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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무 Jul 30. 2023

프렌치 호른의 기억

어린 날의 내가 만든 반짝임을 찾아서

미국드라마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 시즌9 마지막 회 장면 중


미국드라마 <내가 그녀를 만났을 때(How I Met Your Mother)> 시즌1의 1화에서 테드는 로빈에게 첫눈에 반한다. 테드와 로빈이 첫 데이트를 하던 날, 로빈은 레스토랑 식당 벽에 걸려 있는 프렌치 호른을 보며 "근사한 블루 프렌치 호른이군요." 라며 감탄한다. 테드는 로빈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식당에 걸려 있는 프렌치 호른을 훔친 후 로빈의 집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시즌9의 마지막 회에서 테드는 다시 로빈을 찾아간다. 블루 프렌치 호른을 든 채로 로빈의 아파트 밑에서 처음 만난 순간처럼 인사를 한다. 그땐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친구였다가, 연인이었다가, 룸메이트였다가, 가장 친한 친구에게 로빈을 빼앗겼을 때의 기간 조차까지 로빈을 그 자체로 늘 사랑하고 있었던 테드. 테드에게 있어서 프렌치 호른은 로빈을 위해 어떤 미친 짓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녀를 향한 영원한 사랑을 상징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고 매일이 불안했던 올봄의 어느 날, 나는 오래전 유튜브 재생 목록에 저장한 클래식 두 곡을 들었다. 호른 연주곡인 The Lonedon Horn Sound의 <Titanic Fantasy>와 윈드 오케스트라 연주곡인 Jacob de haan의 <Ross roy>였다. 눈을 감고 웅장한 관악기의 선율을 따라 혼란과 방황을 벗어났다. 그 선율 속에 있을 때 나는 아득히 먼 곳에서 지금껏 미처 발견하지 못한 희미한 빛들을 보았는데, 사운드가 웅장하고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 빛들은 밝게 빛나다 못해 계속 반짝거렸다. 그 반짝임의 정체를 찾기 위해 내 기억은 2007년의 교악대실에 이르렀다.  


"쪼끄만 친구, 혜림이 어딨니?"  

"선생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야 혜림아. 여전히 작구나. 선생님이 되게 보고 싶었어. 잘 지냈어?"

열네 살의 나는 중학교 윈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며 호른을 연주했었다. 당시 몇몇 친구들은 예고 진학을 위해 전공 악기를 정하여 연습했고, 일주일에 한 번 악기 전공 선생님들에게 레슨을 받았다. 그저 취미로만 배우던 나는 한 달에 한번 호른 선생님이 학교에 찾아오실 때만 레슨을 받을 수 있었다. 큰 키의 호른 선생님은 아내분도 같은 호르니스트였는데 종종 학교에 찾아와 레슨을 해주셨다. 처음 윈드 오케스트라에 들어왔을 땐 쨍쨍하고 명랑한 음색으로 곡의 주요 멜로디를 연주하는 트럼펫을 불고 싶었다. 너는 입술이 얇으니 마우스피스가 작은 호른을 연주하라는 교악대 선생님 말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악기를 바꾸게 되었다. 그땐 내가 이 악기의 소리를 오랫동안 사랑하게 될 줄은 몰랐다.


"달팽이처럼 생긴 이 호른의 관을 쭉 피면 길이가 얼마나 될 거 같아?"

"음.... 4미터?"

"비슷했어. 4미터에서 6미터 정도 되지! 그럼 다음 문제. 현악기 중에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가 있어. 그중 호른과 비슷한 음역대를 연주하는 악기는 뭘까?"

"음.. 첼로?"

"맞았어! 혜림이는 되게 잘 알고 있구나!"

"선생님, 저 사실 초등학교 때 첼로 배웠어요! 근데 첼로가 너무 크고 무거웠어요. 마치 저만했다니깐요!"


어느 날은 선생님이 나에게 호른 연주곡이 담긴 CD 한 장을 건넸다.

"집에 가서 꼭 한번 들어보렴."

그 CD에는 호른 앙상블의 대여섯 곡이 담겨 있었는데, 당시 내가 아는 곡이라곤 마지막 트랙의 타이타닉 주제곡뿐이었다. 레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낡은 데스크톱에 CD를 넣은 뒤 계속해서 호른 앙상블을 들었다. 나는 교악대 활동을 하던 내내 호른을 전공으로 매주 레슨을 받고, 앙코르에 나가던 친구들과 선배들을 부러워했다. 언제는 학교에서 교직원, 학부모만 초대하여 작은 공연을 열었는데, 예고 진학을 준비 중인 선배들이 무대 위에서 각자의 전공 악기를 연주했다. 어떨까, 내가 저 무대에서 CD의 마지막 트랙에 있던 타이타닉 주제곡을 연주한다면. 앞으로 호른을 2년 정도 더 배운다면 더 넓은 음역대를, 고음을 불어낼 수 있겠지? 무대 위에서 호른을 연주하는 선배들을 바라보며 어린 호르니스트가 된 나를 상상했다.


