전문을 뽑았다.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했다. 일인즉 당시 관저에 있다가 초동대처 실패의 빌미를 제공하고, 긴박한 시간들을 그냥 흘려버린 거다. 악의나 고의가 아닌 것 같아서 화가 나기보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이가 없다는 표현이 비교적 적절하다.


14. 세월호 취재 때 기억을 떠올리면 가슴 아프다. '파란바지의 의인' 김동수 씨를 만날 때도 그랬다. 과거 그 기억이 계속해서 그분을 잡고 있는 듯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조심스러웠다. 아이들의 어머님들은 말할 것도 없다. 유선이든 대면이든 아이들 이야기에 목소리부터 떨렸다. 흐느끼거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는 것조차 죄송스러웠다. 어머님들은 특조위 청문회 등에도 와달라거나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지만 나는 가지 못했다. 기사도 쓰지 않았다. 당시 내가 하는 기자 일이란 게 그랬다.


15. 내게도 가시 같은 그 기억들이 검찰 조사 결과로 다시 떠오른다. 문득 박 전 대통령이 국회 방문할 때 국회 앞에서 자기들 사정 좀 봐달라고, 도와달라고 그렇게 울부짖고 매달리던 사람들을 외면한 그 모습이 생각나 감정이 한껏 모질어진다. 겨우 이 결과를 알기 위해, 그가 걸어온 길들이나 내린 결정들이 잘못됐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했나. 선거는 좀 더 애정 어린 결과물을 필요로 하는 듯하다.


16. 그런 면에서 고향집에 가면 맞닥뜨리는 <박정희 전집>이 너무 괴롭다. 아부지는 하고 많은 책 중에 왜 하필...


캡처.JPG 네이버에서 이런 건 참 잘 하는 듯. 의외의 기능에 가끔 놀라는 게 있다. 다음도 함께 했으면...

17. 또 다른 이야기. 네이버에서 '유기견 분양'이라고 치면 최근 등록된 유기견 목록이 나온다. 지역도 설정 가능하다. 근 한 달 사이에 접수된 애들의 사진과 특징, 발견 장소 등이 나오는데 그중 가장 최근인 10여 일 사이에 등록된 애들이 우선 검색된다. 서울지역을 설정했더니 약 220마리가 나온다. 그러니까 3월 24일에서 오늘 사이에 공고가 등록된 애들이 주욱 나오는 건데 특징들이 마음 아프다. 특히 인상 깊은 애는 특징에 이렇게 쓰여있다. '고령, 백내장, 배에 물혹, 발톱 긺, 사람 좋아함'. 마지막 말이 가슴을 후벼 판다. 2008년생이라는데 10년을 함께 하고 애들 잃은 건가. 자의든 타의든 이 사연 앞에서 괜스레 마음이 울적하다. 또 '매우 순함'이나 '사람을 잘 따름', '겁이 많음' 등으로 개들의 성격을 짐작 가능하다. 오래 보고 있기 힘든 이유다. 과연 주인들에게 반려견은 어떤 의미였을까. 개 키우고 싶어서 찾아봤다가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만 강해졌다. 언젠가 책임질 수 있을 때, 그때만 기다린다. 그때는 유기견을 만나러 갈 생각이다.


18. 일하고 또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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