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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빛 Sep 27. 2020

우리 아가는 딸일까, 아들일까?

성별, 아가에 대한 첫 번째 정보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 제일 많이 들은 소리는 "축하해!" 그다음은 "몸은 괜찮아?" 그리고 아마 그다음 정도가 "성별은?"이다.  생명에 대한 축하와 건강에 대한 우려 다음으로 동메달을 차지할 만큼 태아의 성별은 중요한 걸까? 만히 생각해보면 성별 말고는 딱히 물어볼 것도 없고 적당히 할 말도 없어서 성별에 대한 질문이 그냥 인사치레 역할을 하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출산 전 배 속 아가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이니, 성별에 대한 궁금증은 제3의 인물의 입장에서는 태아에 대한 최대한의 관심 표현일 수 있다. 뭐 이유가 어찌 되었든 태아의 성별은 부모와 가족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주요 관심사가 된다. 아가의 성별로 인해 육아법도 달라지고, 집안 분위기도 달라지니 실제로 꽤 중요한 요소이기도하다. 그러나 임신 14주 차까지는 이 질문에 답을 할 수 없다. 현대 의학으로는 14주 전에 배 속 태아의 성별을 정확히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화는 "딸이었으면 좋겠어, 아들이었으면 좋겠어?"라는 질문과 함께 "마가 선호하는 성별" 주제로 넘어간다.


[아들, 딸의 장점과 단점]


    나는 보통 "딱히 원하는 성별은 없어요."라고 대답하곤 했다. 진심이었다. 아들이든 딸이든 건강하기만 하면 바랄 것이 없다. 그래도 굳이 굳이 꼽으라고 하면 51:49 정도의 비율로 약간은 아들을 원했다. 우리 집이 나랑 언니, 딸만 둘이라서 그런가. 뭔가 집에 건장한 젊은 남자가 있는 게 든든해 보이고 부러웠다. 또 딸은 아들보다 사회에서 제약도 많고 여러 가지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나의 유난스러운 감성을 받아주시느라 30년 넘게 고생하신 걸 알고 있기에, 흔히들 말하는 딸 예민한 감성이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 반대로 아들만 있는 집에서 자란 신랑은 딸을 원했다. 신랑은 꼭 딸바보가 되고 싶다고 했다. 요즘 주변을 보면 딸이 대세이긴 하다. 키울 때 육체적으로 덜 힘들다는 점이 딸의 장점으로 가장 많이 꼽힌다. 아들에 비해 공감을 잘 해주고 애교가 많다는 점도 딸의 매력포인트이다. 우리 아가의 성별을 알기 전 신랑과 아들, 딸의 단점에 대해 종종 이야기 나누었었다. 그럴 때마다 항상 결론은 "어차피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아들이든 딸이든 건강하게만 나와라."였다. 정답이다.


[성별에 대한 직감]


    그런데 임신 직후부터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배 속의 아가가 딸이라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그 어떤 근거도 없이 그냥 진짜 나의 본능적인 느낌이었다. 태명을 불러주며 아가의 모습을 상상해보면 자연스럽게 딸의 모습이 그려졌다. 아가에게 조카를 소개할 때에도 아무런 고민 없이 "행복아 너의 사촌오빠야."라고 말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엄마의 직감은 틀림없다며 임신 초기에는 아기가 딸일 거라고 100% 확신했다. 그러나 출산 경험이 있는 선배님들은 "그냥 네가 딸을 원하니까 그런 거야. 직감 이런 거 다 안 맞아."라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사실 딸을 원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그리고 성별에 대한 확신이 사라질수록 더더욱 궁금증은 커졌다. 조금만 참으면 자연스럽게 알게  성별인데도 임신 초기에는 왜 이렇게 못 참을 정도로 궁금해지는지 모르겠다.


