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받은 것들에 대한 기록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던 와중에 TV 속에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니?’
귀에 정확하게 꽃피는 이 말은 나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아무래도 무언가 찔렸나 보다. 내가 그 말에 날카롭게 반응 한 이유는 수 없이 많이도 들었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친구들, 선배들, 주변 어른들 나는 살면서 그 말을 참 많이도 들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의 눈에 보인 나는 참 쓸데없는 것에 힘을 빼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서울 곳곳의 시위를 찾아다녔다. 가끔 씩 뉴스에서 듣거나, 신문을 읽을 때 나를 화나게 하는 몇몇의 사건들이 있었다. 그 사건들을 접할 때면 부당한 것을 고쳐야 한다는 생각보단 화가 나는 것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밖으로 나섰다. 비정규직 불법 집단해고, 한·미 FTA 반대 시위, 청소노동자 파업 집회, 쌍용 자차 파업농성, 세월호 진상위 촉구 시위, 촛불시위, 일본 유학 시절에는 도쿄 아베 정권 퇴진 시위에까지 참여했다. 많은 시위를 다니면서도 나는 오랜 시간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을 들어야 했다.
모든 불평등에 반대하고 일어설 수는 없지만, 적어도 우연히 알게 된 진실에 대해서는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창 시위에 빠져 서울광장을 출퇴근했던 시절, 나와 평소 친하게 지냈던 한 할아버지가 어느 날 내게 "빨갱이들이랑 어울리지 말라"며 벌컥 화를 냈다. 난 그때만 해도 빨갱이가 뭔 지 전혀 몰랐기에 화를 내는 할아버지께 ‘알겠어요.’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빨갱이를 검색하며 빨갱이에 대해 공부했다. 할아버지가 빨갱이란 단어를 사용하기까지의 역사를 간단한 검색으로 모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은 그 세계를 알아 가는 데 빠져 있었다. 내 옆의 어른들은 어린 내가 걱정되었는지 이런 말들을 종종 했다.
“물들면 안 되는데 큰 일이네….” “저러다 말겠지 냅 둬.”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아휴.”
그래서인지 난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더 삐뚤어졌다. 내 행동이 고작 ‘그러다 말겠지’라고 말할 만큼 철없는 사춘기 소녀 같은 행동처럼 보이는 게 너무나도 싫었다. 같은 행동도 어른들이 할 땐 멋있는 게 되고, 왜 내가 하면 철없는 행동이 되는 걸 까. 나는 그렇게 어른들 말속에서 한참을 방황했다.
대학에서 공부를 할 때는 철학에 빠졌다. 역시나 잘 모르는 세계였지만, 우연히 어디서 했던 철학수업을 들은 후부터 큰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을 그 수업에서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을 들으며 처음으로 수업시간이 짧다고 느껴졌다. 교수님 말속에는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감이 있었다. 교수님이 말을 하면 우리는 생각을 했다.
동성애, 낙태, 다수성, 자유, 감정, 인간애 등의 주제를 철학적 이론들과 연관 지어 고민하는 것이었고, 답이 없는 문제를 갖고 대화는 것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나에겐 의미가 있었다. 공부를 하며 나는 그동안 같은 것을 보며 같은 생각을 하고,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지내며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는 것을 겨우 깨 달았다.
익숙한 틀이 만들어진 세상에서 익숙하게 살아온 나에게 유독 대학이란 공간은 더욱 심했다.
나의 친구들, 나의 학교, 나의 자취방, 나의 세상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철학은 내게 가만히 앉아서 더 많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철학에 빠졌다. 그러나 나를 본 주위 사람들은 또다시 말했다.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하고 현실을 봐 야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데?”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또다시 같은 말을 들었다.
대학 졸업 후, 취업한 회사의 사장은 “생산적인 일을 하라.”라고 종종 말했다.
내가 “생산적인 일이 뭐예요?”라고 물으니, 사장은 “단순노동, 반복 작업, 서비스업 같은 거 말고 있잖아. 사람이 발전을 해야 지.”라고 말했다.
이어서 무언가 끊임없이 개발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는 일이 생산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내게 기술을 배울 것을 강요했다. 나는 거절했고, 사장은 말했다. “이런 기회를 놓친다고? 후회할 텐데. 네 인생을 걱정돼서 그런 거야.” 한순간에 내 인생은 의미 없는 것이 되었다.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면 사장은 아마 이렇게 말했겠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생산적이지 않잖아!”
‘정말 내가 쓸데없는 짓을 하는 걸까?’ 한 때는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한 강의를 듣게 되었다. ‘일상 아카이브’에 관한 강의였고, 4주 동안 매주 다른 아카이빙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강의였다.
첫째 주에는 사람들의 상처를 담는 아카이빙을 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상처 받은 순간을 단어와, 문장으로 만들어 서로의 글을 공유하는 아카이빙이었다.
둘째 주 강의에서는 지역 모습을 사진으로 담는 사진 아카이빙을 하고 있다는 사람을 만났다. 특정 지역을 정하고 주제를 정해서 사진을 찍는 아카이빙이었다. 예를 들어, 가정집이 주제라면 그 지역의 모든 가정집을 사진으로 찍는 것이었다. 혹은 떡집이 주제라면, 그 동네에 열려 있는 떡집을 모두 사진으로 담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찍은 사진과 해 온 전시,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또 어떤 사람은 낙엽을 모으는 아카이빙을 하고 있다고 했고, 실연을 상징하는 소품을 모으는 아카이빙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여자 강사가 말했다.
“제가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는 말이에요. 말이 좋아 아카이브이지 그냥 오타쿠들이죠. 근데, 그거 아세요? 덕질이 세상을 구원하는 거.”
그녀는 웃으며 재치 있게 말했지만, 그 말이 꽤나 진지하게 들렸다. 남 얘기 같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의미 없는 일도 나에겐 의미 있는 일이 될 수 있고, 누군가는 생각 없이 지나치는 순간이 누구에겐 인생의 중요한 순간이 될 수도 있다.
문득 보이는 것들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그냥 지나쳐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의 아카이브를 참 의미 없다며 쉽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에겐 세상을 구원할 만큼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녀의 짧은 말에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 마음이 느껴졌다.
더 이상 내 행동이 의미가 있는지 혹은 없는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미’에 나를 맞추니 내 인생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 그만 생각하기로 했다.
어쨌든 의미를 결정하는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