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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Sep 11. 2020

태명 짓기, 태몽 찾기

아기의 존재에 의미 붙이기


[태명 짓기]


    태명은 참 중요하다. 열 달 동안 아가와 대화를 나눌 때에도 꼭 필요하고,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우리 아가를 칭할 때에도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김춘수 시인의 시 "꽃" 내용이 태명의 의미와 아주 잘 어울린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줬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그냥 '아가야'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을 붙여 불러주면 아가에게 더 애정이 생기고, 보이지 않는 배 속의 존재가 더욱 생명력 넘치는 소중한 존재로 느껴진다. 태명으로 인해 배 속의 생명체가 비로소 "우리의 사랑스러운 아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 대부분의 엄마, 아빠가 아가의 이름 못지않게 태명 또한 심사숙고해서 고를 것이다. 보통 태명은 아기와 관련된 염원이나 스토리를 담아 붙인다. 또한 배 속에 태아가 된소리를 더 잘 듣는다는 이야기가 있어 발음이 강한 것이 많다. 실제로 임신 20주 차쯤부터는 태아의 귀가 발달해 엄마, 아빠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우리 조카는 태어나자마자 응애응애 목청껏 울다가 형부(조카에겐 아빠)가 "우리야"라고 태명을 불러줬더바로 울음을 뚝 그쳤다고 한다. 뱃속에서 계속 들었던 자기 이름이라 반가워서 아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것이리라. 아아 상상만 해도 너무나 사랑스럽다. 내가 형부였으면 그 자리에서 갓 태어난 아가 볼에 마구마구 뽀뽀를 해줬을 것 같다. (앗 신생아한테 그러면 안되나?) 어쨌든 그 이야기를 듣고 신기해서 요즘은 나도 아가에게 태명을 더 많이 불러주려고 노력한다.


    태명 때문에 고민하는 이들을 위해 내가 주변에서 들은 가지를 태명 추천 차 나열해본다.

[건강을 염원하는 태명] 열 달 동안 무럭무럭 자라고 잘 매달려 있으라는 뜻의 열무, 열매, 건강하게 잘 자라라고 튼튼이, 쑥쑥이, 엄마 뱃속에 딱 붙어 있으라고 찰떡이, 딱풀이,

[아가가 주는 느낌을 담은 태명] 아가의 심장소리를 따라 쿵쿵이, 초음파에서 아가가 움직이는 모습을 따라 꿈틀이, 꼬물이, 까꿍이,

[아가가 만들어진 스토리를 담은 태명] 아가가 봄에 찾아와뽐이, 새봄이, 아가의 태몽을 따라 똘멩이, 꿀복이 등등.

이밖에도 복덩이, 축복이, 말랑이, 꿀빵이, 또복이, 뽀뽀, 심쿵이, 똑똑이, 빼꼼이, 띵똥이, 꿀벌이... 다들 작명가 못지않게 멋진 태명들을 잘 짓는다. 사실 태명이 무엇인들 어떠하랴. 엄마, 아빠의 애정이 담긴 태명이라면 어떤 태명이라도 그 자체로 충분히 예쁘다.


    나는 임신 사실을 알기 전부터 아기의 태명을 지어놓았었다. 아이를 갖기도 전에 태명을 미리 지어놓는 일이 흔하지는 않지만, 나와 신랑은 임신을 계획할 때부터 마음속에 그려놓은 아가를 향한 소망이 있었다. 그 소망에 따라 지은 태명이 바로 "행복이"이다. 임신 전 우리 가족에게는 힘든 일이 있었는데, 이제 아가가 우리에게 행복만을 가져다 줄 거라는 의미로 지은 태명이다. 존재만으로 엄마, 아빠에게 행복을 주는 아가. 이런 의미를 갖고 있으니,

"행복아"

라고 아가를 부를 때마다 아가에게 참 고맙다. 그리고 아가에게 늘 행복한 일만 가득하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행복이라는 이름이 태명으로 나름 인기 있는 이름이었다. 맘카페에서 아가를 행복이라고 부르는 엄마들을 종종 만나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왠지 모르게 반갑다. 아가를 향한 가치관이 통한 것만 같아서 이 세상에 모든 행복이 엄마들과 하이파이브 하고 싶은 기분이랄까.


