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의 공포와 엇갈린 결심
"아빠, 경찰 아저씨 조심하세요"
때로는 억눌린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아파트 주변 공원을 서성이다가, 새벽 1시가 넘어서야 도둑처럼 집으로 기어들곤 했다. 경찰들이 주로 밤 12시를 전후해 들이닥친다는 사실을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밤이었다.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리는 소리가 정적을 깨자, 내 심장은 바닥으로 덜컥 떨어져 내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소리 없이 몸을 낮춰 베란다로 몸을 숨겼다. 차가운 알루미늄 창틀 아래 웅크린 채, 나는 내 숨소리조차 들릴까 봐 입을 틀어막았다. 아무리 경찰이라도 영장 없이 문을 강제로 열 수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았지만, 엄습하는 공포는 이성을 마비시켰다.
김매균 씨, 안에 있는 거 다 압니다. 빨리 문 여세요!
아내는 문에 달린 작은 보안 구멍으로 복도의 상황을 살폈고, 나는 베란다 난간을 잡은 채 덜덜 떨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아파트 복도에 울려 퍼질 때마다 이웃들이 깰까 봐 아내는 진땀을 흘렸다. 결국 아내는 작은 목소리로 간곡히 부탁하며 문을 열어주었다.
“이웃들이 자고 있으니 제발 좀 작게 말씀하세요. 남편은 집 나간 지 꽤 오래됐어요.”
“아주머니, 거짓말하지 마세요. 우리가 다 알고 왔습니다.”
“정말 없어요. 가끔 연락은 오는데, 저도 걱정이 되어 빨리 돌아오라고 하지만 연락 끊긴 지 일주일도 넘었어요.”
아내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베란다에 서 있자니 심장이 당장이라도 멎을 것만 같았다. 무엇보다 나를 무너지게 한 것은 방 안에서 이 모든 소리를 듣고 있을 어린 자식들이었다. 아빠가 범죄자처럼 쫓기는 광경을 생중계로 들어야 하는 아이들에 대한 비참함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김매균 씨 들어오면 도망 다니지 말고 경찰서에 나와 조사받으라고 전하세요.”
경찰들이 사라진 뒤에도 아내는 혹시 그들이 다시 돌아올까 봐 창밖을 한참이나 살폈다. 경찰차가 완전히 단지 밖으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아내는 내게 신호를 보냈다. 춥고 좁은 베란다에서 방으로 들어올 때, 내 몸은 이미 얼음장처럼 굳어 있었다. 이런 숨 막히는 대치와 도망이 몇 번이었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가물가물할 정도로 잦았다.
딸들의 눈물과 멈춰선 발걸음
도피 생활이 2년을 훌쩍 넘겼을 때, 나의 육체와 정신은 이미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있었다. 이웃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아내의 하소연을 들을 때면 차라리 당장 자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해가 뜨면 본능적인 습관처럼 다시 집을 떠나야 했다.
어느 날 새벽, 나는 두 딸에게 애써 밝은 표정으로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빠 갔다 올게. 학교 가서 공부 잘하고 엄마 말씀 잘 듣고 있어.” 그때 큰딸이 울먹이며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2년간의 고통을 응축한 듯한 한마디가 내 가슴을 후벼 팠다.
“아빠, 경찰 아저씨들 조심하세요.”
아이들은 아빠가 왜 집에 들어오지 못하는지, 왜 밤마다 숨어야 하는지 이미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내가 가족을 지키겠다고 선택한 이 비겁한 도피가 실은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상처를 주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도피는 가족 모두를 가두는 또 다른 감옥이었다.
집을 나서며 나는 결심했다. 이 지옥 같은 생활을 오늘로 끝내야 한다고. 나를 보내며 눈물짓는 아내의 마음을 뒤로하고, 나는 곧장 강남경찰서로 향했다. 2년 만에 처음으로 고개를 들고 거리의 햇살을 마주했다. 발걸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지만, 마음속의 짐은 조금씩 덜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막상 경찰서 입구의 차가운 위용(威容) 앞에 서자, 나의 비겁한 본능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발길이 허공에서 멈췄다.
‘아니야, 조금만 더 참아보자. 돈을 더 준비해서 수표를 쥔 회장을 만나 해결하든지, 아니면 2년만 더 버티면 기소중지가 풀릴지도 모르잖아.’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리던 나는 결국 경찰서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뒤돌아섰다. 도망자의 습성은 그렇게나 끈질겼다. 나는 이렇게 비겁한 희망을 품고 다시 도망자의 버스에 몸을 실었다.
PS 가족을 지키려 했던 저의 도피가 오히려 가족에게 가장 큰 감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소중한 사람을 위한 선택이 예상치 못한 상처로 남았던 기억이 있으신가요? 여러분의 한 마디가 도망자였던 저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