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회장님, 여기서는 그냥 번데기입니다"

구치소 29동, 그곳은 학교였다

by 임래청
7명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늦은 시간, 구치소에서의 첫 끼를 마주했다. 식판에 담긴 밥은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다. 입맛이 없었지만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먹자. 살아서 나갈 것이니 건강해야지.‘ 문득 아내와 두 딸이 생각났다. 행여나 쌀이 떨어져 굶고 있지는 않을지 답답함이 밀물처럼 밀려왔다. 철없이 살아왔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파도처럼 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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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여 명의 입감자들이 대기방에서 밤을 지새웠다. 이번이 두 번째라는 서른 살 젊은 친구, 태영이가 앞으로의 절차를 읊어주었다. 나는 마치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잡듯 그의 입술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입감 3일째 되던 날, 드디어 이름이 불렸다. 나를 포함한 7명이 호명되었다.

29동의 육중한 철문 앞에 서자 보초가 얼굴 대조를 마친 뒤 문을 열어주었다. 다시 긴 복도를 걷는데, 문득 과거 군기교육대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이 개새끼들아! 줄도 못 맞추냐?"

구둣발에 차여 쓰러지던 동료 박 이병의 모습. 그때의 고난은 처참했지만 '모욕감'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모멸감은 달랐다. 인간의 존엄을 뿌리째 흔드는 수치심이 극에 달했다.

"우향우! 들어갓!"

간수의 지시에 따라 멈춰 선 곳은 6호실이었다.

"우와 형님, 대박입니다! 아무도 없는 빈방입니다!"

태영이 환호했다. 빈방에 7명이 배정되는 건 기적이라 했다. 문 위에는 7명의 이름과 죄명이 나란히 걸렸다. 경제범, 강간, 절도, 사기...

기약 없는 7명의 기묘한 동거가 시작되었다.


우린 모두 번데기였다.

구치소의 시간표는 정교하게 짜인 시한폭탄 같았다. 오전 6시 기상, 7시 식사. 모든 것이 기계적이었다. 밖에서는 10분도 아까워하던 내가, 이곳에서는 주어진 하루를 '견디는 것'에만 몰두해야 했다.

"형님, 여기선 나를 내려놔야 살아요. 밖에서 뭘 했든 여기선 다 똑같은 번데기입니다."

이미 세 번째 들어왔다는 재소자가 냉소적으로 던진 말은 뼈아픈 진실이었다. 나는 40대 사업가로서의 자존심을 1평 남짓한 이 공간에 내려놓아야 했다. 문득 어린 시절 금호동 동네를 돌던 번데기 장사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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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뻔, 뻔, 뻔데기 왔어요!"

신문지 고깔에 담아주던 그 구수한 맛. 십 원짜리 동전 하나면 행복했던 그 추억이, 이곳에서는 '자존심의 해체'를 상징하는 서글픈 은어로 쓰이고 있었다. 그래, 우리는 다 똑같은 번데기였다. 모두가 자신의 죄는 작다고 항변했지만, 결국 스스로의 욕망이 만든 감옥에 갇힌 존재들이었다. 어떤 이는 허공만 보고, 어떤 이는 손톱을 뜯으며 절망에 잠겨 있었다.


입술을 깨물고 다짐했다. '여기서 무너지지 않겠다.' 라고... 이곳은 단순한 감옥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본질을 관찰하는 귀한 수업 시간이었다. 번데기가 허물을 벗고 노란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듯, 나라는 존재가 이 고통의 과정을 거쳐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통의 허물을 벗어 던질 때까지 기필코 참아내겠노라며 깊은 한숨과 함께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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