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11월, 노엘과 함께한 패배의 결정

런던의 새벽, 끊어진 생명줄

by 임래청

빅벤의 종소리, 파산의 전주곡


11월 말의 런던은 구름이 낮게 깔려 음울했고, 코끝이 시린 추위가 온몸을 감쌌다. 나는 저녁도 먹을 겸 호텔을 빠져나와 멍하니 무작정 걷다가 시계탑(빅벤)의 묵직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것을 들었다. 그 웅장한 소리가 내게는 파산을 알리는 최후의 심판처럼 느껴졌다. 거리에는 벌써 크리스마스트리가 불을 밝히기 시작했고, 성탄절 특유의 들뜬 분위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저 붉은 이층 버스들, 빨간 우체통마저도, 곧 나를 덮칠 재앙과는 상관없이 평화로웠다.

"노엘, 노엘(Noel, Noel)" 선율이 절망감을 증폭시켰다.

나는 잠시라도 이 끔찍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허름한 맥줏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내부는 뿌연 연기로 가득했지만, 작은 무대에서는 옅은 조명 아래 여자 가수가 라이브로 캐럴을 부르고 있었다.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노엘, 노엘(Noel, Noel)" 선율이 절망감을 증폭시켰다.

동양인은 나 혼자여서인지 맥주를 마시던 젊은 영국인들이 나에게 “Hey, buddy! Let’s grab a beer together.”(어이, 친구 함께 맥주 마시자) 하며 자꾸만 귀찮게 했다.

내일이면 일단 가고 싶지 않지만 가야 했다. 도피하고 싶었지만, 가족이 한국에 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 구름 낀 런던을 떠나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만이 실패자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임이었다. 몇 잔을 마셨는지 모르지만 호텔로 가기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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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가 다 되어서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종업원이 걱정되는 눈빛으로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계산을 하고 거스름 돈은 팀으로 주었다. 취기가 올라왔다. 맥줏집 문을 열고 나오니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오면서 정신이 들었다.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타고 들어왔다. 희미한 가로등만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낯선 이방인들은 강도 등에 노출되어 위험하기 때문에 혼자 밤거리를 다니는 것이 아니다. 호텔문을 열고 들어가니 프런트에서 별일 없냐고 물었다. 호텔 직원이 걱정을 하고 나를 기다렸단다.

아침 6시 모닝콜을 부탁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 더는 미룰 수 없는 운명의 시간이었다.


새벽 6시,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1층 프런트로 내려가 한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통신비 걱정보다 앞선 것은 숨이 막히는 절박함이었다. 한국 시간으로 오후 2시였다.

이미 마지막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여보세요, 여기 김매균입니다." 여직원이 바로 눈치를 채고 사장을 바꿔주었다. "김사장님, 오늘 돌아온 어음은 어떻게 할까요?" 사장은 나보다도 더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오늘 돌아온 당좌수표 1,200만 원짜리를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사장님, 한 번만 더 돌려주시면 내일 한국으로 가는데, 가서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하지만 박 사장이 가지고 있는 수표 외에도 다른 사장에게 발행한 수표 1천만 원짜리가 한 장 더 있었기 때문에, 수표를 돌려서 자금을 마련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마지막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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