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2020

구구절절한 하소연이 되지 않길

by Limni

한 작가의 에세이를 집어 들었다.

무엇이든 ‘우연함’을 매개로 내게 다가왔을 때,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을 때가 있다.

이 책도 그러했다.

이제는 너무 멀리 지나친 과거가 되었지만

‘방송작가’였다는 공통분모가 있는 작가의

아주 따끈한 글들이었다.


책을 만난 곳은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다.

예나 지금이나 난 도서관과는 별 인연이 없었는데

지금 내가 하는 일은 도서관을 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

나의 직업은 어린 초등생들의 ‘올바른 독서 함양’을 위해 수많은 어린이 책을 탐독해야 하는 독서논술 선생님이다. 매달 한 테마를 선정하여 3권의 책을 선정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학습지를 만들어 아이들과 아웅다웅하고 있다.

2주일에 한 번 도서관을 찾는 나는 서너 시간씩 아동열람실에서 책들과 면접을 하는데, 굉장한 집중력이 뒷받침 될 때는 반나절 이상을 있기도 한다.

(때론 침을 흘리며 엎어져 자는 날도 있다)

이 일을 3년째 하고 있다 보니..

이제야 나는 진짜 ‘독서논술 선생님’이 되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난 이 일을 ‘세컨드 잡’이라

여겼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프리랜서 작가’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알량한 자존심이었을지도 모른다.

‘난 아직 작가다.. 작가다...(인정받지 못한) 작가다..’


사실 꾸준히 ‘작가 노릇’은 해왔을 터다.

껀by껀으로 1년에 20개 이상의 홍보 영상물을 구성했고, 웹 광고, 웹드라마.. 여기저기 조금씩 손을 대고 있었으니 ‘작가’이긴 했다.

굵직한 한 방이 없었을 뿐,

기회가 여의치 않았다고 핑계 댈 뿐...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main 일(글 쓰는 것)과

sub 일(논술 선생님)은 전복되었다.

그야말로 전복사고(顚覆事故).

둘의 충돌로 내 머릿속의 사고(思考)도 사고(事故)가 났다.


밥벌이 수단으로 쓰던 글쓰기는 점점 줄어들고

급기야 코로나를 만나며 올해는 강제 절필의 시대를 맞이했다. 빙하기를 맞닥뜨린 공룡도 나처럼 한없이 무너졌겠지.

이때, 한줄기의 빛은 ‘세컨드 잡’이었다.


나를 위해 글 쓰는 시간은 한없이 줄어들었고

밥벌이가 되어주던 하루살이 작가 인생도 줄어들었다. ‘작가’라는 말이 점점 어색해지게 되면서,

나는 ‘선생님’이라는 단어에 정을 붙이게 되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30대가 저물어가고 있다.

이미 저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이렇게 쓰면서도 가슴 한 편으로는 수없이 부정하고, 마인드 컨트롤하려는 내 우뇌를 마주한다.


저물었다는 말의 이중성에 다시

알량한 내 자존심이 고개를 들려고 한다.


이제는 인정을 해야 할 때라고,

새로운 준비가 필요하다고

내 좌뇌가 흘리는 신호가 나의 뺨을 할퀴고 가는

12월의 3번째 밤이다.


글의 서두에 쓴 그 작가의 책을 다 읽고 난 후

2시간이 흘렀다.


난 다시 브런치 앱을 깔았다.


단 두 편의 글이 방치된 채, 외롭게 굴러다니는

이 서재에서..

또 한 번의 용기를 내 본다.


나를 위한 치유의 글을 쓰자고.


아이들의 선생님으로 살면서,

미혼으로서 다가오는 마흔을 맞이하며,

아무것도 이루지 못함에 목메지 말고,

천천히 받아들이며,

익숙한 것들과의 새로움을 맞이해보자고.


아직 28일 남은 이 한해를

그렇게 보내주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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