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내가 보내는 답장
안녕하세요. 조금 더 깊어진 겨울바람에 옷장 깊숙이 들어있던 두꺼운 옷들을 꺼냈어요. 본격적인 겨울을 맞이하기 위해 옷장부터 정리했어요. 날씨가 변할 때면 내 일상을 정리하고 새로운 계절을 준비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잖아요. 당신은 추워진 겨울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8살, 11살 남매의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당신. 그동안 애 많이 쓰셨어요. 아픈 아이의 간호를 위해 여러 번 밤을 새우고, 더운 여름에 가스 불 앞에서 땀 흘리며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고, 아이 때문에 처음 본 사람에게 사과하는 일 또한 익숙해지셨겠죠.
그렇게 키우다 보니 어느덧 아이들이 커서 조금씩 손을 놓기 시작하면서 시작하면서 비로소 '나'라는 사람이 보이기 시작하죠.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내 이름으로 불리는 곳에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게 되고요. 20년 전이라면 뭐든 해보면서 고민했을 텐데, 지금은 아이들과 집안일에 묶여 그마저도 쉽지 않고요.
당신의 편지를 읽고 생각했어요. 혹시 이거 5년 전의 내가 쓴 편지 아닌가?
저도 큰 아이를 임신하고 육아를 선택하면서 회사를 그만뒀거든요. 그땐 그게 최선이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았지만 저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을 보면서 부러웠어요. 내 선택이 정말 정답이었을 까? 하는 그런 생각도 해본답니다. 당신은 어떠세요? 옆에 있다면 이런저런 얘기로 수다를 떨었을 텐데 멀리 떨어진 지금이 아쉽네요.
5년 전 다시 일을 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이력서를 썼어요. 그런데 제가 지원할 수 있는 회사가 거의 없더라고요.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어요. 그렇게 지원한 곳이 전화로 보험상품을 판매하는 콜센터였어요.
첫 달은 정말 힘들었어요. 고객이 전화를 받으면 그때부터 심장이 빨리 뛰었고 거절당할 때마다 가슴에 못이 박히는 것 같았어요. 회사 작은 책상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 날이 여러 번 있었죠. 그런데 한 달, 두 달 버티다 보니 조금씩 익숙해지더라고요. 못 할 줄 알았는데 하고 있었어요. 그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은 꽤 만족하는 다른 일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때의 경력이 없었으면 못 했을 거예요.
그래서 드리고 싶은 말은 이거예요. 혹시 마음속에 망설이고 있는 일이 있다면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보세요. 첫걸음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라요.
당신의 편지를 읽고 어떤 말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책의 한 구절을 빌려왔어요.
김미경 <마흔 수업>에 나오는 구절이에요.
"지금 후회되는 것이 있어도 40대에 10년 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써 내려가면 된다. 반전이 있는 감동 스토리로 인생을 다시 쓰기에 마흔은 전혀 늦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40대는 늦지 않았다고 하니깐 우리 그 말을 믿어 보기로 해요.
"제 자신을 찾을 수 있을 까요?
당신의 편지 마지막에 이런 질문을 적어주셨어요. 많은 인생 질문에는 답이 없다고 하지만, 이 질문에는 답이 있어요.
"당연히", "그럼요", "물론이죠"입니다.
지금 까지 아이들에게 쏟았던 에너지를 당신한테 조금만 나눠줘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그리고 보내주신 편지에서 당신의 긍정 기운이 많이 묻어있었어요.
더 추워진 날씨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겠죠. 새로운 시작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다만 한 가지만 기억해 주세요.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시작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니까요.
2025년 겨울. 당신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