[태아의 성별에 대한 온갖 미신들]


    나와 같은 엄마들을 위해 정말 다양한  성별 예측 방법 존재한다. 나도 그중에서 입덧 증상(임신 중 고기를 좋아하면 아들, 과일을 좋아하면 딸), 난황의 위치(왼쪽이면 아들, 오른쪽이면 딸), 심장 소리(기차소리면 아들, 말발굽 소리면 딸), 피부 변화(피부가 좋아지면 딸, 여드름이 많이 나면 아들), 힘든 시간대(아침에 힘들면 아들, 저녁에 힘들면 딸), 태몽(큰 동물 하나가 나오면 아들, 작은 동물 여럿이 나오면 딸) 등등으로 성별을 예측해보았. 이 결과에 따르면 우리 아기의 성별은 왔다 갔다다.  외에도 나는 시도해보지는 않았지만, 700년 전 중국 황실 무덤에서 발견됐다는 중국 황실 달력 법, 베이킹소다에 소변을 받아 나오는 거품으로 성별을 판별한다는 베이킹소다 법, 미국 엄마들 사이에서 유행이라는 결혼반지를 실로 묶어 돌리면서 예측하는 반지점 등등의 기상천외한 방법들도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하면 그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주변에서 결과를 들어보면 이 중 그 어떤 것도 유의미한 것은 없었다. 이렇게 태아 성별 예측에 대한 미신이 많은 이유는 성별이 아들, 딸 두 가지밖에 없어서가 아닐까? 맞으면 "대박 맞았어!!!"하고 신기해하면서 그 미신이 맞았다고 확신하고, 틀리면 "아 아니었나 보네."하고 잊고 지나가버리니, 50% 엄마들을 현혹시키기엔 충분한 숫자인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성별의 종류가 세 가지만 되었어도 확률이 33%로 낮아지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미신이 생기지는 않았을 거다.


    그나마 과학적인(?) 방법도 있다. 바로 태아의 초음파 사진으로 성별을 판별하는 "각도법"이다. 임신 12주 이상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각도법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각도법에 따르면, 아가가 옆으로 누워있는 초음파 사진에서 아가의 몸통과 성기 부분의 각도가 30도 이상이면 아들, 그 이하면 딸이다. 이 각도법 해석을 위해 맘카페에서 많은 엄마들이 서로 초음파 사진을 공유하고 성별을 예측해준다. 나도 우리 아가의 초음파 동영상을 보면서 혼자서 열심히 분석해봤지만, 영상 속에서 아가가 끊임없이 움직여서 분석을 위한 적절한 순간을 찾아내기 너무 어려웠다. 힘들게 그럴듯한 장면을 캐치해도, 어느 부분과 어느 부분의 각도를 재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아서 여전히 어려웠다. 그렇게 명확한 답을 얻지 못한 채, 궁금증만 잔뜩 안은 채로 시간은 잘 흘렀다.

각도법에 대한 설명, 출처 미상

 


    성별 예측에 이렇게 복잡하고 다양한 미신과 논리들이 난무하는 데 비해, 실제 성별을 판단하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태아가 어느 정도 성장한 시점(보통 14주 이후)에 아가의 다리 사이의 성기 모양을 초음파로 확인하면 된다. 아 이렇게 간단할 수가! 아기의 성장 속도가 늦거나 아기가 초음파 검사 시 협조를 안 해주면 20주나 혹은 더 이후에 성별을 알게 되기도 한다. 간혹 알고 있던 성별이 어느 순간 바뀌는 반전의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임신 16주 차쯤에는 아가의 성별을 알게 된다. 우리도 16주 차에 성별에 대한 소견을 원장님으로부터 들었다.

"딸이네요."

아, 그 순간이 바로 진실의 순간이었다. 그전에 열심히 찾아보았던 온갖 미신과 각도법의 결과들이 한순간에 무의미해졌다. 나와 신랑이 선호하는 성별도, 함께 나누었던 성별에 대한 장단점 논쟁도 다 의미가 없었다. 그 많은 궁금함의 시간 중에도 처음부터 우리 아가는 예쁜 공주님이었던 것이다. 신랑과 나의 얼굴엔 함박 웃음꽃이 피었다.


    그냥 마냥 기분이 좋았다. 우리 아가가 딸이라서 좋았다기보다는 우리 아가와 더 가까워진 느낌이라 좋았다. 

딸,

우리 소중한 아가에 대해 알게 된 첫 번째 정보였다. 이제 행복이가 엄마, 아빠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것이 기뻤다. 그 날 신랑과 나는 병원에서 나오는 길에 백화점에 들려 행복이에게 줄 첫 선물을 샀다. 딸에게 어울릴법한 가장 예쁜 신발을 골랐다. 성별을 알게 된 기념이기도 했고, 행복이와 더 가까워진 기쁨의 표현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임신 직후부터 딸일 거라는 직감이 들었으니, 엄마의 직감에 대한 아가의 응답을 들은 날이기도 했다. 우리 딸과 내가 처음으로 교감을 한 것 같아 하루 종일 웃음이 떠나지 않는 기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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