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동생은 보증 대신 '고생'을 말했다

철창 안에서 마신 가장 뜨거운 위로

by 임래청

가장 가까운 타인, 가족

유치장에 끌려온 첫날 점심, 나는 떨리는 손으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매규야, 형인데……. 나 지금 강남서에 있어. 퇴근할 때 잠시만 들러줄래?” “네, 형. 알았어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구원할 줄을 잡은 기분이었다. 동생이 와서 보증만 서준다면 이 창살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나를 지탱했다. 저녁 7시. 유치장 밖에서 구둣발 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철문에 바짝 다가가 고개를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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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컹, 킥—” 무거운 쇠문이 열리고 익숙한 동생의 얼굴이 보였다. “김매균 씨, 잠시 나오세요.” 동생은 수사관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했고, 나는 동료 수감자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을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유치장 밖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자유의 공기는 단 10분뿐이었다.

“매규야, 형 좀 나가게 해다오. 누가 보증을 서주면 나갈 수 있다던데, 네가 좀 도와주면 안 되겠니?” 내 간절한 매달림에 동생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차가운 현실을 꺼내 놓았다. “형, 9천 5백만 원을 제가 어떻게 보증서요. 형도 잘 아시겠지만, 저도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인데…….” 동생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형, 힘들어도 고생 좀 하세요. 지금은 매를 맞는 게 가장 빨리 해결되는 길입니다.”

동생이 떠난 뒤, 그날 밤 나는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붉은 기소중지 글자가 떠올랐고, 눈을 뜨면 24시간 꺼지지 않는 눈부신 형광등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았다. 좁은 방에 8명이 엉겨 붙어 누워 있으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짓눌려 비명을 질렀다.


차가운 유치장에 울려 퍼지는 찬양

유치장 안에서는 시간의 흐름을 알 길이 없다. 창문 하나 없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시계를 대신하는 건 오전 10시의 방문자들이었다. 매일 아침, 여러 교회의 목사님들이 따뜻한 음료를 들고 찾아와 찬송가를 불렀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들이 건네는 종이컵 속의 커피와 녹차는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는 유일한 위안이었다. 누군가는 눈물을 흘렸고, 누군가는 그저 커피 맛에 집중했다. 나는 종일 유치장에 비치된 낡은 성경책을 넘기며 시간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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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은 늘 소란스러웠다. 새로 들어온 여자는 억울하다며 울부짖었다. “아니에요! 난 잘못 없어요! 그 사람들이 이자를 30%나 받아 챙겨놓고 이제 와서 나만 나쁜 년으로 몰아세우는 거라고요!” 가만히 지켜보니 이곳에 모인 사람 중 스스로를 '죄인'이라 인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핑계가 있었고, 모두가 피해자였다.


죄인이 묻고 신이 답하다

밤낮없이 켜져 있는 천장의 형광등 아래서 오만가지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일찌감치 포기한 이들은 달랐다. 그들은 주는 밥을 묵묵히 먹고, 좁은 틈에서도 깊은 잠을 잤다. 그들에게 유치장은 그저 거쳐 가는 정거장일 뿐이었다. 차라리 이유치장을 빠져나가지 못할 바에 빨리 구치소로 넘어가는 게 좋다는 얘기들이 오갔다.

“매균 씨. 아까 면회온 사람이 동생이오? 경찰관 같은데…?”

네, 경찰청 외사과 형사입니다.“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아, 그 동생 참 매정하네, 쯔쯔….“ 나는 더 이상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매일 바뀌는 목사님들은 열정적으로 기타를 치며 외쳤다. “예수님을 믿으면 죄 씻음을 받고 새사람이 됩니다! 구원받으십시오!” 그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삐딱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다 죄인이라면, 지금 저기서 노래하는 목사님도, 옆에 선 여신도도 다 죄인이란 말인가?’ 반항심이 고개를 들었지만, 이내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래,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나는 죄인이 맞다. 그런데, 그래서 이제 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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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유치장 바닥에서 받아 든 종이컵의 온기. 그것은 나를 향한 복음이기 이전에, 벼랑 끝에 선 한 인간이 마지막으로 붙잡은 삶의 체온이었다. 그날 밤 꿈을 꾸었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물장구를 치며 깔깔거리며 웃는 꿈을…. 그 과도기의 6일은 그렇게 잔인하고도 따뜻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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