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자훈련소장 Jan 27. 2021

한국인의 삶과 정해진 결말

근로자의 삶이란

사람들은 가끔 평범함을 원할 때가 있습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꿈꾸는 것이죠. 특히, 본인의 삶이 평범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 때 이와 같은 평범함에 대한 갈증은 커질 것입니다. 불행하거나 무언가 맘에 들지 않을 때. 


그렇다면 평범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한국사람들이 TV 등 대중매체 그리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평범한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 평범한 삶과 내 삶이 일치하고 있는가요? 




전 오랜 시간 근로자로 살아왔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좋아하셨습니다. "이제 너도 다른 사람들처럼 열심히 일해서 저축하고, 연애해서 결혼도 하고, 자녀도 낳고, 등등" 부모님께서 생각하시는 평범한 사람의 일생이죠. 그리고 그 평범함에는 무탈함과 행복이라는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가 경험한 근로자의 삶과 제가 지켜본 근로자의 삶, 그리고 대다수가 말하는 근로자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빠르면 20대, 늦으면 30대에 회사에 입사합니다. 근로자의 삶을 시작하는 것이죠. 특별한 일이 없다면 오랜 시간을 거쳐 말단 사원에서부터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까지 진급합니다. 일부 극소수는 직장 내 별이라 불리는 임원이 됩니다. 물론 그 안에 정리해고, 명예퇴직 등 다양한 변수들이 존재하죠. 


계약상으론 하루 8시간 일하고,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합니다. 현실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주 5일을 일하며 마지막 주말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주말을 위해 주중을 희생하는 삶이죠. 한 달에 한 번 정해진 날짜에 월급이 들어오고 해당 월급을 가지고 한 달의 삶을 영위하고 남은 돈을 저축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삶의 수준이 되고 곧 한계가 됩니다.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자녀를 부양하고, 부모를 봉양하고, 가족을 부양하고, 자동차를 사고, 집을 구하고, 취미 활동을 하고, 보험에 가입하고, 연금 저축을 들고, 주식 등 각종 재테크에 투자하고, 운이 좋으면 부모님께서 전세방을 마련해 주시고, 평범한 집안이라면 대출을 받아 전셋집에서 시작하여 청약이 당첨되길 기다리다가 집을 구입하면 주택 담보대출을 받아 평생 갚아나가는 삶의 시스템.


쳇바퀴 같은 일상 속에서 조직만을 바라보고 살다 보면 어느새 경쟁에 몰리고, 나보다 잘 나가는 동료, 친구들과 비교를 하게 되고, 조금이라도 먼저 승진을 하거나 자산을 증식하게 되면 상대적 만족감에 행복을 느껴야 하는 행복 구조. 끊임없이 비교하여 남보다 잘 살아야지만 행복을 느끼고, 나보다 잘 사는 사람과 비교하면 끊임없이 불행해지는 삶.




아침 9시 출근이지만 예정보다 일찍 출근해서 상급자의 눈치를 보고, 퇴근시간에도 주변의 눈치를 보며 집에 가야 하는 회사 생활. 법정 근로시간보다 더 일하는 것이 미덕이 되어 법에서 보장된 연가, 육아휴직 등 근로자로서의 기본권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사회 구조와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조직문화. 


변화하고 싶지만 변화가 두려운 사회적 구조. 변화를 외치면 눈에 틘다고 손가락질받는 문화. 남과 다른 존재이지만 남들과 똑같이 보여야 하고 모두가 예라고 할 때 함께 예라고 외쳐야 하는 사회. 이대로 60살이 될 때까지 계속하여 반복되는 근로를 하며 인생의 절정기, 황금기를 반복되는 쳇바퀴에 투입한 뒤, 은퇴 후의 연금만을 바라보며 살아야 하는 근로자의 삶. 


이것이 진정으로 여러분께서 원하던 삶인가요? 여러분이 꿈꾸던 삶. 자아실현. 행복한 삶인가요? 그리고 이러한 삶이 행복한 삶이 맞을까요? 대중매체가 이야기하던 부모님께서 이야기하던 평범한 삶이 맞을까요?


