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킬링필드에 다시 피는 야생화"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갑자기 번개가 번쩍이며 큰 천둥소리가 나의 귓전을 때렸다. 비극의 역사 앞에 섰던 곳은 킬링필드의 상징인 ‘쯔엉 아엑 대학살 센터(Choeung Ek Genocidal Center)’였다.
수천 개의 해골이 우는 듯한 천둥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뚜얼 슬렝 대학살 박물관(Tuol Sleng Genocide Museum)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한때 어여쁜 학생들이 희망을 노래했던 고등학교였는데 잔인한 S-21 교도소로 변했던 곳이다
내가 고등학생 시절이었던 1975년, 캄보디아는 세상의 모든 색깔을 잃었다. 붉은 흙, 붉은 피, 그리고 깊은 침묵만이 남았다. 13년 전, 처음 캄보디아 땅을 밟았을 때, 코를 찔렀던 것은 메마른 먼지가 아니었다. 땅속에서 희미하게 역사의 비린내가 올라오는 듯했다. 수백만 명이 묻힌 ‘킬링필드’ 유적지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악한 존재인지 죽어간 영혼들 앞에서 흐느끼고 있었다.
‘이곳에서 과연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20여 년 동안 한국에서 문화 공연 가로 잘 나갔던 나는, 세상의 박수 소리에 갇혀 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곳 킬링필드의 현실은 나의 화려했던 자아와 모든 치장을 허무는 붉은 흙탕이었다. 바로 그 절망의 경계선에서, 내 영혼은 뜻밖의 존재와 마주했다.
누가 물을 주었을까? 누가 돌보았을까? 그저 존재 자체로 ‘살아남음’을 증언하는 작고 보잘것없는 보라색 야생화 한 송이였다.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가 이곳에 ‘희망’이라는 씨앗을 심으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는 ‘야생화’의 증언을 듣기 위해 왔다는 것을.
나는 여기서 사역의 크고 작음, 성공과 실패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다만 22년 동안 걸어온 선교의 여정을 하나님께 드리는 고백을 서술하고 싶은 것이다. 40개국을 다니며 수많은 인종에게 복음을 전했지만, 이제 나는 이 캄보디아 땅에서 모든 선교의 막을 내리고 있다.
이 책은, 선교의 학문적 접근이 아닌 가장 깊은 절망 속에서 가장 단순하고도 위대한 믿음을 발견한 우리 부부의 고백이며, 킬링필드의 상처 위에서도 절대 지지 않고 피어나는 풋풋하고 진한 야생화들을 찾아 나서는 발걸음 그 자체이다.
싱그러운 망고가 열리고 있는 에덴센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