열네 살의 나는 달팽이 모양의 호른을 자유자재로 연주해 내는 미래의 나 자신을 상상하며 교악대 활동을 했다. 시 대회, 여름 합숙, 제주도 공연, 거제도에서 진행된 전국 대회에 나갔고, 각종 학교행사와 조회시간엔 애국가와 행진곡을 연주했다. 다른 악기를 연주하는 친구들, 선배들과 호흡을 맞추고, 지도 선생님에게 단체로 혼나기도 하며 합주의 경험을 쌓아갔다. 당시의 경험이 내 몸에 남긴 흔적이 있는데 바로 관악기들의 소리를 구분하는 능력이다. 그 해 내내 질리도록 들었던 소리들이 아직도 귀에 익어 소리만으로 악기를 구분하곤 한다.

"혜림아. 넌 악기 전공 해볼 생각 없니? 악보 잘 읽던데. 부모님이랑 얘기해봤니?"

"가족들이 저 음악 하는 거 싫어해서요. 나중에 취직하고 돈 벌면 악기 배우래요."

대회를 준비하고, 지방으로 공연과 대회를 다니면서 집에 있는 시간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집안 어른들은 나를 걱정하고 심지어 통제하기 시작했다. 음악에 대한 흥미가 커질수록 가족들의 근심걱정은 쌓여만 갔다. 큰 행사가 끝나고 늦은 시간 집에 돌아오면 언제까지 할 거냐고. 교악대라는 곳에 물 안 좋은 선배들이 많아 보인다고. 음악 하는 데 왜 이렇게 돈이 드냐고. 악기는 나중에 커서 배울 수 있는 거 아니냐고. 1년 활동을 끝으로 나는 교악대를 그만두었다.


어른이 되어 취직을 하고 나니 나중에 돈 벌어서 악기를 배우라는 말은 더 이상 기억나지 않았다.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었고, 음악이 아닌 다른 걸 배우고 싶거나 눈 앞에 있는 일들을 해내느라 바빴다. '지금은 됐으니 나중에 커서 해'라는 말이 어린 날의 나에게 얼마나 무용하고 무색했는지만 깨닫게 되었을 뿐이다.


4년 전 어느 날이었다. 그저 그런 직장생활, 시시한 어른이 되어 평범하기 그지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길을 걷다가 호른 콘체르토 연주를 한다는 음악당 플랜카드와 마주쳤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집에 가서 연주회 티켓을 예매했다. 연주회 당일엔 큰 태풍이 불어 집 앞의 나무가 부러질 정도로 날씨가 짓궂었다. 매서운 태풍을 뚫고 꿋꿋하게 음악당으로 가서 공연을 봤다. 2층 관객석에서 내려다본 오케스트라 연주와 호른 콘체르토. 그날의 남성 호르니스트는 어릴 적 호른 선생님처럼 키가 크고 체격이 있으신 분이었다. 나팔 모양의 관을 찢으며 나오는 소리와 고음을 더욱 효과적으로 뿜어내기 위해 악기를 위로 들어 올려 불어내던 동작까지. 지난날 내가 무거운 악기를 들고 다니며 어설프게나마 금관을 불어대고, 악기에 고인 침을 빼내느라 고생하고, 더 잘하고 싶어 옆에 있는 선배에게 계속 말을 걸고, 그 악기를 너무나 사랑하고자 했던 열망이 떠올랐다.


지금의 나에겐 무언가를 배우고 경험하는 데 있어서 1년이라는 시간은 부족하다. 그러나 열네 살의 나에겐 1년 동안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고 대회까지 나갔다는 경험은 굵직하고 알찬 시간이었다. 그 시기에 만든 경험은 강렬하다 못해 여전히 나의 귀에, 내 의식에, 가슴속에 진한 흔적을 남겼다.


어른이 되어갈수록 단조로운 하루를 견디기 어려워지고, 종종 허무함을 느낀다. '계속 이렇게 사는 게 맞아?'라는 의심이 들 때, 내 마음속에 의문부호가 끊이질 않을 때, 어두워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희미한 반짝임을 따라가고 싶은 순간이 있다. 그 반짝임은 지난날 무대 위에서 내가 불었던 호른이 무대조명을 던 모습 같다. 지금 내 삶 속에 더 이상 두근거림이 없을 때, 심장이 더 이상 뛰지 않을 것만 같을 때, 길고 긴 관을 찢으며 나오는 프렌치 호른의 선율을 듣는다. 테드에게 있어서 프렌치 호른은 로빈을 향한 영원한 사랑이었다면, 나에게 있어서 프렌치 호른은 반짝임의 기억이다. 그 누구도 부추기지 않았고, 심지어 가족들은 말렸음에도 오케스트라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네 살의 내가 처음으로 내린 주도적인 선택이었다. 나의 반짝거림을 발견해 준 호른 선생님에 대한 따스한 기억은 여전히 남아 오늘의 내가 답을 찾지 못해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방향키가 되어준다. 선율을 가진 반짝임이 나에게 이렇게 속삭이고 있다.

열네 살의 그때처럼 넌 여전히 반짝이고 있고 꽤 괜찮은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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