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사원, 비명으로 가득한 방
킬링필드, 죽음의 비명 속에서 꿈의 씨앗을 품다
습한 날씨에 온종일 비가 내렸다가 그치기를 반복했다. 오늘은 호안과 쿤띠아를 데리고 킬링필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절로 향했다. 이곳은 씨엠립 시내에 있으므로 방문하기는 쉽지만, 대부분 관광객은 이곳을 찾지 않는다.
킬링필드 역사관을 방문한 사람은 오직 우리 셋뿐이다. 절에서 생활하는 승려들과 가족들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5달러의 입장료를 냈지만, 호안과 쿤띠아는 현지인이라 무료다. (이곳 대부분의 관광지는 캄보디아 사람들은 무료다.)
“여기 몇 번 와 봤니?” 내가 물었다. “한 번도 오지 않았어요.” 호안이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여기가 킬링필드 역사관인지도 몰랐어요. 처음 왔어요.”라고 했다.
나는 충격에 빠졌다.
“학교에서도 단체로 한 번씩 오지 않니?” 하고 물었지만, 호안과 쿤띠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우린 그런 것 없어요.”
사실 굳이 어린 학생들에게 잔혹한 역사를 보여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정체성이 없어서 국가를 세우는 데 투철한 애국심을 갖기 어렵다. 나는 이보다 더 좋은 역사의 교육 현장이 어디 있을까 생각하고 이곳을 찾은 것이다. 프놈펜 근처의 해골탑(Stupa)이 있는 '쫄 으엑 학살 센터'에 비하면 너무 작은 해골탑과 전시장이라 그런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는듯했다. 가이드가 관광객을 인솔하다가 시간이 남으면 잠시 들리는 곳이다. 그러나 이유 없이 죽어야 했던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 절에서 잘 관리하고 있었다. 아마 매일 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해골 발굴 현장을 보던 쿤띠아는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지 못했다. 호안도 잠시 보더니 “아빠, 무서워요.” 하면서 유골들을 보지 않으려고 하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우리는 역사의 사진 전시장으로 갔다. 수많은 역사 자료를 마주하면, 당시 캄보디아 국민이 얼마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빛바랜 흑백사진 속에는 당시 자신의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인물들이 우리 앞에서 웃고 있었다. 국민은 죽음으로 내보내고 자기들은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쿤띠아, 이 사람 누구인지 아니?” 나는 한 인물을 가르치며 물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몰라요” 라고 했다.
“이 사람이 폴 포트이고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두크(Duch, 캉켁이우 / Kang Kek Iew)인데 악명 높은 중앙 보안 감옥 'S-21'(뚜얼 슬렝)의 소장이었어.”
호안이 옆에서 말했다. “우리 캄보디아 사람보다 더 많이 알아요.” 하면서 웃는다.
“두크가 바로 그곳에서 고문과 처형을 직접 지휘하고 기록을 관리했어. 이 사람이 고문을 하고 사람들을 사형시키도록 명령한 실무 책임자란다.”
나는 흥분된 어조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폴 포트와 두크의 이름을 잊으면 안 돼. 역사는 반복되는 거야. 알았어?”
국가를 책임지는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인하여 약 200만 명이 이유 없이, 혹은 단지 많이 배웠다는 이유만으로, 부자로 살았다는 이유로 모두 끌려가 마을 들판에서 죽어야 했다. 누가 책임지지도 않는 현실에 마음이 더욱 아팠다.
우리는 어두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한국 기업에서 운영하는 커피점으로 갔다.
“호안과 쿤띠아가 왜 킬링필드에 와야 했는지 알겠어?” 두 자매는 서로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더니, “몰라요” 하고 대답했다.
“음….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너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겪었던 역사를 알고 살아가야 할 이유는,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망하기 때문이야. 다시는 캄보디아 땅에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너희들이 살아가면서 잊지 말아야 할 아픔을 알아야 하므로 같이 방문한 거야. 아빠 뜻을 이해하겠니?”
호안과 쿤띠아는 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과 치유는 동시에 일어난다. 과거의 아픔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맡길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회복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치유는 나뿐만 아니라,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전해져 작은 공동체 안에서 큰 생명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아픈 기억이 있기에, 사랑과 은혜는 더 깊이 새겨지고, 삶은 더 단단하게 자라날 것이다. 그래서 작은 킬링필드를 방문한 것이다. 우리는 말 없이 진한 향이 가득한 커피를 마시며 비 오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니 죽음의 비명이 내 귓전에 울려오는 듯했다. 오늘 그 아픈 상처 속으로 들어갔다 온 이유는 희망의 꿈을 찾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