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동 입성: 그곳은 도축장이 아니었다.
이름을 빼앗기고 '번호'가 된 첫날의 기록
호송차에서 내린 인원은 대략 70여 명 정도 되었다. 사방이 흰 벽으로 된 서늘한 방에서, 제일 먼저 모든 소지품을 꺼내고 입고 온 옷을 벗어야 했다. 신도림에서 잡혀 올 때 입었던 가을옷은 어느덧 겨울로 접어든 계절 탓에 얇고 차가웠다. 사복을 모두 벗어 포장 봉지에 넣고 이름을 썼다. 다시 이동하면서 창살 넘어 밖을 보니 이미 어둠이 찾아온 밤이었다.
체육관 같은 넓은 곳으로 우리는 이동했다. 구치소에서 지급하는 파란색 수감 복을 받았다. 치수가 맞으면 좋았지만 대략 몸을 봐서 지급했다. 다행히 내가 지금 받는 수의복은 몸에 딱 맞았다. 그러나 옆에 있는 수감자들은 옷이 너무 크든지, 작든지 해서 교환을 하면서 조금 시끄러웠다. 우리는 수의복으로 갈아입고 다시 정밀 신체검사가 시작되었다. "동작을 빨리빨리 하세요!" 세 명의 교도관 중 한 명이 외쳤다. 나이 많은 수감자 한 명이 유독 동작이 느렸다. 하지만 노인은 처음 들어온 사람이 아닌 듯했다. 느리면서도 정확하게 움직이는 기색이 구치소보다는 교도소 생활에 익숙한 노련한 영감이었다.
마지막으로 흰 벽돌 벽 앞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죄인 아닌 죄인처럼 스스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행여나 탈출이라도 한다면 현상 수배용 사진이 될 터였다.
"눈을 똑바로 들고 여기 카메라를 보라고요. 하나, 둘, 셋!"
사진사는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모두가 찍기 싫은 표정들이었다. 멀쩡한 사람도 왜 그렇게 사진기 앞에서는 죄수처럼 보이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두 번 찍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 사진사는 아마 수만, 아니 수 십만 장을 찍었을지 모른다. 기계처럼 우리를 한 사람씩 세우고 찍은 동작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진사 한 명이 찍으니 시간이 꽤 걸렸다.
갑자기 가족들이 생각이 나면서 저녁밥을 먹었는지 걱정이 되었다. 나의 이 현실보다도 가족들이 더 걱정되었다. 얼마나 놀라고 지금도 아빠를 걱정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후회가 밀려왔다. 어디서 무엇이 잘못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돈이야. 다 돈 때문에 벌어진 일이야. 하면서 옆을 보는데 나의 번호와 이름이 들려왔다.
이름이 숫자로 변하던 날
푸른색 죄수복을 입고 사진을 찍는 순간, '김매균'이라는 이름 석 자는 잠시 정지되었다. 사업가, 가장, 사회의 일원이었던 모든 수식어는 '죄수 번호 2885'라는 다섯 자리 숫자 아래 완전히 소멸하였다.
번호표는 단순히 식별 도구가 아니었다. 인간의 존엄이 깎여나가고 자존심이 해체되는 과정을 상징하는 냉혹한 계급장이었다. 이곳에서는 아무도 과거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얼마나 큰 돈을 벌었는지, 어떤 차를 탔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푸른 옷에 붙은 숫자가 현재의 존재 이유이자, 어떤 분류에 속하는지를 규정하는 유일한 잣대가 된다.
왼쪽 가슴의 번호표를 내려다보며, 이 숫자가 운명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이 번호는 잠시 주어진 고통의 유니폼일 뿐, 언젠가 벗어던지고 이름으로 돌아가리라 다짐했다. 정체성을 빼앗아 간 번호표 앞에서, 오히려 진정한 자아를 찾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이 과정이야말로 구치소가 던져준 첫 번째이자 가장 쓰라린 수업이었다.
입감을 위한 위생 처리 순서가 이어졌다. 샤워실에서 정해진 시간에 자동으로 나오는 샤워기에 몸을 맡기고 신속하게 씻어야 했다.
"야, 거기 비누 좀 줘."
누군가 반말을 툭 내뱉었다. 기선 제압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아무 말 없이 비누를 건네주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배가 고파왔지만, 무언가를 먹고 싶지는 않았다. 경찰서에서 검찰청으로, 다시 서울구치소로 이동하여 샤워까지 마치고 나니 마치 도축장에 도착해 도축 실로 들어가는 가축이 된 기분이었다.
다행히 도축장이 아닌 재판 대기 장소였으나, 그 과정은 짐승을 도축하는 순서와 너무나 흡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