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인가?
세상에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용하는 자
다른 하나는 이용당하는 자
조금 강한 표현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의 냉정한 현실입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한다고요? 이기적인 사람, 나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을 보고 이타적인 사람, 괜찮은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죠.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어린 시절부터 현재 사회인으로의 삶.
여러분은 혹시 어떤 사람이 돼라 직간접적으로 학습(강요) 받아오지 않으셨나요?
그리고 본인도 모르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편향을 갖고 살아오지 않으셨나요?
우리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개념들을 혼동하고 살아갑니다. (이타성이란 무엇인가?)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을 보고 이타적이고 괜찮은 사람이라 이야기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끊임없이 긍정적인 평가를 지속하죠. 흔히들 말하는 칭찬입니다.
그러한 칭찬을 계속 받아 가는 사람은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누구를 위한 칭찬?)
좀 더 세게 표현하겠습니다.
수탈당하는 사람과 수탈하는 사람.
강자와 약자. 갑과 을. 고용인과 근로자. 상급자와 하급자.
사회적으로 이타적이고 괜찮은 사람이라 평가받는 사람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칭찬을 자주 받죠. 그리고 많은 이들이 타인에게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항상 조언(강요) 합니다.
여기서의 대가관계, 상호 교환 관계에 대해 한번 연구해보겠습니다.
단순한 청소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학교, 사무실 등 상상하는 어느 곳이던 적용이 가능합니다. )
같은 공간을 쓰는 여려 명의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공용공간과 개인 공간이 구분되겠죠.
생활을 하면 자연스럽게 해당 장소는 더러워집니다.
개인 공간의 경우 직접적인 불편을 바로 초래하기 때문에 바로 청소를 하겠지만, 공용공간의 경우 특별한 불편을 야기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지나칠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황을 몇 가지 좀 더 가정해보겠습니다.
더러워진 공용공간이 있습니다. 여기에 거리 변수를 추가하여 한번 상황을 가정해볼까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그로 인한 불편함을 가장 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사람이 해당 공간을 청소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그리고 거리가 멀면 멀수록 자기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일부 집단에는 청소 담당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청소부가 있는 곳은 청소부가 청소하기를 기다릴 것이고, 청소 담당구역이 있는 경우 해당 담당자가 청소할 때까지 기다리겠죠. 반면, 청소구역이 주기적으로 로테이션된다면 이때부턴 보이지 않는 양심의 문제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대한민국 집단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회사가 가장 편하겠네요.)
사무실이 있습니다. 상급자와 하급자가 나누어집니다. 연장자와 연소자로도 나누어지겠네요.
이것은 다시 강자와 약자, 갑과 을 등 보이지 않는 권력관계로 귀결됩니다.
공용공간이 더러워졌습니다. (A4용지 파쇄기 청소도 유사합니다.)
누군가 발견했습니다. 이때 누구가 중요합니다.
보통 강자에 속한 상급자가 발견했을 경우 하급자에게 청소를 명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일부 솔선수범하는 사람들의 경우 먼저 나서서 청소를 할 수 도 있습니다. (주변이 상당히 불편하겠죠.)
반대로 약자에 속한 하급자가 발견했을 경우에는 어떨까요? 알아서 바로 청소할 가능성이 높죠.
여기서 대가관계는 노동과 존경(인정)입니다. 청소라는 노동에 상급자는 하급자로부터의 존경을 교환하는 것이고, 하급자는 청소라는 노동에 상급자로부터의 인정을 교환받습니다.
이건 뭐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라고도 표현되겠네요.
하지만 이러한 권력관계가 항상 수직적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교환 관계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죠. 상대적으로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가졌다고 상상해보겠습니다.
여기서는 성격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입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 더러운 것을 못 참는 사람,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불편하고 눈치 보이는 사람
앞선 성격을 갖은 사람들이 먼저 나서서 청소를 할 가능성이 높겠네요.
그리고 반대의 성격을 갖은 사람은 그 반대겠죠.
그리고
위의 성격 변수에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됩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으로 강요된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 이타적인 사람이 되기 위한 무의식입니다.
부모, 학교, 지인 등 사회적으로 학습(세뇌) 받아온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하나의 노력.
이들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청소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은 칭찬합니다. 고맙다고 인사도 합니다.
일부는 긍정적인 인상과 평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일부는 당연한 듯이 그냥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청소와 칭찬 간의 교환이 이루어집니다. (교환 관계, 대가관계)
자. 대가가 교환되었습니다.
한쪽은 칭찬을 주었고, 한쪽은 청소라는 노동을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교환은 앞으로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한번 시작된 관성은 조직 구성원이 바뀌지 않는 이상 쉽게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까?
이것은 단순하게 칭찬을 주는 사람과 칭찬을 받는 사람에 대한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 한마디 칭찬으로 본인의 시간과 노동을 절약한 사람과 말 한마디 칭찬을 위해 본인의 시간과 노동을 희생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일부는 권력관계에 의해 강제적으로 노동을 제공했을 수도 있겠지만, 일부는 타인의 칭찬을 위해 타인의 시선과 평가를 의식하여 노동을 제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린 생각해봐야 합니다. 삶의 효율성이란 무엇인지. 일터에 나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것이 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그러한 칭찬을 받는 것이 내 삶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지.
이타적인 사람을 보고 우린 괜찮은 사람, 좋은 사람이라 이야기합니다.
