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시간
포승줄에 묶인 채 마주한 차가운 현장
7일간의 짧은 고립이 끝나는 동시에, 나는 훨씬 더 길고 깊은 감금의 시간으로 던져졌다. 곧바로 서울구치소로 이감되는 줄 알았지만, 세상에서 처음으로 겪는 수모와 모멸감의 극치를 겪어야 비로소 구치소로 가게 되었다. 서울구치소로 갈 동료 아닌 동료들이 자신은 왜 왔는지 말들이 많았다.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시간을 보냈고 점심시간이라 도시락을 주었다. 일단 맛은 모른 채 허기를 채웠다.
약, 50여 명의 우리는 긴 복도로 나갔다.
"차렷, 열중쉬어! 지금부터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꺼내어 자기 앞에 둔다. 실시!"
이것은 오래전 군대에서 생활할 때 들었던 용어다. 모든 종잇조각 하나도 다 꺼냈다.
"지금부터 정신 차리고 듣는다. 입고 있는 바지를 벗는다. 실시! 야, 뭘 꾸물대는 거야. 빨리 벗는다!"
그리고 다시 긴 복도에 울려 퍼졌다.
"팬티를 발목까지 내린다. 실시!"
우리는 알몸이 되었다. 다행히 여자 교도관이 명령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치심이 절정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뒤로 돌아서 허리를 굽히고 항문이 보이도록 한다. 실시!"
황당했다. 그러나 망설일 수 없었다. 검사관이 한 사람 한 사람 항문을 확인했다. 나중에 알았다. 항문에 담배, 또는 마약같은 것을 감추어 들어가기 때문이란다.
옆에 서 있던 사내는 벌써 세 번째라며 자신의 전력을 훈장처럼 떠벌리고 있었다. 그는 알몸이 된 상태에서도 기세가 등등했지만, 그와 똑같은 처지로 서 있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비참했다. 인간의 존엄이 마비된 그들의 무신경함 사이에서, 모멸감의 극치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내 인생은 좌초된 난파선과도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인간의 기본 존엄도 없었다. 전직 대통령, 유명 정치인들도 이 과정을 거쳤을까, 궁금했다.
호송차의 냉기와 29동의 문
모든 신체검사가 끝났다. 늦은 오후, 포승줄에 묶인 채 구치소로 향하는 호송차에 올랐다. 차 안을 감도는 차가운 냉기는 나의 마음을 더욱 시리게 했다. 호송차 안은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로 가득했다. 모두 고개를 숙이거나 허공을 응시하며, 깊은 좌절과 공포를 품고 있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여전히 활기찼다. 사람들은 바쁘게 걸었고, 자동차들은 경쾌하게 움직였다. 버스 안의 나와 창밖의 세상이 마치 투명한 벽으로 영원히 분리된 것 같다는 지독한 소외감을 느꼈다.
버스가 육중한 교정시설의 입구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곳은 바로 '서울구치소'. 뉴스에서나 보던 고위 정치인들과 재벌들이 갇히는 그곳이었다. "내가 감히 저곳에 가는구나."
이곳은 단순히 감옥이 아니었다. 사회의 모든 지위와 계급이 무너지고 '수용자'라는 이름 아래 모두가 평등해지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버스가 구치소의 거대한 철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진입했음을 직감했다.
"아이, 그 쌍년 때문에 또 여기 왔잖아." 옆에서 누군가의 거친 원망이 들려왔다. 이전에도 29동을 거쳐 갔던 모양이다.
한 번 이곳에 들어오면 대부분 사람은 또 들어오게 된다는 누군가의 말이 떠올랐다. 거대한 철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의 삶은 이제껏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궤도로 접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