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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Jan 01. 2019

돈을 벌어야 했다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돈을 벌어야 했다.

어떤 일을 해서 돈을 벌지 정해야 할 때가 됐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지금까지 내가 좋아해왔던 일들을 떠올렸다내가 좋아하는 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번역을 하고 책을 만들고….


'난 어떤 일을 해야 할까.’


그 중 한가지를 선택 하려하니 막막했다.

하고 싶은 일은 너무 많았고, 그 중 하나를 정하는 건 어려웠다.

하지만 그 고민이 쓸모 없는 고민이었다는 걸 곧 깨 달았다.

좋아하는 마음 만으로 돈을 벌기란 쉽지 않았다.

그림을 좋아한다고 해도 잘 팔릴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 했고, 글을 쓰더라도 팔리는 글을 써야만 했다.


난 여태까지 나만 생각하며 내가 좋아하는 그림만 그려왔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나를 필요로 하는 회사는 없었다.

이곳 저곳에 희망차게 문을 두드렸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할 수 있는 회사는 없었다.

나는 매일같이 돈을 벌 수 있는 곳을 찾고, 또 찾았다. 집착을 넘어 병이 되어갔다.


그러다 좋아하는 걸 하면서 돈을 벌 수 없다는 결론을 냈다.


'어느정도 돈을 벌고,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자' 그렇게 타협했다.


그리고 적당히 돈을 벌 수 있는 곳에 들어갔다.

받는 돈에 비해 일은 너무 많았고, 이미 너무 지친 내가 다른 일을 할 힘은 없었다.

그렇게 할 일을 계속 미뤘다.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이제 그만 글을 써야하는 데…’

라는 생각이 들어도 ‘괜찮아, 지금은 돈을 벌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벌고 그때 하고 싶은 걸 하자.’ 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돈을 버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갔다.

반 년만 하기로 한 일을 반년 더 늘리고, 조금 더 늘리고… 시간은 금방 흘러갔다.

분명 하고 싶은 일을 하기위해 투자하는 시간이었는데, 돈이 생겨도 일을 포기하지 못하고 난 이상한 변명들을 늘어 놓기 시작했다.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했다.


조금 지나자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내가 글을 좋아하는 건 한 때였을 뿐이야. 글을 쓰는 것도 계속하다 보면, 즐겁지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일 하고 있는 지금을 합리화했다. 지금 하는 일도 나중엔 좋아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며 일하는 이유를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허니와 클로버 / 출처@google


나는 그동안 두려웠던 것이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 내가 어쩌고 싶은 지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 그리고, 그래도 가차없이 흐르는 나날이

영화 <허니와 클로버>


사실은 알고 있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기위해 포기해야 하는 게 많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난 두려웠던 거다.

이렇게 누군가의 돈을 받으며 생활하는 삶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스스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사실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좋아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결국엔 돈을 필요로 하게 될 날이 올 테고, 그때가 벌써부터 두려웠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고,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으며 오로지 내 확신으로 해나 가야 한다는 것 나는 그게 두려워서 계속해서 미뤄왔다.


언젠간 할 거라는 말로,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는 말로, 우선은 돈을 모아야 한다는 핑계로, 난 계속 미뤘지만 사실 돈이 필요한 것도 경험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두려움 때문이었다.


아무리 속이려 해도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마음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흐르는 건 초조하고 불안했다.


더 이상 피할 수 없다고 느꼈다.

이제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먼지 덮힌 노트북을 꺼내 열었다.





이림 / 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돈을 벌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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