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 5백만 원의 낙인과 형사 동생의 농
히스로 공항의 복잡함은 세계적이었다. 나는 탑승 절차를 밟는 내내 불안함과 체념 사이에서 흔들렸다. 대한항공 이코노미 좌석은 좁았지만, 그날따라 짓눌리듯이 더 좁게 느껴졌다. 다행히 창가 쪽에 앉아, 비가 촉촉이 내리는 드넓은 활주로를 희미하게 볼 수 있었다. 내 옆에는 젊은 영국인 여인이 앉아 있었다.
런던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곧 밤이 되었고, 기내의 어둠 속에서 나는 창가를 통해 비치는 초승달을 바라보았다. 초승달이 마치 나를 계속 지켜보는 것 같았고, 한국에 도착하여 바로 도망자가 되어야 한다는 현실이 가슴을 짓눌렀다. 나는 다음 주 일정을 머릿속에 돌리고 있었지만, 인간의 계획과 희망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질 수 있는지, 그 대가를 치르는 시간이 고작 몇 시간 후에 시작되리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어음은 민사로 처리되고 사법 절차를 밟지만, 당좌수표는 형사 사건으로 분류되어 형사적 책임이 있다는 것이 가장 두려운 부분이었다. 법원에서 세 번의 출두 통지서를 받고 조사받으러 가지 않으면 기소중지가 내려진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처절한 싸움이 될 것이었다.
기내에 울려 퍼진 파산의 굉음
비행기가 히스로 공항을 이륙한 지 10시간 만에 인천 상공을 선회했다. 급강하하는 기내에는 긴장이 돌았다. 그때, 비행 내내 잠잠하던 휴대전화가 위성 통신이 잡히자마자 쉴 새 없이 울려대기 시작했다.
'왜 이래? 한국에 무슨 일이 생겼나? 아냐, 그냥 스팸이겠지.'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지만 불안했다. 첫 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내 세상은 공중분해 되었다.
당좌수표 최종 부도 처리. 금액 9천 5백만 원
그 숫자가 기내의 윙윙거리는 엔진 소리보다 더 큰 굉음으로 내 귓속을 때렸다. 이코노미 클래스의 좁은 좌석이 갑자기 나를 가두는 감방처럼 느껴졌다. 손은 떨렸고, 입은 바싹 말랐다. 부도. 이제 못 갚으면 기소중지. 내 40대 삶의 모든 이정표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눈앞에는 까마득한 절벽만 남았다. 창밖은 먹구름이 짙게 깔려 있었다.
문득 종교라기보다는 '절대적인 심판'에 대한 공포가 떠올랐다. 내 삶의 시간은 이미 멈췄거나,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오, 신이시여…."
순간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한마디는 구원을 바라는 기도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부도라는 현실적 지옥 앞에서, 비로소 나는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중요한 영혼의 평안을 잃어버렸음을 깨달았다.
비행기 안의 9천 5백만 원은 더 이상 금액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이름 석 자를 대신하는 낙인이었고, 내 가족의 미래를 송두리째 앗아간 사형 선고였다. 나는 기내 화장실로 숨어 들어가 차가운 거울 속 나를 응시했다. '도망자.' 그 두 글자가 마치 뜨거운 인두처럼 내 이마에 새겨지는 듯했다.
나는 이 소식을 가족에게 전하는 것이 부도보다 더 잔인한 폭력이 될 터라고 생각했다. 아내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닥칠 고통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나는 이 짐을 혼자 지고 사라져야 한다고 결심했다. 휴대전화를 꺼버렸다. 단절. 그것은 세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내가 지키고 싶었던 가장 소중한 것들과의 단절이었다. 비행기가 착륙을 위해 고도를 낮추는 동안, 나는 이미 2년여의 도피 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경찰관 동생 집으로의 아이러니한 도피
세 번째 소환 통지서를 받은 날부터, 나는 집이라는 울타리에 발을 들일 수 없는 도망자가 되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은 스스로 경찰서 문을 여는 것과 같았다.
나는 낮에는 주로 친분이 있는 사업가들을 만나거나, 이름 없는 공원을 전전하며 시간을 죽였다. 밤이 되면 가격이 싼 여관방을 찾아다녔다. 퀴퀴한 곰팡 냄새와 축축한 이불 속에서 잠을 청했지만, 머릿속은 온통 '내일은 어디로 가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가족의 따뜻한 밥상과 포근한 잠자리가 지척에 있다는 사실은 고통을 배가시켰다.
도피 생활 중 가장 심장이 멎을 듯했던 곳은 다름 아닌 경찰관 동생의 집이었다. 나는 가끔 삼성동 동생 집에 몰래 숨어들어 하루를 지내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동생은 맥주를 한 잔 마시며 씁쓸하게 말했다.
"아, 죄짓고 형사 집에 와서 자는 사람은 형님뿐일 겁니다."
옆에 있던 제수씨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끼어들었다.
"여보, 형님 마음이 더 괴로울 것인데 그만해요."
하지만 동생은 술기운이 올랐는지 농담을 멈추지 않았다.
"형님, 그냥 내 수갑 차고 내일 경찰서로 갑시다."
그는 깔깔 웃었지만, 나는 동생임에도 불구하고 심장이 멎는 듯했다. 혹시나 동생이 내일 아침 동료 경찰관에게 연락이라도 할까 봐, 나는 밤새 불안에 떨었다. 잠이 오지 않았다. 새벽에 동생 집을 떠나야겠다고 다짐하며, 그날 밤을 거의 뜬눈으로 보냈다. 동생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도망자 신분 자체가 주는 자기 의심과 공포 때문이었다.
그렇게 동생의 농담 섞인 수갑을 뒤로하고, 나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진짜 도망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알림] 독자님들의 소중한 응원과 고민 끝에, 본 연재의 제목을 조금 더 명확한 의미를 담아 「그해 겨울, 서울구치소 29동」으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제목은 바뀌었지만, 그해 겨울의 시린 기록은 변함없이 진솔하게 이어가겠습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