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유치장 철문이 닫히다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

by 임래청

세상과 작별하는 과도기


강남경찰서에서 보낸 연행 차량이 도착했다. 운전석의 경찰 외에 두 명의 형사가 내 양옆에 붙어 앉았다. 뒷좌석의 좁은 공간, 그들 사이에 끼여 앉은 나는 이미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존재였다.

“아, 이놈 오랫동안 도망 다녔네.” 형사가 툭 뱉은 그 말 한마디가 다시 나의 심장을 요동치게 했다. 강남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형사과에 앉아 조사를 받았다. 조사받는 내내, 2년 전 런던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느꼈던 그 처절한 절규가 귓가를 맴돌았다. 조사과 담당 형사는 처음부터 반말이었다. 조사관이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컴퓨터에 입력하자마자, 모니터에는 ‘기소중지’라는 붉은 글자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마치 주홍글씨 같았다.

“당좌수표 부도 건으로 기소 중지되셨습니다. 이제 가셔야 할 곳으로 가셔야죠.”

분명 죄를 지은 몸이었지만, 막상 체포되어 유치장 앞에 서니 억울함과 원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짧은 탄식은 절규가 되었고, 결국 운명에 대한 무기력한 항복으로 이어졌다. 유치장의 육중한 철문이 '철컹'하고 닫히는 순간, 세상과의 물리적 단절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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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유치장은 1호 방부터 8호 방까지 반달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차가운 벽, 딱딱한 바닥, 그리고 코를 찌르는 특유의 소독약 냄새가 나를 맞이했다. 내가 배정받은 곳은 3호실. 새로운 ‘신입’이 들어오자 기존 수감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 꽂혔다. 그곳에서 나는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한쪽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 있는데, 체격이 크고 온화해 보이는 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선생은 무슨 일이오?”

“당좌수표 부도입니다.”

“금액은요?”

“구천 오백입니다.” 그는 코방귀를 뀌며 “적은 금액이네”라고 대꾸했다. 그러더니 자신은 5억 대 사기 혐의로 들어왔다며 훈장이라도 달린 듯 자랑스럽게 떠들었다.


그때 복도 쪽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한 남자가 억울함을 호소하며 조사관에게 항변하고 있었다. “아, 씨발! 그 새끼가 다 해 처먹고 튀었다니까요! 나도 그놈한테 당한 피해자란 말입니다!” 우리 방과 옆 방 수감자들이 그 꼴을 보며 비웃음을 날렸다. 깡마른 중년 하나가 냉소적으로 덧붙였다. “여기 잡혀 오면 다 자기는 죄가 없다고 그래요.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딱 맞지.”

또 다른 수감자가 천장을 보며 욕설을 섞어 소리쳤다.

“아, 씨발! 여기 진짜 죄짓고 들어온 놈이 어디 있어? 다 억울하게 온 거지. 진짜 나쁜 놈들은 저 밖에서 떵떵거리고 사는데, 왜 우리 같은 서민들만 잡아 가두느냐고!” 유치장 안의 대화는 늘 그렇게 ‘씨발’이라는 비속어로 시작해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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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게 흐르는 유치장의 시간


“어이, 젊은 양반. 가능하면 여기서 어떻게든 합의 보고 나가는 게 좋아. 검찰로 넘어가면 그때부턴 진짜 머리 아파지거든.” 누군가 툭 던진 충고 아닌 충고가 가슴에 박혔다.

나는 그곳에서 7일을 갇혀 지냈다. 유치장의 시간은 느리고도 잔인하게 흘렀다. 낮과 밤의 구분조차 무의미한 그 좁은 공간에서, 나는 지난 40년의 삶을 수천 번 되감기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그저 조금 더 잘 살고 싶었고,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었을 뿐인데. 결국 나는 종잇조각에 불과한 수표 몇 장 때문에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이곳은 구치소로 가기 전, 세상과 작별하는 과도기였다. 홀로 남겨진 고립된 시간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신에게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주님, 부처님... 제가 대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이제 저를 어디로 이끌어 가실 겁니까?”

나는 벽을 등지고 앉아 짐승처럼 밥을 먹었고, 죽은 듯이 잠을 잤다.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곳에서 인간적 자존감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지만 2년 9개월 만에 자유롭게 깊은 잠에 빠져 꿈을 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