하루하루 참아가며, 남들도 다 똑같이 살아가니까 위안을 얻고, '다들 그렇게 고생하며 살아가니까. 나도 뭐 괜찮은 거야.' 하며 위로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이건 아닌데,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닌데.'라고 생각을 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건 아닌데, 이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닌데..'라는 그 생각, 그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 삶이 고단해서 나오는 한순간의 하소연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내면의 목소리입니다. 나 자신이 나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진실된 이야기이죠. 


우린 끊임없이 삶에 대해 꿈꿉니다. 원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죠. 원하는 삶의 모습. 


한 살이라도 하루라도 더 젊을 때, 몸이 건강하고 삶의 에너지가 넘칠 때, 내가 갖은 자원을 총동원하여 경제 활동을 영위하고 그에 맞는 보상을 받는 삶. 이로 인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곳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 함께 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할 수 있는 삶. 정년퇴직(60세) 후 주어지는 비자발적 자유가 아니라, 20대, 30대, 40대에 성공하여 얻을 수 있는 삶의 자유.


만약 그 길이 있다면 우린 그 길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이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을 계속 간다면 여러분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셨나요? 만약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현실의 쳇바퀴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재 내가 걷고 있는 길, 정해진 삶의 길을 내가 원하는 길로 변경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할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일까? 어디서부터라면 그 시작은 어디인가? 그 근원은?




다시 생각해봅니다.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은 내가 만든 길인가? 아니면 사회에서 그리고 부모님과 지인, 친구들이 추천해준 길인가? 그리고 내 삶의 주인은 누구인가? 내가 내 삶을 온전히 통제하고 있는가?  


우린 자유롭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온전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온 시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미 내 삶의 통제권은 내가 아닌 외부로 상당수가 넘어갔습니다.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졌습니다. 일부는 이야기합니다. "내 삶은 내가 결정하는데요?" 맞습니다. 내 삶은 내가 결정하죠. 


하지만 앞서 평범한 사람으로 제시한 근로자 삶에 있어 대부분의 통제권은 내가 아닌 회사에 있습니다. 


내가 일하는 곳(공간), 나의 업무, 출퇴근 시간(시간), 급여, 휴가, 복지, 그에 따른 삶의 수준(삶) 및 사회적 대우 등. 모든 것은 내가 아닌 회사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회사의 통제에 따라야 합니다. 


물론, 일부는 주도적인 회사 생활, 근로자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회사와 내가 일체가 되어 업무를 하고,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하고, 회식자리에 참석하여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주말에는 각종 회사 모임에 참석하여 눈도장을 찍고, 라인을 타고, 경쟁자보다 인정받아 승진을 하는 삶. 하지만, 그마저 최종 결정권은 내가 아닌 남에게 있습니다. 내 행동에 대한 평가와 처분을 기다리는 것이죠. (그 반대라면 아웃사이더, 낙오자가 되는건가요?)


왜 상대의 평가에 내 소중한 인생을 맡겨야 하는 것일까요? 왜 내가 아닌 타인의 인정을 위해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그리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왜 우린 들어가야 했을까요? 





기준을 바꿔야 합니다. 행복의 기준, 만족의 기준을 남이 아닌 나 자신에게 돌려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삶을 설계하고 그 길로 나를 이끌어야 합니다. 남의 평가가 아닌 내 안의 내 기준에 날 만족시키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우린 알고 있습니다. 이대로 살면 어떻게 될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근로자의 삶과 정해진 결말.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의 한계들. 그렇다면 반대로 이대로 살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삶의 모습이 만약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면, 내가 원하는 그림, 내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있다면 그 모습에 맞게 나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목표를 세우고 그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계획에 맞게 실행, 실천해야 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누구도 여러분의 한계를 규정할 수 없습니다. 실패할까 봐 무서워하지 마십시오. 시도조차 못하고 평생을 보낸 뒤 후회하는 그 순간이 가장 무서워해야 할 모습(미래)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두려워 이대로 평생을 보낼지.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갈지. 


전자의 미래, 그 끝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후자의 미래, 그 끝은 알 수 없습니다. 


정해지지 않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 원하는 삶이 있습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일 뿐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습니다. 정해진 길이 진정 원하는 삶이 아니라면 도전하십시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결말이 아닌, 여러분이 만들어가는 행복한 결말을 응원합니다. 

이전 04화 이용하는 자와 이용당하는 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