옳은 말입니다. 이타적인 사람과 함께하면 좋습니다. 같이 있을 때 몸이 먼저 편하죠.
다만,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기서 나온 이타적인 사람의 이타성이 어릴 적부터 사회적으로 강요받아 온 것은 아닌지, 이타성을 세뇌받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행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진정한 이타성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회적 강요로부터 나온 이타성, 타인의 평가를 위한 이타성, 칭찬을 받기 위한 이타성이 아닌,
스스로의 만족과 행복, 보람을 위해 행하는 이타적 행동이 진정한 이타성이 아닌가.
잘못된 이타성으로 인해 이용당하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지.
청소의 사례는 이러한 생각(사고)을 시작하기 위한 하나의 작은 사례입니다.
사무실로 가보겠습니다.
여기는 콜센터입니다.
아침 9시 업무가 시작되고 첫 공용 전화벨이 울립니다. 전화의 순번이 없다면 누가 받아야 할까요?
이용당하는 자? 이용하는 자?
다시, 모두가 전화를 받고 있습니다. 동일 사안에 대해 전화를 받습니다. 같은 업무를 누군가는 남보다 쉽고 빠르게 처리하여 평균 상담 시간이 5분이고, 다른 누군가는 업무 처리가 늦어 평균 상담 시간이 10분입니다. 1시간을 일하면 전자는 12건의 상담을 하고, 후자는 6건의 상담을 하게 됩니다. (동일 급여)
누가 이용하는 자이고 누가 이용당하는 자 일까요?
만약, 남보다 2배의 일을 하고 동일 급여를 받는 사람이 이용당하는 자라면 여러분은 이용하는 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의 능력을 낮추고 점점 더 게을러질 것인가요? (비효율의 시작? 악순환)
다시,
은행 창구, 병원 창구, 기타 상담창구 등 번호표를 뽑아 상담을 진행하는 창구업무가 있습니다.
하루가 지나고 100개의 번호표를 뽑은 사람과 50개의 번호표를 뽑은 사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100개의 번호표를 뽑고 300만 원을 받는 사람과 50개의 번호표를 뽑고 300만 원을 받는 사람.
사무업무를 하는 회사로 가보겠습니다.
A라는 팀이 있고 여기에는 6명의 팀원이 있습니다. 각자 업무를 나누어합니다.
팀장이 직원 6명에게 업무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열정이 많은 a 사원이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합니다.
반면, 어딘가 굼뜬 b 주임은 항상 업무를 늦게 처리합니다. 몇 번은 b 주임 때문에 마감기한을 넘긴 적도 있습니다. (a 사원은 연봉이 3,000만 원이고, b 주임은 연봉이 4,000만 원입니다. )
이러한 일이 몇 번 반복되고 난 후, 팀장은 더 중요하고 어려운 일을 a 사원에게 주고, b 주임에겐 중요하지 않고 쉬운 일을 줍니다.
여러분은 a 사원이 될 것인가요? b 주임이 될 것인가요? 중도를 유지하겠습니까?
다시, A 팀으로 가보겠습니다.
c 대리가 있습니다. c 대리는 일만 생기면 a 사원을 부릅니다.
급한 일이 있냐고 묻고, 본인의 업무를 넘깁니다. 때론, 묻지도 않고 업무를 넘깁니다.
c 대리는 연봉이 5,000만 원입니다. A 팀에서 일은 a 사원이 가장 많이 합니다.
여러분은 c 대리가 될 것인가요? a 사원이 될 것인가요?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
아이러니합니다. 효율성이 낮은 자가 효율성이 높은 자를 착취하는 구조.
하지만, 효율성이 낮은 자가 더 높은 생산성(임금/노동)을 발휘하는 구조.
a 사원은 칭찬을 받고 인정받을 수 있겠지만, 극도로 낮은 생산성(임금/노동)을 갖습니다.
b 주임, c 대리는 욕을 먹을 수 있겠지만, 극도로 높은 생산성(임금/노동)을 갖습니다.
불합리한 가요?
이미 이런 불합리는 사회적으로 만연해 있습니다. 위의 사례는 친숙한 예입니다.
이러한 상황이 친숙하다면 정말 사회가 불합리하게 돌아간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불합리하게 사회가 돌아가고 있고,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그리고 미래까지 이러한 불합리가 용인되고 만연할 것이라면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1. 더러워도 열심히 일하고 인정받아, 승진으로 보상받는다.
2. 일부로 일을 회피하고 남에게 넘긴다. 또는 하급자에게 일을 넘긴다.
3. 비효율을 탈출하기 위해 조직을 나온다.
4. 기타
여러분은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선택에는 의도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이용하는 자가 될 것인지 이용당하는 자가 될 것인지.
이용하는 자가 될 것이라면, 의도적으로 이용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의도적 이용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창출된 시간효율을 통해 자기 자신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물론, 모두가 윈-윈(win-win) 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린 끊임없이 어느 한쪽에 속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유토피아가 될 수 없습니다. )
이것은 시작입니다.
고용주가 되어 근로자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를 고용하여 어렵고 복합한 일을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일에서부터 복잡한 일까지.
중요하지 않은 일에서부터 중요한 일까지.
타인의 자원을 더 효율적으로 이용하면 이용할수록 삶의 생산성은 더 높아질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을 어떻게 보낼 생각이신가요?
그리고 내일, 앞으로의 미래를 어떻게 살아갈 예정이신가요?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
어떤 사람이 되실 건지 생각해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