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이와 안목 해변을 걸으며
서울역의 8번, 9번 탑승플랫폼 사이에는 여행객들이 앉아서 쉴 수 있는 계단이 있다. 빈틈없이 외국인 여행객들로 뺵빽하지만 그속에서 이영이를 단숨에 찾아냈다.
이영이는 8년전 짧은 중국 어학연수 중에 만난 친구로, 작년까지 상해에서 일하며 지내다가 지금은 도쿄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잡았다. 이영이는 작년 여름 퇴사를 하고 한국을 방문해주었고, 올해는 내가 일본을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많은 돈을 병원비에 쓰게 되면서 당장은 일본에 가기 어려워졌다. 올해는 못 보는 건가 싶었는데 올 4월, 이영이로부터 한국 여행을 준비 중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일본에 수화물 없이 저렴하게 한국에 갈 수 있는 비행기표 특가가 떠서 이번에 한번 한국에 가야할 것 같더라고."
서울역에서 상봉한 우리가 향한 곳은 강원도 강릉이었다. 평일 오후 강릉으로 가는 열차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넓직하고 깨끗한 강원도행 고속열차였기에 새벽 4시 반에 기상한 이영이가 편히 쉴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가 잡은 숙소는 안목해변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커피거리에 있었다. 전날까지 강릉의 일기예보는 '맑음'이었다. 태양빛에 비치는 반짝거리는 안목해변을 볼 수 있을거라 기대했지만, 하늘은 하얗고 바다는 안개로 가득해서 뿌옇기만 했다. 그래도 우린 마냥 신났고, 바다 위엔 윤슬이 없었지만 반짝거리는 추억과 근황을 바쁘게 나눌 수 있었다.
나는 안목해변에 즐비한 카페 거리를 걸으며 최근 마음 속에 응어리진 주제를 꺼냈다.
"아무래도 난 동년배들과 안 맞는 거 같아. 내가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서른이 넘어서도 독립하지 않고, 부모가 해준 밥을 먹으며 생활비를 내지 않는 친구들 이야기를 했다. 남이사 어떻게 살든 뭔 상관이냐겠지만 매년 노화의 두려움과 결혼 압박을 느끼면서, 생활에 있어서는 여전히 부모에게 의지하고 홀로 서지 않는 것이 내 세계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린 어려서부터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어가지고 이해가 안 되나봐."
우린 '서른이 넘으면 이렇게 살아야한다'는 명확한 답을 내리진 않았다. 나처럼 어려서부터 독립적인 이영이와의 공감대 이루자 마음 속 한구석에 뭉개져 있던 질문들이 사라졌다. 내가 원했던 것은 명확한 답보단 공감이었으리라.
이영이와 만난 강릉의 풍경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2030 여행객들보단 중년 여행객이 많았고, 주말관광객이 빠지고 비어있는 자리에는 강릉을 지키고 있는 현지인들이 보였다. 대부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우린 밥 먹기 위해 식당에 줄을 서거나 예약을 할 필요가 없다며 좋아했다. 경포호에서 피부가 벌겋게 타도록 자전거를 타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 발길이 닿는 대로 식당으로 향했다. 우린 할머니 사장님이 혼자 지키고 있는 횟집에 들어갔다.
"언니. 난 요즘도 리에 씨를 한 달에 한번 씩은 꼭 만나고 있어."
리에 씨는 중국 어학연수 시절 매일 내 뒷자리에 앉아서 수업을 들으며 나를 아낌없이 챙겨준 일본인 아주머니다. 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한 이영이와 언어교환 친구이기도 하다. 이영이가 도쿄에 보금자리를 잡았을 때쯤 리에 씨도 남편과 함께 약 10년 간의 중국생활을 마치고 일본으로 귀국했고, 도쿄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외지생활이 외로웠을 이영이에게 대학시절의 친구가 함께 이사를 온 셈이다. 리에 씨의 존재 덕에 나는 안심을 했다.
"리에 씨가 이제 50대가 되었거든. 중국에서 10년을 거주하고 나니까 일본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힘들어하시더라고. 지금은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계셔."
현지인 할머니 사장님이 만들어준 물회를 먹으며, 이젠 40대에서 50대가 되어버린 리에 씨의 근황을 나눴다. 이미 초고령화가 되어버린 일본의 풍경과 늙어가는 나의 고장에 대해서도 말이다.
도쿄 생활을 한 지 만 1년이 되어가는 이영이에게 가장 궁금한 건 '새로운 친구'였다. 이영이는 피아노 선생님이나 일본인 동료들 외에는 아직까진 일본인 '친구'를 사귀지는 못 했다. 어느 날은 일본-중국 문화 교류회 자리에 새로운 친구를 사귈 기대감으로 참여했는데, 막상 가보니 중국어와 중국 문화를 공부하는 나이 지긋한 일본인 어르신들뿐이었다고 했다. 웃기고 슬픈 현실을 살아가는 이영이에게 친구 노릇, 언니 노릇을 하고 싶지만 서로 머나먼 타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했다.
이영이는 5월의 마지막 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영이가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우린 이태원의 한 비건식당에서 밥을 먹고 남산공원을 걸었다. 우리의 이야기에 가장 많이 등장한 사람들은 '떠나보낸 사람들'이었다. 독립을 하면서 가족과 거리를 두고 사는 나날들, 영문을 모른 채 손절을 당했던 경험, 몇 해전 이미 떠나보낸 인연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찾았던 일들 등... 새로운 관계는 잘 사귀어지지 않고, 재고 따지며 까탈스러워진 우리들을 보면서 여지 없이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모나고 깐깐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지만 서로 반짝거리는 눈으로 새 친구를 사귀고 싶어하던 시절에 만난 인연이 아직 내 곁에 남아있는 건 귀한 일이다. 또래 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못난 어른이 되어가며 스스로 고립과 고독을 자초하는 내 모습을 보았을 땐 이영이와의 관계 유지는 기적에 가깝다.
지난 해 한국을 놀러온 푸카를 보낼 때, 영영이를 보낼 때 '또 보자!', '내년엔 내가 꼭 일본(중국)에 갈게.' 같은 비장한 다짐을 남겼다. 이번에도 이영이를 일본으로 보내며 비슷한 말을 남겼지만, 그 말을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시간은 반짝이던 눈으로 타인에게 먼저 마음을 내밀던 나의 옛 모습과 내 관계들을 파도처럼 순식간에 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영이와의 관계도 시간이 언제가는 휩쓸어 가겠지만 나는 이 시간들이 조금 더 오래, 지속되길 소망해본다. 그땐 이영이와 떠나보낸 인연보단 새롭게 맺은 인연들에 대해, 나이들며 얻게 된 어떤 초능력들에 대해,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은 너그러워진 내 모습에 대해 나누고 싶다. 안목해변에서 경포해변에 이를 때까지, 끊임 없이 얘기하다가 우리가 어느 해변을 걷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할 만큼 오래오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