[태몽 찾기]


    임신 초기에 태명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로 태몽이다. 지식백과를 살펴보면, 태몽은 "잉태에 한 여러 가지 조짐을 알려준다는 꿈"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사실 태몽이 없는 사람도 많긴 하다. 그러나 없으면 참 아쉽다. 나는 태몽이 없다. 그래서 어릴 때는 많이 속상했다. 왜 남들 다 있는 태몽이 나만 없을까. 태몽이 없다는 건 우리 엄마도 안타까워했지만 꿈은 꾸고 싶은 대로 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뭐.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 단락의 제목을 "태몽 꾸기"가 아닌 "태몽 찾기"로 정했다. 꿈은 맘대로 꿀 수 없지만, 잘 기억할 수는 있다. 모든 사람은 매일 밤 꿈을 꾼다고 한다. 기억을 못 할 뿐이지. 그렇다면 임신을 계획할 때부터 임신 초기까지 매일 밤 꾸는 꿈 중에 우리 아기의 탄생을 상징하는 꿈 하나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게 정말 예지몽이든, 아니면 그냥 내 잠재의식의 일부이든, 내가 태몽이라 믿으면 태몽이다. 게다가 태몽은 엄마, 아빠뿐 아니라 다른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꿔주는 경우도 많으니 두 눈 부릅뜨고 찾으면 꼭 찾을 수 있을 거다. 태몽은 상징적 표상의 형태가 뚜렷하고, 기분 좋은 느낌을 동반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보통 신비하고 독특한 모습의 동물, 과일, 채소, 물건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 이게 과연 태몽일까 아니면 그냥 개꿈일까 고민하지도 말자. 내가 꾸고 (혹은 듣고) 느낌 좋으면 그게 태몽이지 뭐. 내 아이의 태몽은 내가 찾아서 고르는 거다!


    행복이의 태몽은 우리 시어머님이 꿔주셨다. 어머님이 임신 사실을 알기 전에 꾼 꿈이라며 알려주셨는데, 듣자마자 "태몽 찾았다!"라고 생각했다. 어머님이 집에 들어갔더니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집 안에 가득 물을 채워 놓으셨다고 한다. 왜 물을 이렇게 채워놨지, 생각하고 보니 물 안에 큰 비단잉어가 헤엄을 치고 있었단다. 어머님은 그 잉어를 보고 기분이 좋으셨다고.  태몽 이야기를 듣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너무 좋은 태몽이라 이 꿈을 꿔주신 어머님께 감사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돌아가신 아버님이 우리에게 아가를 보내주신 것만 같아 너무 감격스러웠다. 난 그 이후로 '아가가 잘못되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생각이 막연히 들 때면 이 꿈을 가만히 떠올렸다. 꿈속 아버님과 잉어의 모습을 상상하면,

'아버님이 우리 아가가 건강하게 자라도록 지켜주실 거야.'

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늘나라에 든든한 우리 편이 있는 느낌이랄까. 아버님은 행복이가 세상에 오기 전에 돌아가셨지만 난 확실히 믿는다. 지금도 하늘나라에서 아버님이 당신의 핏줄인 손녀딸을 소중히 잘 지켜주고 계시다는 것을.

비단잉어의 태몽, Unsplash



[아기의 존재에 의미 붙이기]


    태명이든, 태몽이든 사실 아가의 존재에 대한 의미 부여의 행동이다. 우리나라 말고 외국에는 태명과 태몽의 문화가 없다고 한다. 뭐 개인적으로는 태명을 붙이고 태몽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겠지만, 우리나라처럼 하나의 문화와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심지어 미국에는 한국인의 태몽에 대한 인식을 정신의학적으로 분석한 논문도 있다. 서양인들의 눈에는, 어머님께 태몽 이야기를 듣고 감격스러워하는 내 모습이 우습게 보일 수도 있다. 서양인뿐만 아니라 한국인 중에도 태몽이 미신이라고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문화가 좋은 문화라고 생각한다. 어떤 태명을 짓느냐, 어떤 태몽을 꾸었고 그 태몽이 정말 맞았느냐, 이런 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한 아이를 잉태했을 때 그 아이를 위해 부모가 이렇게 다각도로 고민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태명과 태몽 문화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가에 대한 설렘과 호기심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러니 오늘도 아가의 태명을 맘껏 불러보자. 그리고 우리 아가의 태몽이 있다여기저기 자랑해보자. 이 모든 행동이 내가 아가를 그만큼 기다리고 아낀다는 증거가 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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