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한 줌의 재, 다시 피는 소망

안도의 한숨 끝에 찾아온 이별

by 임래청
불꽃 속에 사라진 인생

40도를 오르내리는 오후 4시, 리더 소빈으로부터 다급한 문자가 왔다. “목사님, 아버지가 주립병원에 입원했어요.” 첨부된 사진 속에는 인공호흡기를 낀 채 수많은 호스에 연결된 아버지의 위중한 모습이 담겨 있었다.

곧바로 병원 앞 카페로 달려가 소빈을 만났다. 3일째 입원 중인데 응급 처치비를 내야만 치료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체념한 듯 눈물을 글썽이는 소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래요, 기도합시다. 하나님이 일하실 거예요.” 간절히 기도를 올린 후, 미리 봉투에 준비해 간 300달러를 건네고 돌아왔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다시 문자가 도착했다.

"목사님이 다녀가신 지 20분 정도 후에 하늘나라로 가셨어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거실 밖으로 보이는 야자나무를 바라보며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곰곰이 되짚어보았다. 누구나 한번은 왔다가 반드시 돌아가야 하는 곳,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하늘나라에 관한 생각이 그날 저녁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스크린샷 2026-01-30 145916.png 캄보디아 장례행렬

소빈의 아버지는 경찰관이었지만 지병으로 10년 넘게 삶의 끝자락을 버텨온 분이었다. 다음 날 오전, 거세게 쏟아지는 빗줄기를 뚫고 장례식이 열리는 절로 향했다. 아내와 나는 캄보디아 화장터에서 그의 아버지가 불 속에 인생을 날려 보내는 광경을 마주했다.


인생은 결국 한 줌의 잿더미였다. 소빈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 되자, 상처 입은 땅 위에서 나는 자주 무력하게 쓰러졌다. 선교사로서 해 줄 수 있는 것이 너무 적다는 사실에 마음이 찢어졌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쓰러진 자리에서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붙들고 일으키셨다.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무너진 나를 감싸 안으시고 다시 걷게 하신 것이다.


그 손길은 화려한 기적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맑은 웃음, 이웃이 건네는 따뜻한 한마디, 홀로 기도하며 흘린 눈물 위에 임하는 평안 속에 스며 있었다. 소빈 역시 아픔을 이겨내고 이제는 항상 웃는 얼굴로 먼저 다가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넨다. 아내에게 달려와 덥석 안기며 반가움을 표현할 줄도 안다.

대학을 졸업한 소빈은 호텔에서 근무한다. 이제 예배 때 컴퓨터와 빔프로젝터를 담당하는 든든한 동역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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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빈, 혹시 드럼 배우면 어때요? 예배때 소빈이 드럼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열심히 배워볼게요." 대답하며 활짝 웃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교회 예배를 위해 학원에서 드럼을 열심을 배우고 있다.

내가 걷는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과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 들 때마다 뒤를 돌아본다. 그러면 모든 길 위에 새겨진 하나님의 발자국이 보인다. 혼자 걷는 줄 알았으나 하나님은 늘 앞서 걸으시며 길을 열고 계셨다. 내가 의지할 것은 내 힘이 아니라 나를 이끄시는 주님의 지팡이뿐이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편 23:4)


캄보디아에서의 걸음은 완벽하지 않았고 자주 흔들렸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은 한 번도 나를 놓지 않으셨다. 사역은 내 힘으로 완성하는 숙제가 아니라, 그분의 손길을 따라 함께 걷는 여정임을 고백한다. 실패해도, 두려움에 멈춰 서도 여전히 나를 다시 걷게 하실 것을 확신하기에 오늘도 담대히 내디딘다.


"주님, 주님의 손길을 따라 다시 걷습니다. 이 길 끝에서 피어날 생명을 바라보며, 오늘도 담대히 한 걸음 내딛습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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