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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림가희 Jul 27. 2022

뚝딱이의 셀프 웨딩 촬영기

우리는 사진을 좋아하지만, 본격으로 찍히는 상황에서 뚝딱거리는 편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보다 삼각대를 선호해서 찍는 이와 찍히는 이가 같은 셀프 웨딩 촬영을 도전했다. 사계절에 걸쳐 나눠 찍고,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를 두고자 계획했다. 다행인지 중급기 DSLR 한 대와 포토샵 기초로 인물 보정 정도쯤은 할 수 있었고, 여차하면 아이폰까지 사용할 생각이었다.


고등학교 하복이 마음에 들었지만, 첫 만남이 더 소중해서 중학교 동복을 구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당근에 접속한 끝에 졸업생 교복을 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미등교하는 날이 많았던 터에 몇 번 입지 않아 새것에 준한 상태로. 새삼 코로나가 일상의 많은 걸 바꿨음을 실감했다. 아무래도 교복 매장에서 입어 보고 산 게 아니라 몸에 딱 맞진 않았는데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엔 치마를 줄이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서른이 되니 있는 그대로가 예쁘게 보였기 때문이다.


독산동에 있던 중학교는 시흥동으로 이사하고, 남아 있는 건물과 터는 평생교육시설로 바뀌었다.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으니 촬영하기 좋은 조건이었다. 방학이 따로 없는 회사원은 연차를 아껴 써야 한다. 결혼 관련해서 자주 쓰게 될 거 같아 첫 촬영은 선거일로 정했는데 모두의학교가 투표소로 지정됐다. 덩달아 코로나 속에 열린 선거라 늦은 저녁엔 확진자가 방문한다고 하니 결국 추억의 장소는 뒤로한 채 집 근처 중학교를 찾아갔다.


창문 빛만 비추는 아주 깜깜한 밤에 찍은 사진인데 밝게 나왔다.

쉽지 않을 거라 각오는 했는데 상상 이상이었다. 일단 DSLR은 원격으로 감도나 초점 잡는 게 무척 힘들었다. 촬영해주는 사람 없이 온전한 셀프는 아이폰이 나앗겠다 싶다. 이동하기 쉽고, 야간에도 밝게 나오니까. 물론 커다란 액자를 제작하는 건 해상도 문제로 어려울 수 있겠지만, 청접장이나 앨범을 만드는 건 문제 없다. 아무튼 몇 장 담지 못했는데 시간은 가고, 금세 어두워졌다. 후보정에서 노이즈를 얹어 야간 촬영을 고집한 느낌을 내 보기로 했다.


산책 아니고 촬영이라 어리둥절한 몽실이 덕에 웃었다.

얼떨결에 끌려 나온 꼬찔꼬질 몽실이. 우리 둘의 웃음 벨이었다. 비록 질 높은 사진은 못 건졌지만, 추억 하나 새겼다. 재차 결혼식 생략을 논의하면서 스튜디오를 계약했다. 드레스는 웨딩 촬영 때 실컷 입어 보는 거로. 교복도 챙겨갈 거다. 사진작가의 선명한 사진을 받고 싶다.


'B급 감성은 저희가 맡을 테니 작가님께선 뚝딱이 두 명을 살펴 주시고, A급으로 완성해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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