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엄마, 아빠 사랑해요!"

190만 개의 상처 위로 흐르는 가장 따뜻한 고백

by 임래청
가장 좁은 여행 가방 속에 담아온 것은, 세상에서 가장 넓은 사랑이었다.

2019년 3월 5일, 인천공항. 아내와 나는 캄보디아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년 넘게 전 세계를 다닌 베테랑 선교사였지만, 이번 이별은 유독 마음이 아렸다. 두 딸은 애써 웃으며 건강을 당부했고, 6살 손녀 리아는 내 새끼손가락을 걸며 신신당부했다. "할아버지가 할머니 손 꼭 잡고 다녀야 해요. 캄보디아에서 할머니 잊어버리면 큰일 나니까요!" 그 맑은 약속을 가슴에 품고, 우리는 단 두 개의 여행 가방에 20년의 삶을 담아 이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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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땅에서의 첫 아침

호텔 베란다에서 바나나 잎 사이로 뜨는 해를 보던 아내의 어깨가 무거워 보였다. "여보, 간밤에 잘 잤어요?" "모기는 괜찮은데, 벽에 기어 다니는 도마뱀 때문에 좀..." 긴장과 설렘, 그리고 막막함이 교차하는 아침 식사 자리. 나는 아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우선 석 달은 입 다물고, 눈 감고, 귀 닫고 지냅시다. 주님이 예비하신 길을 찾을 때까지는 그저 조용히 지켜보자고요."

교단에서 파송받은 것이 아니고 교회에서 파송받아서 불안한 사역이었지만. 우리는 매일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은행 계좌를 여는 사소한 일부터 다시 배우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어느 날 저녁, 앙코르와트 해자 앞에 섰다.

붉은 노을이 거대한 돌기둥을 적실 때, 나는 그 신비로운 앙코르의 미소를 바라보았다. 학자들은 이 거대한 해자가 사원의 지반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우물 역할을 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아, 이 해자는 캄보디아 사람들의 삶을 지켜온 믿음의 우물이구나.'

수많은 고난과 비바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단단히 뿌리 내린 저 미소는, 단순히 돌에 새겨진 것이 아니었다. 190만 명이 사라진 그 거대한 상처 위에서도 굳건히 살아남은 캄보디아 민족의 강인한 생명력이었다.

아내가 조용히 물었다. "여보, 왜 하필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셨을까요?" 나 역시 솔직하게 답했다. "사실...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위로 노을빛이 손을 흔들 때, 나는 보이지 않는 답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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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이 노을빛처럼 주님의 은혜가 이 땅의 모든 상처를 아름답게 물들게 하소서." 그것이 우리의 7년 사역을 여는 첫 번째 기도였다.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어느새 캄보디아의 밤공기가 우리를 감쌌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딸들에게 짧은 메시지를 적어 내려갔다.

우리 딸들, 리아야. 엄마 아빠 숙소에 잘 도착했단다. 도마뱀이 좀 무섭긴 하지만(웃음), 약속대로 할머니 손 꼭 잡고 잘 지내볼게. 너희 말대로 건강하게, 주님이 맡기신 일 잘 감당하마. 우리 딸들, 엄마 아빠가 정말 많이 사랑한다!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캄보디아의 낯선 밤하늘 위로 한국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별처럼 떠올랐다. 190만 명이 사라졌던 이 아픈 땅 위로, 이제는 우리가 가져온 작은 사랑과 가족들의 기도가 겹쳐 흐르고 있었다.

우리의 진짜 사역은 바로 이 '사랑한다'는 고백을 이 땅의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것임을,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