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사랑을 하고 있는 당신에게
안녕하세요. 출근하는 아침 차가운 바람에 코끝이 시려옵니다. 어느새 겨울이 깊어졌네요. 추운 날씨지만 맑은 하늘을 보면 마음만은 청명해지는 것 같아요. 사랑을 하고 계신 당신은 어떤 겨울을 보내고 있는 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 분 '참 차분하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편지 속 가지런하고 단정한 글씨를 보며 어지러운 제 마음이 정돈되는 것 같았어요. 당신의 글씨 덕분에 한껏 가지런해진 마음으로 답장을 씁니다. 당신의 글씨뿐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위로해 주는 방식을 읽어 나가며 당신의 단단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당신은 힘들 때 '이렇게 해봐. 힘내. 괜찮아질 거야.'와 같은 말뿐인 위로가 아닌 비가 올 때 같이 비를 맞으며 온몸으로 위로하시는 분 같아요.
이렇게 좋은 분이 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봤어요. 편지를 읽다 보니 자신보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사랑을 하고 계신 거라 느껴져요. 지금 당신이 하신 고민이 내 연인의 마음과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온 거잖아요. 여러 선택이 아닌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 정말 어려운 고민이라 생각 돼요.
남자친구의 사정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일에 대해 남자친구와 얘기를 많이 나누고 고민했을 것 같아요. 부모님께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섭섭할 것 같다는 편지에 남자친구는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당신의 남자친구를 생각하며 책 속 이 문장이 떠올랐어요.
"뜻하지 않은 불행이 찾아오고, 이를 견뎌내는 와중에 깊고 넓은 인간성이 완성되기도 한다." -약간의 거리를 둔다 중에서-
남자친구가 겪고 있는 아픔이 어떤 건지 저는 가늠조차 못 합니다. 저도 한때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싶었던 때를 기억해 봤어요. 눈 뜨고 싶지 않은 아침과 어두운 방에서 혼자 울었던 시간을 생각하며 당신의 남자친구분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었겠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전 당신의 남자친구가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청년이 아닌 힘든 자기를 돌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의젓한 어른으로 보여요. 분명 저보다 나이는 어릴 텐데 배울 점이 많은 사람으로 느껴집니다. 아마 그런 부분이 당신도 반하신 부분이겠죠?
부모님께 말씀드린다, 드리지 않는다. 둘 중 선택은 당신의 몫이겠죠.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건 당신이지만 남자친구와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많이 얘기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결정하시겠죠. 둘의 결정이 말씀드리지 않는 거라면, 전 그래도 된다고 생각해요. 굳이 모든 걸 말씀드릴 필요는 없으니까요. 숨기는 거랑은 좀 다른 의미예요. 제가 알고 있는 단어로는 다 표현이 안 돼서 속상하네요.
만약 말씀드리기로 결정하셨다면 남자친구가 힘든 시간을 이겨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지금은 얼마나 건강해졌는지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엄마 입장에서 제 딸이 그런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고 하면 저는 두 팔 벌려 환영할 것 같거든요.
부모님과 남자친구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으시겠지만 당신이 어떤 선택을 하든 잘 헤쳐나가실 거라고 믿어요. 편지를 읽으며 그런 힘이 느껴졌거든요. 이 겨울, 제 응원이 당신에게 작은 온기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