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꿈에도 생각 못했던 캄보디아

축제는 끝났고, 나의 길은 시작되었다

by 임래청

박수칠 때 떠나다, 캐럴 송을 뒤로하고.

지난 20여 년간 나의 삶은 언제나 화려한 조명 아래에 있었다. 문화 공연 전문가로서 수많은 무대를 기획하고 연출하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 소리를 먹고 사는 사람이었다. 내가 연출한 무대가 성공리에 끝날 때마다 느껴지는 그 짜릿한 성취감과 세상이 주는 안락함은 나를 단단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내 인생의 계획표에는 언제나 '더 큰 무대', '더 화려한 공연'만이 적혀 있었을 뿐, 이름조차 생소한 낯선 땅으로의 떠남은 단 한 줄도 들어있지 않았다.

1720439529320.jpg 해마다 영국 런던에서 진행되는 Arise 행사에 강사로 초청되었다.



20여 년간 익숙했던 화려한 무대 조명이 하나둘 꺼지고, 사람들의 환호성이 잦아든 자리에는 묘한 적막이 찾아왔다. 모두가 성탄의 기쁨을 나누며 따뜻한 집으로 돌아가던 그해 12월 26일, 나는 정든 이들의 손을 놓고 홀로 씨엠립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누군가는 전성기에 왜 떠나느냐고 물었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했다. 아내와 오기 전, 먼저 와서 우리가 살 집을 알아보고 15일간 머물며 선교사들의 사역지를 탐방하며 많은 조언을 들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 3월 아내와 함께 캄보디아 땅을 다시 밟았다.

사실 우리 부부는 아프리카의 케냐로 가서 선교하기를 오랫동안 계획하고 10년 이상을 기도해왔다. 드넓은 초원과 강렬한 태양이 있는 아프리카는 나의 마지막 열정을 쏟아붓기에 적합한 곳이라 믿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 지도를 캄보디아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으셨다.


캄보디아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내 마음속에서는 거센 저항이 일어났다. 초등학교 시절, 학교 운동장에 전시되었던 베트남 전쟁의 참혹한 사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캄보디아와 베트남 접경 지역의 모습은 '나쁜 사람들'과 '무서운 전쟁'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무의식 속의 공포가 나를 흔들었다. '하나님, 왜 하필 그 무서운 땅입니까? 제 화려한 달란트를 쓰기엔 너무 아픈 땅 아닙니까?'


하지만 15일간 머물며 만난 캄보디아 아이들의 눈망울은 내 편견을 산산조각 냈다. 부모 세대는 여전히 전쟁의 그림자를 등에 지고 살아가지만, 아이들은 붉은 흙탕 위에서도 맑게 웃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황폐한 땅 위에 홀로 피어난 작은 야생화 같았다. 나는 그 눈동자와 미소 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우리부부의 마음을 사로잡은 캄보디아 어린이들

언젠가 한 목사님이 내게 물었다. "많은 선교지 중 왜 하필 캄보디아입니까?" 나는 잠시 생각하다 이렇게 대답했다. "아프리카의 진한 향내가 비슷해요. 그래서 이 크메르 사람들을 가슴에 안게 되었습니다.“

내가 고백했던 그대로, 나의 발걸음은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의해 캄보디아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었다. 아프리카, 유럽, 중미... 내가 꿈꿨던 모든 화려한 선교지의 계획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에는 캄보디아의 붉은 먼지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채워졌다. 2019년 3월, 아내와 함께 다시 이 땅을 밟기로 결심하며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화려했던 무대 의상을 기꺼이 내려놓았다.

20200601_091703.jpg 한국에서 성탄절 캐롤송을 뒤로하고 캄보디아에 도착해서 찾아간 농촌 마을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